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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May 23. 2024

어두운 밤, 바다에서 만나

쉬즈모徐志摩, <우연 偶然> 낭송 감상

삶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만남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브런치에서 알게 된 여러 작가님들과의 만남을 생각해 본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른 채, 스쳐 지나가는 우연의 만남일 수도 있다.

어쩌면 신이 은밀하고 치밀하게 안배한 필연의 운명적 만남일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네 인간들의 삶에는 얼마나 많은 ‘우연’이 존재하는가! 얼마나 많은 '만남'이 존재하는가!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그 ‘우연’과 '만남'의 의미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삶을 흘려보내기가 일쑤다. <삶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참조


불교에서는 그 '우연의 만남'을 '인연因緣'이라고 부른다. '인因'이란 내가 씨를 뿌리는 것. '연緣'은 내 주변 존재들이 씨를 뿌리는 행위를 말한다. 그 둘이 절묘하게 만난 것이 '인연'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삶은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개척된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삶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삶의 '인연'은 '필연'이라고만 말할 수도 없다. '필연/과학'의 범주에 속하면서도 그 경계를 넘어선, 보다 고차원 영역의 다분히 신비스러운 개념이다. 그리하여 '인연'은 '필연'이면서도 또한 '우연'이다. 그게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이요, 동아시아의 일원론 패러다임이다.


여기 중국 현대문학의 두 문인을 소개한다.

쉬즈모徐志摩(1897~1931)린후이인林徽因(1904~1955)

그들의 만남은 과연 우연인가, 필연인가. 그 기구한 인연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쉬즈모徐志摩!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신월사新月社라는 문학동호회를 만들어 중국 현대시의 선구자가 낭만파 시인이다. 그는 1920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유학할 때 린후이인林徽因을 만났다.


당시 쉬즈모는 만 스물세 살. 린후이인은 만 열여섯. 그야말로 이팔청춘이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미모는 뭇 남성의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로 대단히 특출했다. 성격도 개방적이고 활발했다. 정치 외교가인 아버지 린장민林長民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고방식 영향이었다.


청춘 남녀는 첫눈에 반해 만나자마자 뜨겁게 불타 올랐다. 린후이인에게 빠진 쉬즈모는 마치 광신도가 방언이 터진 것처럼 그녀를 위해 무수한 시를 쓴다. 셸리 P. B. Shelley (1792~1822)바이런 G. G. Byron (1788 ~1824)영향을 받은 중국 현대 낭만파의 출발이었다. 린후이인 역시 영향을 받아 문학에 깊이 심취한다. 첫 번째  현대 여성 문인의 탄생을 예고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장애가 있었다. 쉬즈모는 18살 때 집안에서 정해 준 여인과 얼굴 한번 지도 못한 채 이미 결혼을 한 유부남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쉬즈모가 이혼한 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그런데 린후이인은 돌연 아무런 말도 없이 아버지와 함께 귀국해 버린다. 불길한 전조였다.


뒤늦게 귀국한 쉬즈모는 1922년 3월 서둘러 이혼을 강행한 연후에 린후이인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너무나 싸늘했다. 린후이인은 그 사이를 못 참고 이미 건축가 량쓰청梁思成과 약혼을 해버렸던 것이다. 쉬즈모가 얼마나 상심했을까. 소오생도 공연히 마음이 아프다.


연인이 아니면 동지라도 좋다! 그런 마음이었던 것일까?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쉬즈모가 주동하여 만든 신월사新月社에 린후이인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니, 두 사람은 여전히 얼굴을 대하고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당시 문단의 매우 중요한 활동을 공동으로 담당하게 된다.


1924년,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타고르 R. Tagore (1861 ~ 1941)가 중국을 방문하였다. (타고르는 1913년 《기탄잘리 Gī tāñ jalī》로 노벨상 수상) '신월사'라는 그들 모임의 이름은 그의 시집 《신월新月 The Crecent Moon 》에서 따온 것. 그 정도로 타고르가 중국 현대문단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그 타고르의 중국 방문 전체 일정을 쉬즈모와 린후이인 두 사람이 책임지고 공동으로 기획 통역 진행 등의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쉬즈모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린후이인은 또 어떤 심정이었을까. 쉬즈모의 마음은 더욱 뜨거워져갔지만, 린후이인의 반응은 더욱 싸늘해져 갔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의 아가씨, 바람 부는 갈대와 같은 나이 아닌가. 아무튼 그녀는 일이 끝나자 약혼자 량쓰청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가버렸다.


린후이인은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건축학을, 예일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녀는 현대중국의 유명한 건축학자, 디자인 전공자이기도 했다. 쉬즈모와의 관계가 없었다면 훗날 문학/문예 활동에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건축에 전념하여 현대 중국 건설에 큰 공헌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린후이인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기인 오성홍기의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무렵 쉬즈모가 지은 시가 바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우연>이다.



우연 偶然



나는 한 조각의 구름

그대 호수에 우연히 비쳤네

놀랄 필요도, 기쁠 필요도

잠깐 후엔 사라지리라.


어두운 밤, 바다에서 만나

너는 너의, 나는 나의 길로.

기억은 그뿐. 망각이 최선.

스쳐가는 지금, 서로 빛나는 지금.


한국어 낭송


我是天空里的一片雲

偶然投映在你的波心

你不必訝異, 更無需歡喜

在轉瞬間消滅了踪影。


你我相逢, 在黑夜的海上.

你有你的, 我有我的方向

你記得也好, 最好你忘掉

在這交滙時互放的光亮。


중국어 낭송


중국인이 너무나 애송하는 시, 오늘날까지 서로 다른 수많은 멜로디로 불려지는 노래다. 나는 그중에서 천치우쌰陳秋霞가 부른 멜로디를 가장 좋아한다.


<陳秋霞 偶然> ☜ 클릭

※ 판본에 따라 가사 한두 글자가 다른 곳도 있습니다.




사족. 이 스토리는 그다음의 후일담이 중요하다. 더욱 가슴 아프다.


1926년 가을, 쉬즈모는 또 다른 재원才媛인 화가 루샤오만陸小曼과 재혼한다. 쉬즈모를 알게 되어 사귀기 시작했을 무렵, 그녀는 유부녀였다. 그녀 역시 쉬즈모처럼 주변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이혼을 감행하고 쉬즈모와 재혼을 한 것이다.


그런데 운명은 참으로 얄궂다. 량쓰청과 결혼한 린후이인은 철이 들면서 점점 더 쉬즈모를 그리워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1927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는 '신월사'에서 쉬즈모와 함께 더욱 열심히 문예 활동에 몰두한다. 연극 모임도 만들어 쉬즈모와 함께 공연도 하지만, 두 사람은 애써 감정을 절제하고 또 절제한다.


1931년 11월 19일이었다. 어느덧 사회 저명인사가 된 린후이인은 북경에서 중국 건축에 대한 강연회를 가지게 되었다. 상해에서 그 소식을 들은 쉬즈모는 그 행사에 꼭 참석하고 싶었다. 결국 그는 우체국 비행기를 얻어 타게 된다. 그리고 그 비행기는 산동山東 제남濟南 상공에서 짙은 안개를 만나 산에 부딪치고 말았다. 전원 사망이었다.


쉬즈모는 34년 간의 찬란했던 삶을 이렇게 갑자기 마감하고 만다. 소식을 들은 린후이인은 절규했다. 남편 량쓰청에게 제발 현지에 가서 비행기 잔해라도 하나 가져다 달라며 오열한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그 소망을 들어주었고, 린후이인은 그 잔해를 집안 구석에 놓고 평생 울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이가 사랑한 건 내가 아니야. 자신의 낭만 속에 쌓아 올린 상상 속의 여성을 사랑한 거야. 난 그런 여자가 못 돼." 그녀가 병으로 죽어가며 딸에게 남긴 말이라고 한다. 그녀는 만 51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쉬즈모의 아내 루샤오만은 어떠했을까. 주위의 비난과 반대를 무릅쓰고 전 남편과 이혼하고 쉬즈모와 재혼한 지 이제 겨우 5년인데... 그런데 그 남편은 굳이 옛날 애인의 강연회에 참석하러 가다가 이런 일을 당하다니. 더구나 온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일을 다 알고 있는데... 몇 번이나 졸도한 그녀는 그 후 세상 사람들과의 모든 교제를 끊고 은둔 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에만 매달렸다. 그녀는 1965년 만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좌) 쉬즈모의 두 번째 아내인 루샤오만. (우) 루샤오만의 산수화 <황산의 소나무 누각 黃山松閣> 1956.




삶에서 '우연히' 만났던 모든 만남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아껴주고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내가 미워하고 나를 미워한 그 모든 존재들... 이름조차 모르고 스쳐 지나간 사람들과 산길에서 만났던 꿩이나 노루,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그 모든 만남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브런치에서 만난 한 분 한 분, 모든 분들과의 소중한 만남의 의미도 생각하지 않고 생각해 본다.


이곳 브런치에서 불초 소생 소오생과 소중한 인연을 맺어주신 모든 작가님들께 깊이 감사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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