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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an 04. 2024

기억

잡담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부끄러워요. 내 의식 수준이 고작 그것밖에 안 됐었나. 또 내가 그렇게 단순무식한 인간이었나 싶어서요. 이야기는 고등학생 때였어요. 학급 반장과의 대화였죠. 주제는 사형수에게 과연 총을 쏴서 사형을 시킬 수 있는 거냐였어요. 저는 당연히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이니 쉽게 총을 쏴 죽일 수 있다 했고 반장은 그래도 사람인데 그 눈을 보면 어떻게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느냐, 자신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말했죠. 전 그때 그 반장이 참 답답하고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인데, 다른 사람의 생명을 뺐은 범죄자인 사형수인데 왜 그런 사람에게 총을 쏠 수 없다는 것일까 하고요. 저의 이런 생각과 의지는 꽤 오래되었어요. 그래서 군도 특수부대를 선택해 갔고요. 군생활하는 동안에도 이런 저의 생각이 바뀔 일은 당연히 없었고요. 어떨 때는 동료들과 빨리 전쟁이 한 번 벌어져 전투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거리낌 없이 하곤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군을 제대하고 나이 서른 살이 넘자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더라고요. 젊을 때는 생기지도 않았던 두려움들이 곳곳에서 조금씩 올라오고요. 그래서 요즘은 벌레도 함부로 죽이지 않아요. 뒤늦게 생명의 귀중함을 깨닫게 된 거죠. 그래서 요즘도 가끔 그때 빈장과 이야기했던 기억이 올라오면 부끄러워요. 같은 나이였는데 내 생각이 상대적으로 그렇게 짧고 단순했나 싶어서요. 한심하고 부끄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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