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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l 22. 2023

잡담

한주사

”네가 한 주사 첫째냐? “

“네”

“이름이 뭐였지?”

“동익입니다”

“아, 그래, 맞아. 동익이었지. 한 동익“

”네 “

“이리 와 앉거라”

동익이는 아버지 친구 맞은편의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 친구는 다른 친구 한 분과 술을 한잔 주고받은 뒤 동익이 에게 잔을 내밀었다.

“술 한 잔 하련?”

“아닙니다. 아직 학생이라……“

”괜찮느니라. 이런 날은 한 잔 해도 되니라. 자. 받아라. “

아버지 친구는 동익이 앞에 잔을 놓고 소주를 따라주었다.

동익은 물끄러미 잔을 채우는 아저씨의 손에 들린 소주병을 보았다.

작은 소주잔에 술이 찰랑거리자 동익의 감정은 북받쳐 올랐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더욱 생각났다.


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일을 마치고 난 저녁 무렵이면 항상 얼큰하게 술에 취해 들아오셨다. 그러고는 어머니에게 술상을 보아오게 하고 냉장고에 있는 소주병을 꺼내 또 진하게 마시고는 잠이 드셨다.


”네 아버지가 이렇게 돌아가실 줄이야. 참 허무하구나”

“….”

“동익아, 네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셨다. 우리 면은 물론 동네를 위해서도 많은 일을 하셨어”

 

그랬다. 동네 사람들은 뭘 고치거나 일손이 필요하면 항상 아버지를 찾았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아무리 궂은일이라도 뛰쳐나가 그 일을 도왔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동석이는 저게 바로 공무원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시민과 주민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 그게 바로 사람들이 급할 때면 찾는 한주사로 불렸던 나의 아버지였다.


동익이는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를 한주사라 부를 때면 어깨가 으쓱해지고는 했었다. 주사라는 칭호는 공무원들에게 주어지는 관이라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그때 그들은 한주사님, 한주사님 하면서 얼마나 굽신거렸던가.


“넌 한주사 아들인 것을 자랑스러워하거라 “


옆에 있던 또 다른 친구분도 술잔을 기울이며 옛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동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렇지. 그렇고말고. 한 주사가 없었으면 면이나 동네가 이만큼 되기도 힘들었을 거야. 면이나 동네에 새로운 집이 들어서면 항상 남들보다 먼저 찾아보고 도움을 주었으니까”


자정 무렵. 조문객들이 모두 돌아간 빈소에 동익이는 어머니와 둘이서 조촐히 영정을 지키고 있었다.

사진에는 아버지의, 서글한 눈매에 입에 미소를 띤 활짝 웃는 표정이 담겨있었다.


“엄마! 아버지는 언제부터 면에서 일했어요?

”그게….. “

”엄마! 아버지는 언제 공무원이 되신 거예요?

“……”

“공무원이면 비석에 한 글자 새겨야 되지 않아요. 처사가 아니고 공직명 말이에요? 제가 듣기로 공무원으로 직책이 높거나 근무한 기간이 길면 비석에 새긴다고 하던데요. “

“동익아….. 그게 말이다…..”

“가만있어봐… 비석하는 사람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지…..”


동익은 장례식 운영실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바쁘게 울렸다.

동익은 휴대폰을 귀에 대고 볼펜을 찾아 쥐며 어머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 아버지 근무 몇 년 했어요? 급수와 직책은요?”


동익의 엄마는 동익이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낚아챘다.


“아니여 이놈아. 그게 아니란 말이여”


동익의 어머니의 돌발적인 행동에 눈이 동그래졌다


”엄마! 왜 그래. 빨리 전화기 줘봐요. 물어봐야 되니까 “


동익은 어머니 손에 쥐어진 전화기를 다시 빼앗았다.


전화기에서 직원으로 짐작되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익은 전화기를 고쳐 잡았다.


“여보세요”


장례식장 직원의 전화응대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예. 수고하십니다. 저는 특실 2호 상주인데요….”


이때 동익의 어머니가 다시 한번 거세게 동익의 귀에서 전화기를 뺐었다.


”엄마. 왜 이래요 “

”이이고 이놈아! 그게 아니란 말이여. 그게 아니란 말이여 “

”엄마. 뭐가 아니란 말이에요? “


전화기에서는 계속 장례식장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엄마“

”이 놈아! 너의 아버지 주사는 그 주사가 아니여. 그 주사가 아니란 말이이여. 너의 아버지 주사는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라고 술 주자를 쓴 한 주 사라고 불렸단 말이여. 만날 술만 처마시고 싸 돌아다닌다고.혀서”



어머니는 손으로 주먹을 쥐어 답답하다는 듯이 자신의 가슴을 쳤다.


동익은 아찔하게 머리가 핑 도는 걸 느꼈다. 그는 지금까지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믿음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런데 그 주사가 줄 주사였다니.


동익은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꽃과 과일 등 제물에 둘려 쌓인 한가운데 자리한 아버지의 영정은 함박 웃는 모습으로 동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에피소드는 저와 친한 형의 실화입니다. 형은 지난달 주왕산에서 야영을하며 한 잔 취해서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술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유쾌하게 웃으면서요. 자기는 진짜 아버지가 한주사로 대단한 사람인줄 알았다면서 말입니다. 그때 우리 앞에서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자학 개그를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그 형의 말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슬픈데도 한 바탕 크게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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