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세상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자꾸만 새어 나오는 우울과 불안으로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동안 쌓인 모진 말들과 행동들이, 이제야 제 모습을 드러낸 듯했다.
그래도 버텼다.
어떻게 들어간 곳인데, 얼마나 오래 꿈꿨던 자리인데.
하지만 육 개월이라는 쉼 속에도 마음의 감기는 쉽게 낫지 않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자 또 무너져 내렸다.
고작 이렇게 되려고 그 많은 시험을 거쳐왔던 걸까.
모두가 미웠다.
날 이렇게 만든 타인도, 상황도 그리고 나 자신도.
그러나 아무리 탓하고 어둠의 늪 속으로 빠져들어도, 이미 어긋난 버린 삶의 방향을 되돌릴 순 없었다.
단지 결단만이 필요했다.
늪 속에 머물며 자신을 잃어가고 현실과 타협할 것인지. 아니면, 늪에서 빠져나와 주어진 것들과 과거의 꿈을 내려놓고 무모하고도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것인지.
수많은 밤을 뒤척이며 고민한 끝에 비로소 결정했다. 후자의 삶을 따르기로.
현재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었다. 안정된 미래조차 지금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정리하고, 꿈의 직장을 떠났다. 다행히 마음의 감기는 서서히 나아졌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손가락질 하고, 혀를 찰지도 모른다.
왜 버티지 못했냐고, 그 시간들이 아깝지도 않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거냐고.
그래,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생각 없고 대책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험해 보지 않고선 알 수 없다.
만약 내가 이 꿈을 얻지 못했다면 지금도 후회했을 것이고, 나와 맞지 않다는 걸 알 수도 없었을 것이다.
직접 부딪혀 부서져본 후에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미 지나온 시간을 주어 담을 순 없다.
그리고 그 시간 중 의미 없는 순간은 없다. 한순간, 한 순간이 모여 나라는 존재와 나의 생을 만든다.
마음의 감기는 아직 옅게 남아았고, 청춘의 한 부분은 여전히 짓눌려 있지만 그 상처와 흉터마저 이제 나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안고도 파도처럼 살아갈 나 자신을 믿는다. 그러니, 더 이상 후회는 없다.
비록 깊고 긴 고통의 터널 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 어둠을 딛고 눈부신 빛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부디 이 희미하고도 조약한 희망의 실을 붙잡고, 마음의 감기에 걸린 모든 이들이 살아갔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잘 먹고, 잘 자며 자신을 다독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감기는 하늘 위 구름처럼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옅은 한 줄기 햇살이 마침내 당신을 알아보고 비춰줄 것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 다시 당신만의 반짝임이 세상에 닿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