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소오생은 딸피 신세이니 남성 작가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우니 열외로 치자. 오로지 외로운 늑대 @라얀 작가님만이 이 세계에서 외롭게 활동하시다가, 근자에 오렌문학상 제정으로 강호의 새로운 맹주로 떠오르고 있는 아릿다운 @오렌 작가님과 연합하여 용맹정진! 모든 남성 작가들의 자긍심과 명예를 오직 홀로 짊어지고 오렌문학상 수상 작품을 지극정성으로 낭송하며 고군분투 중이었다.
여성 작가님들의 매력적인 목소리도 물론 너무나 달뒤 달고 달뒤 달지만, 낭송의 예술미로 논문까지 썼던 소오생은 왠지 마음이 허전하다. 그리하여 여기저기 기웃기웃, 드디어 마침내 넘사벽 목소리의 예술가 @이숲오 eSOOPo 작가님이 독자적으로 운영하셨던 은밀한(?) 장소를 찾아내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깊은 산속 옹달샘, 깡총깡총 세수하고 돌아오는 산토끼... 딸피 소오생도 매일 같이 한 마리 산토끼가 되어 낭송의 협곡 속아찔한 절벽 중턱에 숨겨진 동굴을 찾아가, 하루에 한 꼭지씩 낭송의 생명수를 마시며 갈증을 달래고 있었다. 아... 이 은둔의 고수를 어떻게 강호의 세계로 모시고 나올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굳이 진융(김용, 金庸)의 《의천도룡기 倚天屠龍記》에 빗대자면, @이숲오 eSOOPo 작가님은 무당산에 조용히 은거하며 지내는 장삼봉 張三奉, @라얀 작가님은 전도양양한 주인공 장무기張無忌라면, @ Another time 자축인묘 작가님은 명교明敎의 본산인 대식국에서 온 초절정 고수라고나 할까? 게다가 중국어 낭송까지 시도하신단다. 중국어 발성법만 제대로 익히신다면 중국 낭송 세계를 평정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 것 같다.
중국 무대는 넓다. 대륙은 한반도 넓이의 44배, 남한 넓이의 100배 아닌가! 인구도 자그마치 14억 아닌가! 사연이 그러하니, 우리나라 '베스트셀러'는 끽해야 수십만 부 수준이지만 중국은 수천만 부가 기본이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 수준이면 대박이 예상된다. 그러니 어쩌랴. 이 또한 하늘이 주신 인연이니, 작가님을 도와 멋들어진 중국어로 낭송하실 수 있게끔 도와드릴 수밖에 없을 듯싶다.
그나저나... 작가님은 왜 @ Another time 자축인묘라는 필명을 지었을지 궁금하다. 자축인묘子丑寅卯는 옛날 한자문화권에서 십이간지十二干支를 활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던 단위의 첫 네 글자다. Another time이라는 말이 붙은 것으로 짐작해 보면 그 작명 의도를 두 가지 정도로 추정해 볼 수 있겠다.
(1) 서구의 시간 계산법과는 다른 동아시아 전통의 시간 계산법으로 인생을 살련다!
(2) 자축인묘는 모든 것이 잠든 깊은 밤의 시간이자, 모든 것이 숨죽인 채 태동하는 준비의 시간이다. 지금 나는 그 새로운 준비의 시간을 가지련다!
아마도 후자가 더 가깝지 않을까? 아무튼 작가님의 글을 대하니 저절로 생각나는 글이 있다. 재작년 우리나라 어떤 영화제에 참가한 중국의 영화감독 정따성(郑大圣, 鄭大聖. Zheng DaSheng; 1968~)이 쓴 글, <축말인초 丑末寅初>다. 영화 탄생 125주년을 기념하여 쓴 글인데, 당시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소오생이 <축시와 인시 사이에서>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번역을 해드린 바 있다.
<축말인초 丑末寅初>는 이를 테면 우리나라 판소리 같은 거다. 19세기 무렵 이후로 중국의 북경, 천진 등 북방 지역에서 크게 흥성했던 '경운대고京韵大鼓'라는 설창說唱 예술에서 자주 불리었던 작품의 제목이다. 축시丑時는 오늘날로 치면 새벽 1시에서 3시. 인시寅時는 새벽 3시에서 5시이므로, 축시에서 인시 사이라면 대충 새벽 3시 경이라고 할 수 있다.
정따성 감독은 왜 이런 제목으로 영화 탄생 125주년을 기념했을까? 그것과 새벽 3시가 무슨 상관이 있길래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수십 년 동안 영화관에 간 적이라곤 몇 년 전 딸내미랑 아바타 본 게 전부였던 소오생은 제목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작가님 여러분은 짐작이 가시는가? 소오생의 후진 번역으로나마 무슨 사연인지 함께 살펴보자.
축시丑時와 인시寅時 사이에서 (丑末寅初)
영화의 나이, 일백스물다섯 살이 넘었다.
1과 1/4 세기世紀가 되는 세월. 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류가 겪었던 재난이나 각종 예술 사조의 등장과 변천은, 아마도 그 이전 이 세상 모든 역사 속의 그 모든 총합보다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시대의 희미한 그림자가 되어버린 영화. 영화가 늙어버리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멀티 화면 시대다. 모든 것이 조각나 버렸다. 오늘날 영화관에 충성을 바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지하철이나 길거리 그리고 편의점에서 손에 화면을 들고 웹서핑을 하면서 입맛 따라 골라잡아 볼 수 있는 세상. 컴퓨터나 아이패드, 또는 자택의 벽면에 화면을 쏘아놓고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한두 세대 전까지만 해도 영화관은 청춘의 추억을 숨겨놓은 마법의 항아리였다. 맨 처음 데이트. 맨 처음 손잡고 포옹했던 곳. 어슴푸레 신비한 그 불빛 아래, 쿵 쾅 쿵 쾅 가슴이 마구 뛰었던 그곳이었다. 오늘날 어린이들에게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이야기겠지?
신의 가호만을 바랄 뿐인 코로나19 판데믹의 시대... 메타버스, 블록체인, 인공지능 AI가 이 시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학교에 다니고, 사람들과 사교를 하고, 오락 생활을 즐기고, 물건을 소비하고, 생계를 도모하고, 신분을 인증하고, 감정을 쏟아내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고, 이상적인 인격을 형성하는... 이 모든 공공 생활과 내면생활이 모두 허구의 가상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 ‘가상세계’가 바로 ‘현실 세계’가 아닐까. 아니, 그 ‘가상세계’야말로 진정한 ‘현실 세계’가 아닐까. VR 안경을 벗어던지고 바라본다. 부모님, 선생님, 사장님… 아하, 당신네 역겨운 꼰대 어르신들이 바로 가상 인간들이셨구려! 인간은 영원히 환상 속에서 피안의 언덕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1895년 12월 28일. 뤼미에르(A. M. Louis Nicholas Lumière) 형제가 파리에서 영화를 처음 상영했다. 세계 최초, 인류 역사상 최초의 영화 상영이었다. 그리고 2012년 1월 19일. 이스트만 코닥 회사(Eastman Kodak Company)가 파산을 선언했다. 영화는 아마도 묘비에 생졸生卒 년도를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예술 장르일 것이다.
그래, 까짓 거, 상관없어! 필름이 디지털로 바뀐 것뿐이잖아. 재료로서의 필름은 죽었지만 영화로서의 필름은 남아있잖아. 하지만 영화관(cinema)이 없어지면? 영화(cinema)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당祠堂이 없어진 귀신은 여기저기 떠도는 혼백일 터.
기계와 화학 유제乳劑, 광물리光物理, 전기와 음파音波... 일찍이 모더니즘의 선봉장이었던 영화는 언제나 기술혁명에 의존해서 비약적인 예술 발전을 거듭해 왔다. 형이하학적으로 말하자면 ‘기구器具’, 형이상학적으로 폼나게 말하자면 ‘도道’, ‘길’이었다.
영화의 도는 무엇일까? 영화는 탄생 이래로 언제나 기구/기자재를 추종하는 길을 걸어왔다. 영화의 근본은 물질적인 성격이었다. 그런데 이제 곧 비물질적인 ‘무형문화유산’으로 바뀐단다.
정지된 프레임들의 연속 운동으로 만들어진 허상虛像의 이용. 2D 평면 위 음영陰影을 3D 환영幻影으로 전환. 그렇다면 실물 촬영이든 업그레이드된 컴퓨터 기술로 대체한 것이든, 영화란 클래식이다. 선형線形 배열 속에서 이루어진 스토리 전개. 그렇다면 플롯 구조를 제아무리 복합적으로 구성하여 비유한다고 할지라도 영화란 클래식이다. 그렇다. 127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영화라는 기예는 이미 클래식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때? 훌륭하잖아? 나는 절대 슬프지 않다.
우리는 영화관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클래식한 시청 방식에 흠뻑 빠져 아이맥스 대형 스크린에서 인류의 참된 얼굴을 대하며 신神이 강림하는 느낌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50개 좌석의 작은 홀에서 모든 과정을 옛날식으로 사람이 직접 만든 연극과 음악의 영상을 즐길 것이다.
인간이라는 몸뚱이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스크린이라는 잠망경 렌즈로 지켜보면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렌즈에 미처 담지 못한 것까지도 시야에 가득 차 있는 느낌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영화란 것이 우리들 피부의 1미크론 깊이도 파고 들어갈 수 없는 그저 표면적인 이미지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영화는 점점 더 소중한 존재가 되어갈 것이다.
새로운 세기.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매체가 홍수처럼 쏟아진다. 삼라만상, 이 세상 모든 것이 인터넷망으로 연결되면서 사람은 외로운 섬이 되어간다. 그럴수록 대형 극장의 오페라, 소극장의 공연이 소중하다. 현장이란 역시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니까. 내 몸이 직접 현장에 가서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니까.
중국 고대의 역법에 의하면 새벽 1시부터 3시까지를 축시丑時라고 한다. 새벽 3시에서 5시까지는 인시寅時. 축시가 끝나가고 인시가 시작될 무렵, 축시와 인시 사이의 그 시각은 깊은 밤이 끝나가고 새벽이 꿈틀대는 때다. 중국 전통문화에 한국의 판소리와 비슷한 ‘고서(鼓書)’라는 설창(說唱) 예술이 있는데, 그중에 《축시와 인시 사이(丑末寅初)》라는 유명한 곡이 있다. 그 가사의 일부를 여기에 소개해본다.
축시가 끝나가고 인시가 시작되니,
해님이 부상扶桑에서 꿈틀댄다.
고개를 치켜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무수한 별님들, 그 사이에 북두칠성.
아득하고 황홀하며 빽빽하고 촘촘하다.
새벽, 은하수로 달려가니 점점점 그 빛이 사라지네.
순라꾼은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 단꿈을 꾸는구나…
부상(扶桑) : 중국 고대 신화에서 태양이 떠오른다는 동쪽 바다의 섬나라.
이 집 문이 열리고 저 집도 문을 여네.
서둘러 행낭 챙겨 길 나서는 나그네, 저기 저 마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네.
저 멀리 보인다.
푸른 구름 걸린 산, 소나무 가린 구름. 낡은 절 숨긴 소나무, 스님을 숨겨놓은 낡은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