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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호 May 02. 2022

1913년, 울워스 빌딩과 마천루의 시대

20세기 100장의 사진 (1)

개관 직후 울워스 빌딩의 모습

20세기 초의 미국은 건국한 지 120년이 좀 지난 젊은 나라였지만 그 국력의 신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미국의 경제 중심지인 뉴욕과 시카고 등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고 있었는데 이들 도시들이 성장할수록 다양한 건물과 상업 시설들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뉴욕은 맨해튼의 월스트리트 주변을 중심으로 높고 거대한 건물들이 지어지기 시작 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건물이 하늘에 닫는다는 의미로 마천루 (Skyscraper)라 불렀다. 이러한 마천루는 승객용 엘리베이터의 확산과 더불어 가속화 되었는데 1857년에 만들어진 ‘호그아웃 빌딩’은 24m의 5층 건물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대단한 볼거리였다. 이후 건축 기술의 발달을 통해 1908년에는 187m의 ‘싱어 빌딩’이 1909년에는 210m의 ‘메트로폴리탄 보험 빌딩’이 세워지며 세계 최고층 건물로서 위용을 자랑했다. 이 시기에 자신의 사업을 통해 더욱 큰 미래를 꿈꾸었던 한 사내가 마천루 경쟁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그의 이름은 F. W 울워스였다.


1852년에 뉴욕에서 태어난 울워스는 16세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잡화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타고난 성실함과 아이디어로 주인에게 인정 받은 그는 당시 잡화점의 많은 물건에 가격표가 없고 점원과 손님의 거래/협상에 의해 판매 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자신만의 사업을 하고 싶었던 그는 몇 번의 실패 끝인 1879년에 자신의 저가 할인 매장인 ‘5센트/10센트 샵’ (Five and dimes)을 오픈하게 되었다. 모든 물건 가격이 저렴한 10센트 이내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게 되었고 1889년에는 12개의 체인점을 거느리게 된다. 그리고 1900년이 되자 무려 59개의 점포를 가진 엄청난 규모의 사업체로 성장 시키며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11년에 울워스는 전미국에 600여개에 달하는 점포를 거느린 유통업계의 제왕이 되었다. 그의 다음 목표는 이러한 성공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동시에 부동산 임대업도 가능한 F. W 울워스社의 본사를 짓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건축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울워스의 야망과 당시의 시대적 트랜드가 맞물려 상상 이상의 규모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거대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 울워스가 찾은 사람은 현대적인 빌딩을 건축하며 역사적 양식을 융합하는 것으로 유명한 ‘카스 길버트’였다. 최초에 논의된 건물의 높이는 대략 150m정도의 30층 빌딩이었다. 하지만 1901년 9월이 되자 빌딩의 설계 높이는 45층으로 올라가 있었고 얼마 후 울워스는 길버트에게 190m 높이의 설계를 요청하게 된다. 울워스는 자신의 빌딩을 뉴욕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에게 유명한 랜드마크로 만들려고 했고 이를 통한 자사 홍보효과가 지대 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결국 1911년 1월에 당시 세계 최고층 빌딩이었던 메트로폴리탄 보험 사옥을 넘어서는 건물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한다. 최종적인 빌딩 높이는 메트로폴리탄 보험 사옥보다 30m가 더 높은 241m가 될 예정이었다.


울워스 빌딩의 위치는 맨해튼의 중심가인 ‘브로드웨이 233’이었는데 이미 부지 메입 이후 1910년 11월부터 기초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건설사는 당시 뉴욕의 고층 건물 전문이었던 ‘톰슨 스타렛社’가 맡았다. 세계 최고층 빌딩의 건설을 위해 수많은 철제 강철과 골조가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강철 골조가 거리를 지나갈 때 무게로 인한 도로의 파손을 막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빌딩은 매 주당 1.5층의 비율로 올라가고 있었고 1912년 중반 까지는 전체적인 빌딩의 외형이 완성 되었다. 55층으로 된 빌딩은 53층 이후 가늘어지며 피라미드형의 첨탑으로 이어진다. 외형의 모습은 마치 중세 고딕 양식을 한 대성당의 현대판처럼 보였다. 울워스는 빌딩의 외부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까지도 엄청난 신경을 썼는데 건물의 로비는 금빛 색조의 아치가 연결되어 있어 마치 유럽의 궁전이나 성당에 와 있는 느낌을 준다. 더불어 금박을 입힌 초고속 엘리베이터나 수많은 테라코타 장식과 5천개에 이르는 창문을 통해 모던 하면서도 격조 높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55층에는 시내를 조망하는 전망대가 위치해 있었는데 이곳은 이후 년 30만 명이 방문하는 뉴욕의 명물이 된다. 총 공사비는 약 $1,350만이 소요 되었다. (현재 가치로 약$ 3억 7천만)


울워스 빌딩은 모든 공사와 장식을 마무리하고 1913년 4월 24일에 그 문을 열었다. 빌딩의 개관식에는 무려 900여 명에 이르는 당대 최고의 귀빈들이 참석 했고 야경을 바라보며 세계 최고층 빌딩에서의 연회를 즐겼다.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을 위해 워싱턴 D.C에서 직접 버튼을 눌러 건물의 조명을 점등 시키는 멋진 이벤트도 실시했다. 빌딩은 곧장 뉴욕 시민들에게도 명소가 되었다. 이렇게 유명한 빌딩의 이름에 걸맞게 그 임차인들 명단도 다양 했는데 ‘어빙 내셔널 익스체인지 은행’과 ‘유니언 퍼시픽 철도’ 등의 대기업들과 통신회사, 다국적기업들이 입주했다. 콜롬비아 레코드사는 1917년 울워스 빌딩의 녹음실에서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가 연주하는 세계 최초의 재즈 음반을 녹음했다. 더불어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도 울워스 빌딩에 입주 했는데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입주 얼마 후 쫓겨 났다고 한다.


울워스 빌딩은 1930년 5월 ‘월스트리트 40 빌딩’과 ‘크라이슬러 빌딩’이 지어지면서 세계 최고층 건물의 타이틀을 넘겨주게 된다. 이후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쳤는데 2001년 9.11테러를 통해 건물의 유리창과 일부가 파손되는 일도 겪게 된다. 하지만 이후 상부 30개 층을 고급 레지던스로 변경 하는 등 새로운 변화를 주도 하면서 10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비즈니스의 중심이자 뉴욕의 랜드마크로 사랑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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