예전 교수 시절 이야기지만, 우리 학과의 입학 면접시험은 주로 내 연구실에서 치렀다. 나는 면접관이 일방적으로 학생에게 질문하는 형식이 못마땅했다. 학과 교수들과 상의해 보았다. 학생에게도 질문을 하게 하면 어떨까. 좋은 학생은 질문도 잘하지 않는가.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창의성 잠재 능력도 살펴보자. 그런 결론을 얻고 수험생 대기실에 가서 미리 통보를 했다.
"잠시 후 면접을 할 때 여러분도 질문해 보세요. 그 어떤 질문도 좋습니다. 면접관이 가장 깜찍하게 답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발한 질문일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학생들이 천편일률, 판에 박힌 질문만 한다. 재미없다. 고정관념이 강하다는 이야기,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교육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그런데 딱 한 명! 기억나는 학생이 있었다. 어떤 남학생이 머뭇거리다가, 내 연구실 전후좌우를 둘러보면서 질문했다.
자, 그나저나 이번엔 내 차례다. 우리 학교는 수험생들에게 초콜릿과 귤을 나눠준다. 우리 학과는 자체 경비로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고급 초콜릿도 같이 나눠준다. 처음에는 긴장하던 학생들도 나눠준 초콜릿과 귤을 까먹으면서 흥미진진한 눈동자로 내 대답을 기다린다. 어떻게 답변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는가?
소오생은 책이 가지고 있는 효능을 세 가지 정도로 꼽는다.
첫째, 저자와의 대화다.나는 독서를 그 책의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란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아무 때나 내 마음대로 저자를 호출하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내 마음대로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보며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작가의 정서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을 땐 속으로 늘 중얼중얼 댄다.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브런치스토리]도 마찬가지. 수많은 매거진과 북 book이 시시각각 발행되어 나온다. 내가 원하는 아무 때나 무시로 클릭하여 그 글의 작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게다가 댓글 기능까지 있으니 종이책을 읽을 때와는 대화의 차원이 다르다. 심지어 거의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때도 있다.
둘째, 최고의 액세서리다. 책은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폼나게 꾸밀 수 있는 최고의 인테리어다. 생각해 보시라. 교수 연구실에 책 한 권 없다면 남들이 어찌 생각하겠는가. 반대로 전후좌우에 들어찬 원목 서가에 책이 하나 가득 빽빽이 꽂혀있다면 얼마나 폼 나 보이겠는가. 나는 서가에 가득 꽂힌 책을 볼 때마다 명나라 때의 산문가 귀유광歸有光의 수필 한 구절이 생각난다.
나는 이 방(항척헌)을 약간 수리해 보았다. 천장을 손을 보아 비가 새지 않게 하고, 전면前面에 네 개의 창문을 내었다. 정원에는 나지막한 담을 쌓아 남쪽에서 들어오는 햇볕을 받을 수 있게 하니, 햇볕이 반사되어 들어와 이제야 방 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뜨락에는 난초와 계수나무, 대나무를 여기저기 심었더니 옛날부터 있던 난간이 한층 더 운치가 있어 보였다.
빌려온 책이지만 서가에 가득 책을 꽂아놓고 편안히 드러누워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어 본다. 혼자 단정하게 앉아 명상에 잠기면 삼라만상의 모든 소리가 들려온다. 적막만이 감도는 뜰 계단에 이따금 작은 새가 날아와 모이를 쪼아 먹는다. 사람이 다가가도 날아갈 줄 모른다. 보름날 밤, 담장에 밝은 달이 반쯤 걸쳐지면 계수나무 그림자가 달빛에 아롱거린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산들산들 움직이는 그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다.
소년 귀유광歸有光(1506~1571)은 집안의 낡은 방을 수리해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는 책을 잔뜩 빌려와 서가에 꽂아놓고, 드러누워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면서 즐거워한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으되,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책을 펼치고 저자를 모셔와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지적 포만감이 그를 너무너무 행복하게 만들었다.
나는 <중국문학사>를 수십 년 가르쳤지만 한 번도 교재를 채택하지 않았다. 내가 만든 파워포인트 강의록으로 온라인 수업과 강의실 수업을 병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문학사> 책을 들고 다니는 학생에게는 언제나 뽀~나스 점수를 주었다. <중국문학사> 책이라면 아무 책이나 상관없지만, 기왕이면 한자가 많이 나오고 좀 더 어려워 보이는 책을 가지고 다니라고 추천했다. 왜? 그래야 폼 나 보이니까. 그래야 학생다워 보이니까. 그렇게 들고 다니다 보면 조금씩 그 책에 대해 궁금증도 생기고 정도 들지 않겠는가.
주말에 대형서점에 가서 아이쇼핑을 해라. 당장 사지 않아도 된다. 지금 우리 집 서가에 어떤 사이즈 어떤 컬러의 책이 꽂혀 있는데, 그 옆에 어떤 크기 어떤 색깔의 책을 꽂아놓으면 예쁠지 쇼핑 리스트를 작성해 봐라. 그렇게 잔소리를 했다. 학생들은 내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신기한 것이라도 발견한 냥, 똥글똥글 눈동자로 킥킥대며 재미있어했다. 책은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폼나게 꾸밀 수 있는 최고의 인테리어다.
셋째, 책은 최고의 수면제다.
소오생과 친하게 지냈던 어느 문창과 여학생이 하루는 씩씩대며 말했다. 쌤, 세상에, 어떤 친구는 책을 베개로 쓴다지 모예요? 책을 그렇게 모독해도 되나여? 키득키득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책이란 게 원래 최고의 수면제란다. 임진왜란 때 몽진 길에 오른 선조 임금을 수행한 도승지 이항복 이야기를 해주었다. 수심이 가득 찬 임금의 모습을 보고 이항복이 말했다.
"전하, 소신에게 왜적을 물리칠 비책이 있나이다."
"오, 그게 정말이오? 어서 말해 보시오!"
"신에게 《격몽요결擊蒙要訣》 10만 권만 하사하여 주소서. 그리하면 왜적을 섬멸하겠나이다."
"에엥? 그게 무슨 소리요? 어떻게?"
"소신이 예전부터 《격몽요결》만 펼치면 금방 잠이 들었나이다. 전하는 아니 그러셨나이까?"
"오, 짐도 그러했지요."
"그러니까 그 책을 도성 앞에 쫘~악 깔아놓으면 왜적들이 이게 뭔가 궁금해서 펼쳐보지 않겠나이까?"
"그래서?"
"그러면 금방 픽픽 쓰러져 잠이 들 터이니, 그때를 노려 일망타진하면 될 것이옵니다."
"뭬라? 으하하하핳핳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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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최고의 수면제다.
소오생은 왕년에 너무너무 힘들어서 지옥에 떨어졌던 적이 있었다. 견디지 못하고 신경정신과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근데 사실 진료라고 해봤자 별 게 없었다. 환자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고 신경안정제(수면제) 같은 걸 처방해 주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치료 과정이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면 분명 예약을 잡아놓았건만 의사 선생님과 만나려면 엄청 기다려야만 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대기실에는 주로 수필집이 꽂혀 있었다. 그때는 핸드폰도 없는지라 그 수필집을 아니 읽고는 지루한 시간을 보낼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수필 속에서 들려오는 작가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듣노라면 저절로 졸음이 오게 마련 아닌가. 불면의 밤에 시달리다가 오랜만에 모든 걸 잊고 꾸벅꾸벅... 졸고 있노라면 지옥에 떨어진 고통도 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소오생님, 들어오세요!
깨우더니, 대충 어영부영 이야기를 들어주는 척하고... (@매미 작가님 메롱 ^ㅜ^) 수면제를 처방해 준다. 쩝. 깨우고 수면제 먹으라니, 매미 의사 선생님, 그러려면 대체 왜 깨우셨나용... (맴맴맴맴 메롱 ^ㅠ^) 결국 돈이 아까와서 더 이상 가지 않았다. 그대신 괴롭고 힘들 때마다 《법화경》이나 《금강경》을 펼쳐 보았다. 처음에는 한 시간 걸리더니 나중에는 5분도 안 되어서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책은 최고의 수면제다. 매미 의사 선생님이 처방하는 수면제를 먹는 것보다, 재미 하나도 없는 소오생의 책이나 글을 읽다가 잠드는 게 백배 천배 더 낫지 않겠는가.
책은 굳이 그 속의 내용을 길게 읽지 않고 액세서리나 베개로 삼기만 해도, 괴롭고 힘든 우리의 가여운 영혼을 치유해 주는 신비한 효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7일에 보노 작가님의 <마흔에 읽는 니체>를 읽었다. 질식할 것 같은 낡은 관습과 제도 속에서 고독하고 우울하게 지내던 작가님은, 나이 마흔에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과감하게 망치를 들어 아프락사스의 알을 깨고 창공으로 날아오르려 한다. (작가는 그것을 명사형의 세상에서 탈피하여 동사형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재미있다. 보노 작가님이 인생 솔루션을 얻은 그 니체의 책들은, 옛날 학창 시절 작가님이 도서관에서 베개로 삼고 맨날 잠을 청하던 바로 그 책들이었다는 것이다. 대학생 보노 작가님에게 그 책들은 액세서리요, 수면제이자 베개였다는 이야기. 그런데 세월이 지나자 어떻게 되었는가. 결국 그 책을 펼치고 작가인 니체를 모셔와 깊은 대화를 나눈 끝에, 그 힘으로 새로운 세상, 푸른 창공으로 날아오르지 않았는가.
오늘 오후, 딸내미한테서 문자가 왔다. 아빠, 빌려간 책들, 다 읽었어? 하나도 안 읽었지? 맨날 첫 장 읽다가 잠든다며? 그러려면 빨리 돌려줘요. 내 책이 베갠 줄 알아? 이 녀석이 책이 지니고 있는 이런 공능을 깨달으려면 아무래도 인생을 좀 더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