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최저가로 계약이 결정된다.
학교장터(S2B)는 학교와 같은 교육기관 관계자분들의 필수 거래 시스템으로 학교와 공급업체(문구점) 간에 거래 시스템을 말한다. 학교에서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를 학교장터를 통해 공고하면 여러 업체의 견적을 받아 최종적으로 계약을 체결하여 거래를 진행하는 방식인 것이다.
학교와 거래하는 문구점이다 보니 학교장터 공급업체로 등록하여 학습준비물을 납품하고 있다. 학교 학생수에 따라 계약된 금액은 다르지만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있으니 챙겨야 하는 품목들은 다양하다. 또 업계최저가로 계약이 결정되기 때문에 학교장터로 계약된 납품건의 수익률은 낮다.
실제로 낙찰된 리스트의 금액을 보면 인터넷 최저가로 책정되어 있다. 그러다 보면 이 금액이 맞는가 싶어 눈을 비비게 된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금액을 그대로 적어 놓은 경우로 어떤 품목은 택배비조차 빠져 있다. 일반 문구점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대체가능한 상품도 아닌데 이런 건 어찌해야 하나 싶어 볼펜만 두드리게 된다. 계약을 체결한 이상 주문해서 줄 수밖에 없지만 공급업체인 사장님의 주머니는 야금야금 털리고 한숨은 늘어만 간다.
예전에는 딱풀 몇 개, 공책 몇 개, 물티슈 몇 개로 문구점에 있는 물품과 대체 가능한 물품을 드려도 괜찮았다. 하지만 갈수록 정확한 물건을 요구하는 상황에선 그 제품으로만으로 납품되어야 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납품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아져 매장에서 챙길 수 있는 게 적어지는 것이다. 학습준비물을 챙기려면 주문하는 게 제일 큰 일이기에 택배량도 많다. 한꺼번에 몰린 택배로 물품을 수거하러 가야 하는 정도가 되고 있다.
품목은 많지만 수량이 적다 보니 챙길 때도 신경이 쓰인다. 박스마다 리스트와 맞는 번호를 매기고 체크하여 넣고 있다. 매번 번거로운 일이지만 이렇게 해야 물품을 검수하면서 신속하게 물건을 찾을 수 있다. 학습준비물을 챙기며 사용하는 볼펜과 형광펜만 해도 여러 개다. 학생 때 쓰지 않았던 걸 이제야 쓰고 있는 느낌인데 글자 위에 줄을 그으면서 색깔이 채워지는 맛이 있다.
물건을 챙기며 허리를 숙이는 일이 많아 곳곳에서는 곡소리도 터져 나온다. 매장에서 수많은 박스를 정리하다 보면 집에 도착한 택배 상자가 징그럽게 보일 때도 있다. 선물 같아야 하는 물건이 열어야 하는 일로 느껴지니 손도 대기 싫은 것이다.
리스트에 있는 모든 물품을 챙겼으면 이제는 배송이다. 크고 무거운 박스를 차에 싣고 학년실로 옮겨야 한다. 그냥 옮기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물품이 제대로 왔는지 선생님과 검수도 해야 한다. 차후 물품에 대한 문제를 없앨 수 있기에 꼭 지키는 편이다. 타 업체의 경우 분명히 물건을 납품했는데 그 물건을 찾지 못해 100만 원이나 되는 물건을 재주문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학습준비물로 납품해 봐야 총이익이 몇십 만원쯤 됐을 텐데 100만 원을 더 썼으니 그 건은 안 하니만 못하게 됐다. 경쟁업체지만 이야기만 들어도 갑갑하다.
한 학교를 챙길 때 금액이 너무나 터무니없어 사장님께 물었다. 이거 얼마 남느냐고. 이거 손해 아니냐고. 그랬더니 그래도 남는단다.
"600만 원 납품하면 총 30만 원은 남아요. 그런데 세금 내면 어? 손해네?"
"뭐라고요? 그걸 왜 해요."
"그러게 말입니다. 다른 사장님들도 재산세만 내게 하는 학습준비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나도 이제는 힘이 드네요. 못하겠어요."
온몸을 갈아서 납품한 것 치고 형편없는 수익이다. 힘이 빠지고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사람이라도 많으면 괜찮을 텐데 없는 인원에 다른 일까지 병행하고 있으니 남는 건 몸에 붙인 파스뿐이다.
학교장터는 학교와 지역 업체 간의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를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학교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 업계 최저가로 낙찰되는 시스템은 지역 경제 활성과는 거리가 멀다. 인터넷 가격은 지역에서 받아오는 금액보다 저렴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쟁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급업체가 공고에 참여하는 것은 이것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금액이 입금되어 사장님의 통장을 스쳤고 그 덕에 그 금액을 통장에 찍어봤다는 것은 찰나의 기쁨이다. 오히려 그 금액을 찍은 경험의 수수료까지 쓸어 가는 셈이니 부가세나 종합소득세를 낼 때는 헉소리가 난단다.
해가 갈수록 최저가를 찾고 품목의 다양성을 원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에 맞춰 공급하기엔 지역 상인은 힘이 없다. 남는 게 있으면 신이라도 날 텐데 갈수록 한숨뿐이니 제도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학교장터는 지역상인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됐다. 물론 모든 물품이 그러한 건 아니겠지만 문구용품에 붙은 업계 최저가는 그렇다.
할 수 있는 게 적어지니 해야 하는 것도 줄어든다. 온라인으로 가격 투명성이 생기면서 여기서만 판매할 수 있는 물품을 만들지 않는 이상 살아남기 쉽지 않다. 적게 남기는 건 상관없는데 손해가 발생되는 경우라면 애초에 물지도 않아야 한다. 정답은 나와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학교장터는 문구점의 딜레마로 삼키기 힘든 존재가 됐다.
낙찰된 리스트
많은 품목과 터무니없는 금액은
시작부터 흰색 머리카락을 선물한다
이건 이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물건
저건 저곳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
그래도 그어야 하는 글자들
그래서 채워지는 박스들
입술 밖으로 한숨이 나고
부릅뜬 눈알은 건조해진다
날아다니는 손과 다리로
완성되어 가는 박스들
리스트에 형광펜이 색칠되고
물건들엔 번호들이 붙여지면
배송되는 박스들
속이 시원해지는 찰나의 순간
무릎에는 물이 차고
손가락은 시려 오니
사장님의 허리엔 파스만 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