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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Aug 19. 2023

의식의 각인

잡담

만석의 버스를 타면 어른이나 노인분들한테 자리를 양보했어요. 노인석이 아니라도 어른이 서있으면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른께 자리를 내주었죠. 그때는 그게 당연한 일이었어요. 일 더하기 일이 이듯이 기본 중의 기본. 말 그대로 당연한 것이었죠. 우리는 당시 어른들이나 선생님들로부터 그렇게 가르침을 받았어요. 그게 착한 사람이라면서 말이에요. 나보다 먼저 나이 많으신 어른에게 양보하라고요. 물론 법전에는 그런 법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아요. 민법이든 형법이든 어느 법이던 요. 굳이 법적 근거를 따져보자면 그냥 관습법인 거죠. 그래서 어떤 어른들은, 좀 얌체스럽다고 해야 할 까, 일부러 학생이나 젊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자리로 가서 그 옆에 서고는 했죠. 자리를 양보받으려고요. 또 일부는 막무가내로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그 자리를 나에게 비워달라고 반 협박조로 호통을 치거나 꾸지람을 놓는 어른들도 있었고요. 그런 이유 때문인지 버스가 정류장에 멈출 때면 타는 사람이나 이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신경이 긴장으로 팽팽해졌어요.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서로 간의 신경전이 대단했던 거예요. 뭐 그렇다고 그때 그랬던 걸 문제 삼고 싶지는 않아요. 문제는 제가 아직도 그런 행동을 하려고 한다는 거죠. 가끔 지하철이나 버스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제가 자리에 앉아있고 혹여라도 저 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어른이 타면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엉덩이가 덜썩 거리고 일어나기 위해 허벅지에 힘이 들어간다는 거예요. 저도 이제 옛날로 따지면 저 보다 젊은 사람들한테 양보받을 나이가 한 참이나 지났는데도 말이죠. 어릴 때 배우고 보고 행동한 것들이 이렇게 무서운 거예요. 나이가 적잖이 들었어도 이미 의식에 각인되어 버린 그 생각과 행동들을 떨쳐버리지 못하니까요. 젊은 친구들은 자리 양보 같은 것에는 일도 신경 안쓰는데  말이죠. 그래서 오늘은 그냥 볼일 보러 갈 때 자가용 타고 갈려고요. 젊은이들 눈치 안 보게요. 요즘엔 우리가 젊은이들 눈치 봐야 하거든요. 여러분도 눈치 안 보려면 자가용 이용하세요. 젊어서는 어른 눈치 보랴 나이 든 지금은 젊은이 눈치 보랴. 힘들게 살아와 나이 든 것도 서러운데 어른들에 이어 젊은이들 눈치까지 보면 삶이 너무 서글프잖아요.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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