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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규 Oct 25. 2024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건네는 시간

2023. 04. 08

어느 연극 수업 시간. 자신의 인생에 가장 의미있는 사람의 이름을 적고, 그 사람에게 해야 할 것과 그 사람이 나한테 해야 할 것들을 받아 적었다.

그리고 원형으로 둘러앉아, 그들 중 앞에 둔 두 개의 의자에 한 사람이 앉고, 맞은편에는 그 사람이 생각하는 가장 의미있는 사람을 대신할 강의실의 다른 학생을 지정해서 앉게 한다. 그리고 서로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보며, ‘의미있는’ 사람에게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한다.

대부분은 혈연이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의 인생에 가족이나 배우자가 지금 이순간 가장 많이 떠오르고 의미있는 사람일테니. 그중에서도 대다수가 엄마를 떠올렸다. 대부분은 엄마에 대한 부채감을 떠올리며, 아직까지 무언가 '해낸 게 없는' 듯한 자신을 상기시켜가며 미안함을 토로하고 울었다. 말하는 사람도 울고 보는 사람도 울고, 거기에 딱히 감정을 두지 않는 듯한 사람도 소수 있었지만 조용히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사는 감정을 미처 다 추스리지 못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친구를 떠올리고 이야기를 건넸다. 내가 친구를 떠올린 것 자체가 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를 떠올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몰랐던 것도 아니고. 할 말들은 비교적 뚜렷한 편이었던 것 같다. 그냥 막연하게 늘어놔도 될 자리였는데도... 결국 하게 되는 얘기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 날, 그러니까 오늘 새벽에 갑자기 그 말들이 떠올랐고 다시 흐느꼈다. 그 자리에 있던 수강생들처럼. 언제 써봐야지 했는데 결국 안 쓸 걸 알아서 한번 생각해서 말을 늘어보았다.




꿈속에서 지팡이조차 짚지 못해서 휠체어에 탄 엄마를 보았어. 엄마는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어. 그런 엄마에게는 나는 엄마는 엄마라고 얘기했어. 꿈에서 깨어났을 때는 횡설수설이라고 생각했는데 꿈속의 나는 마치 내가 알고 있는 말 중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느껴지는 것처럼 그렇게 말했어. 엄마는 엄마라고, 그렇게 울면서 말했어. 엄마는 무슨 말인지 알겠어? 꿈 속의 나도 알고 엄마도 알았던 것 같은데. 되게 좋은 말이었던 것처럼 느껴져서 생각나서 해봤어-


처음 암 진단을 받은 날 거실에서 소리도 나지 않는 TV를 틀어놓은 채 밤새도록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엄마를 보았어. 잠도 못 이루고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도 모른 채 내가 엄마를 부르자 멍하니 바라보던 엄마 표정이 생각났는데 아무말도 할 수 없었어. 5년이 넘는 투병 생활동안 엄마가 이젠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말하면서도, 일 년에도 몇 차례나 재발하는 암세포와, 몇 번인지 기억도 못 할 방사능 치료와 약을 바꿔가며 반복되는 항암치료, 계속되는 검사결과를 앞두고 늘 익숙해지지 않는다, 마음이 불안해진다고 얘기했을 때 5년의 시간이 그 불안으로 가득찼을지도 모른다고 느꼈을 때, 절대로 울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건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 뒤로도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거 빼곤 다 얘기하려고 했어. 그러니까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말이라는 게 결국 우는 것밖에 없게 되는 것 같았네. 내가 하는 게 아무것도 없네. 사실은 다른 얘기도 있지만 말이야.


예전엔 며느리와 친손주 얘기를 많이 하던 엄마. 내가 빨리 결혼해야 집안이 설 거라는 얘기를 많이 했던 엄마가 이제는 그런 얘기를 전혀 하지 않네.이제는 이모의 손주들 얘기를 가장 자주 하고 이제는 민구 엄마, 박 선생, 명진이 엄마네 자식이 어떻게 사는지 얘기하는 엄마. 하지만 예전같이 비교하는 듯한 느낌은 없이 관조적인 태도로 얘기하는 엄마가 평안해보였는데, 이제 당신 자식들은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그런 것들에 관심이 사라진 건지. 아쉽진 않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식들에게조차 민폐끼치는 걸 꺼려하는 엄마 성격에 그런 얘기하면 싫어할 줄 알고 안 하는 걸 지도 모를텐데. 설사 엄마가 여전히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거기에 대해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는 없겠네. 모질게 보이겠지만 엄마는 죽을 때까지 며느리를, 친손주를 볼 수 없을 거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네. 아픈 사람 붙들고 그런 소리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건강했어도 굳이 하지는 않았겠지만.


엄마가 내 방의 책들을 자주 읽는다는 걸 아는데, 거기에는 퀴어 관련된 책들도 많았지. 그 책들 다 두고 집에 나오고 일년 쯤 뒤 집에 들렀다 저녁에 서울로 돌아갈 때 조금만 걸어도 휘청거리는 엄마가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내 손잡고 '나는 네가 꼭 행복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게 무슨 뜻일까를 생각했지. 나의 행복을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엄마는.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너무 오래되어서 어떤 것일까 엄마는 행복을 바란다고 했는데 마치 질문을 받은 것처럼 멍했다. 어쩌면 정말 별로 깊이 고민하고 한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예전의 엄마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엄마는 행복 그 자체가 아니라 행복의 조건을 얘기했고 그 조건이 곧 남들처럼 좋은 직장 들어가고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고 가족 꾸리는 거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더 이상 그런 것들을 얘기하지 않는 엄마를 편안하게 여기면서도 그래도 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고 더 이상 그런 것들을 떠올리기도 버거울 정도로 너무 힘들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런 걸 다행이라거나 반가워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하고 그저 죄책감을 가져야 하나 싶은 마음이었는데.


엄마는 어떤 게 행복이었을까. 말이 통하지 않고 한번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남편과의 오랜 결혼생활 끝에, 자기표현도 없는 자식들 사이에서. 아빠도 고독했을 것을 잘 알지만 오히려 나는 아빠와 대화를 많이 하지 않고도 아빠를 왠지 직감적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그래서 오히려 아는 척 안 하기도 하지만), 엄마는 그럴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더 생각하게 되고 엄마도 쓸쓸하기는 마찬가지였겠지... 라고 생각해. 엄마가 행복했으리라는 생각이 안들어... 어제 보니 다음 세상에서도 내 엄마로 태어나줘 같은 말을 하던데. 그건 바라지 않아. 지겹잖아... 엄마는 다음 세상에서 엄마로 태어나지 말고 다른 존재가 되어 살기를. 더 이상 그때 그 남자의 손을 놓지 말았어야 했다는 얘기를 두고두고 하는 일이 없기를... 이런 걸 말이라고... 뭐가 행복의 조건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나는 엄마가 평화롭기를 바라. 우리 모두가 평안하기를 바라.





2024.10.04

2024년 1월 16일. 엄마는 항암투병중 갑작스런 쇼크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엄마에게 하지 못한 말들을 되뇌인다. 다행히라고 해야 할지 이제 와서라고 해야 할지는 몰라도, 꿈 속의 나는 엄마에게 사랑해 엄마. 고마워 엄마를 계속해서 얘기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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