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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사람과 전화할 때 사회적 언어와 톤이 있는데.

사투리 이야기

by 글쓰엄

카운터 위에 놓인 발주서가 눈에 들어왔다. 아따씨가 작성해 놓은 멀티탭 주문서였는데 수량이 적어 보였다. 최소 주문량에 부족해보는 품목과 수량이 적힌 종이는 내 고개를 삐딱하게 만들었지만 주문서라는 것을 만들어 놨다는 자체가 어디인가. 매장에서 해야 하는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는 뜻이니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출근해서 자신이 작성해 놓은 주문서를 팩스로 전송하는 아따씨의 뒷모습을 보고 말했다.

(과장)"아따씨야. 멀티탭 주문서에 수량이 너무 적은 것 같아요. 기본 10개씩은 해 주어야 서로 미안하지 않을 텐데. 품목도 적은데 수량까지 찔끔이니 주문받는 입장에서 서운해할 것 같아요."

(아따씨)"그래요? 사장님도 수량이 적다고 하시던데. 어떡해요. 팩스를 보냈는데. 문자로 다시 보낸다고 할까요?"

(과장)"아니. 문자로 보내지 말고 전화로 말해요. 업체에 팩스종이 낭비한 것도 미안한데 전화로 말해야지요."

(아따씨)"아이~ 전화로 말하기 싫은데."

(과장)"업체분이랑 목소리도 트고 사이좋게 지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전화를 해야 미안한 마음도 전달될 거고요. 전화로 해봐요."


마지못해 핸드폰을 꺼내든 아따씨의 입술이 부풀어 올랐지만 연결음이 들리는 순간 승모근이 올라오며 목이 움츠러들었다.

(아따씨)"여보세요. 아! 네. 저 문구점인데요." 세상에 저렇게 순하게 말을 한다. 평소 씩씩한 면은 어디로 갔는지 소심해 보여 안쓰러울 지경이다.

(업체)"네! 안녕하세요."

(아따씨)"제가 방금 팩스를 보냈는데요. 수량이 적은 것 같아서 쪼매 늘카~가 다시 보내드릴께예~"


옆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저 말투를 듣는 순간 초집중하게 됐다. 나는 옆으로 벌어지는 입술을 눌러가며 웃음을 참기 시작했다. 아따씨가 말한 '늘카~가'는 수량을 늘린다는 사투리다.('쪼매'는 조금의 사투리)


(업체)"그럼 보내주신 팩스는 폐기하고 다시 보내주신다는 말씀이시죠?" 예의 바른 업체직원의 목소리는 이런 상황에서도 진지하다 .

(아따씨)"네. 다시 보내드릴께예~"


아주 소심하고 조용하며 조심스러운 업체와의 통화는 끝이 났다. 내 두 손과 두 발은 모아지기 시작했고 아따씨를 향해 큰 소리로 외치게 되었다.

(과장)"뭐라고요. 늘카~가 다시 보내드린다고요?"

(아따씨)"왜요?"

(과장)"에잇. 이 사람아. 업체직원은 반듯한 말투에 공손한 사회적 언어와 톤으로 말하는데 당신은 공손한 사투리로 말씀을 하시균형이 맞질 않습니다. 살짝 부끄럽기도 한 것이 여기가 거제라는 걸 업체직원에게 각인시키고 있는 겁니까?"

(아따씨)"아이~ 그럼 뭐라고 말해요."

(과장)"늘카~가는 그 사람이 모르는 단어일 수 있잖아요. 그 직원도 전화를 받고 얼마나 속으로 웃었겠습니까."

(아따씨)"내가 늘카~가라고 말했나요?"

(과장)"당신이 말한 것도 기억나지 않습니까? 분명히 들었습니다. 늘카~가 다시 보내드린다고."

(아따씨)"아이! 내가 그랬다고요? 아~ 쪽팔려라. 그러니까 내가 문자로 전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과장)"아니. 나는 당신이 그렇게 말을 할 줄 몰랐지요. 세상에 오늘도 특종감입니다. 사투리가 레깅스 바지처럼 입에 착 붙어 있습니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같은 촌년이라 괜찮은데 업체직원은 다른 지역사람이라 사투리와는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회적 언어와 사회적 톤으로 대화를 하는 게 좋은데. 당신은 너무 고향의 언어를 고집합니다. 그래서 웃깁니다."

(아따씨)"아니 그러면 사투리가 부끄럽다는 겁니까?"

(과장)"아니지요. 나도 같은 촌년인데 다른 지역의 분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다른 가면을 쓰고 그와 비슷한 언어를 쓰려고 노력하지요. 그냥 대 놓고 나를 내보이는 것은 사회생활을 적게 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사회적 언어라는 게 있다고요."

(아따씨)"아이~ 몰라요. 그래서 전화를 안 하려고 했는데 으~~ 쪽팔려."

발주서가 적힌 종이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아따씨에게 말했다.

(과장)"어쩔 수 없지요. 그냥 늘카~가 다시 보내는 수밖에요."


같이 듣고 있던 사장님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사장님)"쪼매 늘카~가 보내드릴께예~~"

(과장)"그래 쪼매라고도 했네. 사장님도 들었죠? 맞다. 쪼매라고도 했다. 세상에."

얼굴이 가을철 단풍빛으로 변한 아따씨의 입이 한쪽으로 뾰족해지더니 크게 외친다.

(아따씨)"당신들 둘이~ 내가 가만히 안 둘 거야."


독수리 삼 형제가 되고 나서 아따씨를 향한 레이더가 민감해지고 있는지 하루종일 투닥거리게 된다. 허술한 모습을 흘리고 다니는 엄마를 쫓아다니며 잔소리하는 딸처럼 말이다. 서로에게 편안한 사람일수록 일적으로 당겨주어야 하는 줄도 있는 건데 아따씨에게만은 예외가 돼버린다.


직장생활에 초보인 아따씨의 일처리가 안쓰러워 보인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지만 다른 곳에 가면 희안한 성질의 실수가 될 수 있으니 곤란한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인지 작은 실수나 에피소드가 보이면 장난 꾸러기삼아 눌러주고 집어주게 된다. 지금은 곤란할지라도 다른 곳에서는 조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자주 잊어버리고 사회생활에 대한 관대함만 있는 아따씨가 불안하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저런 식으로 사회생활을 하다가는 본인이 힘들어질 텐데라는 걱정이 된다. 나와 일하는 동안만이라도 사회생활에 대한 현실을 익혀두었으면 한다. 사회는 착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니 그에 따라 나를 보호하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기술들을 익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 익숙한 사투리가 매장에서 나오지만 상대에 따라 다른 말투도 필요하다. 그 점은 사회생활을 할 때 도움이 된다. 사회적 언어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가면도 필요하지 않은가. 그런 점을 강조하며 말을 해주지만 아따씨는 괜찮다고만 한다. 이렇게 살다가 하늘나라로 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늘나라도 아무나 받아주지 않는데 말이다.


덕분에 매장에서 웃을 일은 계속되고 그녀의 유쾌함과 순수함에 고개가 숙여지지만 사회적 언어라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사회적 언어를 사용하고 사회적 가면을 쓰고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일이었다.


아따씨에게 잔소리 꼬챙이를 들이대며 상기시킨다.

"여기서만 그러라고요. 다른 곳에서는 사회적 언어와 사회적 톤을 쓰라고요. 그래야 당신이 곤란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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