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_ 4화. 다시, 너를 마주한 봄날

소설 <다시, 나의 봄> 4화.

by 미소 달


복자는 아직도 태블릿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 화면 속 자신의 얼굴은 분명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 너머로 복자의 마음은 복잡하게 요동쳤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삼각대의 각도를 다시 확인해 봤다.

살짝 기울어져 있던 화면은, 다시 고요히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됐나… 이번엔 제대로 됐겠지…”

복자는 작게 중얼이며, 버튼을 다시 눌렀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건 단지 ‘미리 보기’였다.

“또 안 됐네… 아이고, 내가 뭘 잘못한 걸까…”

태블릿을 들여다보던 복자는 손끝에 힘이 빠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가 벌러덩 누워버렸다.

“아이고.. 뭐가 이리 어렵누. 아구구..”

앓는 소리를 내며 복자는 이마에 팔을 올려버렸다.

사실 이만큼도 복자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기계치인 복자가 기계를 켰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어 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삶이다.

더 해내고 싶지만 복자는 한계에 두딪혔다.

생각으로만, 의지로만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

‘띵동.’

‘띵동.’

잠결에 들은 초인종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어이쿠.”

복자는 놀라며 몸을 일으켜 세웠고 인터폰으로 다가가 얼굴을 가까이했다.

“할머니!”

지훈이었다.

그녀의 눈에 순간 물기가 맺혔다.

“지, 지훈아…”


거의 속삭임처럼, 믿기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

지훈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짜잔! 할머니가 좋아하는 그린티 아이스크림 사 왔지!


할머니 택배는? 택배는 받았어? 조립은? 아직 조립 못한 거지?”

문을 열자마자 복자에게 애교 섞인 표정으로


아이스크림 가방을 내밀며 질문을 쏟아붓는 복자의 손자, 지훈이었다.

복자는 지훈이의 걸음에 뒤로 밀리면서도 지훈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어릴 적 장난기 가득한 그 얼굴이 그대로였다.


‘정말.. 살아있는 모습이야.. 아이고, 내 새끼..’


그녀는 조심스럽게 지훈의 팔을 살짝 잡았다.

그 손끝이 떨렸다.

마치, 꿈속의 장면이 현실이라는 걸 확인하려는 듯.

“어서 와. 내 새끼. 지훈아. 들어와.”

거실로 들어온 지훈은 곧장 거실 한편에 놓인 태블릿 삼각대 앞으로 다가갔다.


“엥? 이거 할머니가 조립한 거야?”

“아.. 응. 한다고 했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안 되는 것 같아.”

복자의 자신 없는 말에 지훈은 이리저리 보다가


“잉? 다 잘 연결됐는데? 뭐가 안돼?”

“내가 ‘안녕하세요. 복자입니다.’하고 이 버튼을 눌렀는데 녹화가 안돼.”

“크큭큭. 할머니. 푸하하. 이 버튼이 아니고 요걸 눌러야 해. 역시.. 푸하하.”

너무 박장대소하는 지훈에게 슬그머니 상처를 받고 있는 복자였다.


“아니, 뭐, 내가 잘 모르니까..”

자신감이 점점 떨어지는 복자의 표정과는 다르게 지훈의 표정은 정말 신나 있었다.


“우와. 그런데 할머니 이걸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게 알았데? 대단한데?”

지훈의 그 한마디에 떨어지던 자신감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복자의 표정에 생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지훈은 능숙하게 삼각대의 각도를 조정하고, 화면을 켰다.

복자는 지훈의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봤다.


“지훈아.”

복자는 말문을 열었다.

“할머니는 우리 지훈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살면서 힘든 일도, 죽을 것 같은 일들도 일어나는데


그런 일이 있으면 네 부모나 나한테 손을 내밀어 줘.


우리는 지훈이 보다 더 살아봤으니까


선배한테 도움요청 한다 생각하고 손 내밀어 주면 좋겠어.


응?”


지훈은 손을 멈추고, 천천히 복자를 바라봤다.


“.. 할머니. 왜 갑자기 그래? 무슨 일 있어?”

되려 걱정 어린 표정으로 지훈이 복자를 바라봤다.

“아니. 무슨 일은. 살아보니 그래.


내가 세상을 구하는 위인은 아니어도


내 새끼들, 내 가족은 지켜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말을 하는 복자의 시야가 캄캄해져 갔다.

“아구아구. 우리 할머니. 오늘 그날이야? 크크큭.”

지훈이 웃으면서 앉아있던 복자를 자신의 배로 안아버렸다.


장난스러운 포옹이었지만 지훈의 손은 복자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닌데. 희한하네..


할머니 나이에 그날은 없는 걸로 아는데. 크크큭.”

지훈의 입에서는 장난스러운 말들이 튀어나오고 있었지만


지훈의 표정은 웃고 있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을 담고 있었다.

“아구 답답해.”


자신의 품에서 버둥거리는 복자를 놓아주고 지훈은 다시 태블릿 앞으로 가 다시 세팅을 마쳤다.

잠시 후, 태블릿 화면에 복자의 얼굴이 다시 비쳤다.

지훈은 그녀의 앞머리를 살짝 넘겨주며 웃었다.

“할머니. 진짜 해봐.

할머니 얘기,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좋을 것 같아.

나는 그렇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이야기를 들을 때가 제일 좋더라고.


할머니랑 대화를 해도 좋고.


이건.. 할머니가 너무 자신감 넘칠까 봐 말 안 하려 했는데..


할머니랑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진심이야.”

복자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다시 해볼까.”

지훈이 태블릿의 녹화 버튼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크리에이터 복자님! 이제 여기 누르고, 시작하시면 됩니다. 히히.

처음에 인사하고, 그냥 평소처럼 얘기하면 돼. 할머니 잘하잖아. “

복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 복자는 작은 산세베리아 화분을 옆으로 옮겼다.

그 잎 사이로 햇빛이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그녀는 녹화 버튼을 누르기 전,

지훈을 향해 아주 작게 속삭였다.


“이번엔, 후회하지 않으려 해.”


그리고—

녹화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복자입니다.”


짧고 분명한 인사.

복자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카메라를 마주했다.

“이 이름으로, 다시 살아보려 합니다.

누군가가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던 이름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선택한 이름으로요.”


그녀는 잠시 멈췄다.


뒤에서 지훈의 눈빛이, 말없이 그녀를 응원하고 있었다.


복자는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은,

잃어버렸던 시간을 마주한 사람의 웃음이었고,

그 시간 안에서도 다시 살아보려는 사람의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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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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