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점심을 먹을 땐 익숙한 곳에서 조용히 먹는 게 좋았다. 그래서 건강에 좋은 야채비빔밥을 1년간 먹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게 됐다. 아따씨와 일을 하며 같은 점심을 먹어야 하니 내가 원하는 메뉴만 고집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평소 먹거리에 진심인 그녀에게 같은 식당의 동선과 정해진 메뉴만 고집했다가는 점심을 굶으려 할 것이다. 따로 먹기엔 시간과 비용적인 면에서도 쓸데없는 고민에속하는 것이니 평화로운 점심을 위해 메뉴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점심마다 메뉴를 고민하며 걸어다니기조차 뜨거웠던 여름. 밖에 나가기 싫어 매장으로 배달되는 도시락을 먹자는 의견이 나왔다. 일반 음식점에서 먹는 것보다 저렴하며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에 사장님께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셨다. 배달업체를 알아보고 점심을 먹을 공간과 식탁을 마련해 주시니 괜찮은 점심시간이 되는 듯했다.
일주일간 메뉴를 미리 알 수 있었고 11시 30분에 매장으로 도시락이 배달되는 방식은 좋았다. 하지만 도시락에 밑반찬이 많지 않았다. 대충 먹는 음식이 아니라 건강을 생각하는 식단에는 영양소가 부족하다 판단되어 각종 소스와 밑반찬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아따씨는 멸치볶음과 야채, 쌈장, 오이김치를 가지고 왔고 나는 양배추찜과 발사믹식초를 가지고 오는 식이었다.
덕분에 출근할때마다 챙겨오는 먹거리 가방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매일 소풍오는 느낌이 들었고 식탁엔 야채풍년이었다. 건강식으로 과식하는 점심이랄까.
"아~ 역시 쌈장이 최고입니다."
"아! 이건 입에 안 맞아요."
짠맛을 좋아하는 아따씨의 감탄사와 도시락 반찬의 평가는 날마다 이어졌다. 짜지 않으면 아무거나 잘 먹는 나에겐 남이 해준 모든 음식들은 맛있었다. 그건 도시락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매장에서 배달된 도시락을 먹는 일주일간은 좋았다. 도시락에서 부족한 야채는 우리가 가지고 온 반찬들로 채우고 있었으니 포만감과 만족감이 남달랐다. 무엇보다 편했던 것은 밖을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어느 해보다 뜨거웠던 여름 따가운 햇빛을 피해 시원한 매장에 있다는 것 자체는 피서였다.
그렇게 매일이 소풍같았던 점심시간. 1주일은 좋았고 2주일부터 그저 그랬으며 3주일이 지나면서 힘들어졌다. 배달된 도시락이 물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장님도 같은 마음이셨는지 다음 날부터는 식당밥을 먹자고 하셨다. 그렇게 한여름 에어컨 같이 쿨했던 도시락은 마무리 되었다.
다음날 식당 메뉴로 선택된 음식은 야채 듬뿍비빔밥. 1년동안 같은 메뉴를 먹었던 식당으로 향했다. 3주일 만에 먹는 야채비빔밥은 환상적이었다. 깍두기와 김치맛은 일품이었고 입에서 꿀처럼 들어가는 밥과 야채의 아삭한 식감은 감동이었다. 매장에서 간편한 도시락을 먹다가 식당에서 차려진 밥을 먹으니 제대로 된 집밥을 먹는 느낌이었다.
음식을 먹는 동안에도 역시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밥알을 씹다 전날에 먹었던 도시락을 생각했다. 배달된 도시락을 오래 먹지 못해 미안하단 생각이 들면서도 식당에서 전달되는 그릇의 따뜻함에 감사해졌다. 플라스틱 그릇보다 사기그릇과 쇠그릇에 담긴 음식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