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이 동네는 휴가도 없나. 왜 이렇게 인적 없이 조용한가. 도서관에 들어가고 나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맞아, 지금은 돌아다니기엔 너무 더운 날씨지. 차갑지 않은 선선한 공기가 느껴졌다.
들어선 도서관은 조용한 학습공간이 아닌 카페형의 열린 구조를 지향하였다. 적당한 크기의 소음이 원활하게 온 공간을 떠돌았다. 열람실은 분절된 공간이 아닌, 1층부터 루프탑에 이르는 나선형의 복도를 따라 서가들이 길게 늘어져서 일정 구간마다 섹션이 나뉘어 책들이 놓여져 있는 형태였다. 복도의 중간중간과 건물의 중앙 홀에는 테이블들이 놓여져 있었는데, 테이블 사이의 간격이 그렇게 넓지는 않았지만 중앙 부분이 꼭대기 층까지 뻥 뚫려 있는 형태로 된 건물 구조 덕분에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후 3시의 도서관 테이블은 남은 자리 하나 없이 꽉 차 있었다. 테이블에는 일고여덟살쯤 된 어린아이부터 방학을 맞이한 중고등학생, 이삼십대, 중년, 팔순이 넘는 노인까지 모든 연령, 성별이 분방하게 뒤섞여져 책을 읽거나 노트북, 혹은 노트 등을 가지고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집에서 막 마실을 나온 것처럼 가벼운 옷차림을 한 할머니는 옆에 앉아 있는 일곱 살 정도의 남자아이가 앉아있는 의자에 발목양말을 신은 한쪽 발을 턱하니 올려놓은 채 책을 읽고 있었고, 손주인 듯한 아이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앉을 자리 하나 없음에도 나는 보는 것만으로 벅찬 충족감과 기쁨을 느꼈다. 이 순간, 건축가는 자신이 이 건물에 구현하고자 했던 바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내가 꿈꾸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것은 108배를 하면서, 마라톤을 뛰고 40km 구간에 도달하던 순간, 첨단산업센터의 옥상에서 주행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을 바라보며 떠오른 감사한 기분과 비슷한 것이었다.
목적이 반드시 처음부터 완벽하고 구체적일 필요는 없다. 하나의 장면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이 완성되고 보다 다양한 것을 향해 확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