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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희번뜩하는 몸짓언어를 알아준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by 글쓰엄

매장에 전화한 건으로 오전 내내 아따씨를 따라다녔다. 이번 일을 잊고 다시 매장으로 전화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눈을 맞추고 폰을 가리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백 마디 말보다 몸짓 한방이면 끝나니까 말이다. 그렇게 점심을 먹기 전까지 몸으로 잔소리하는 진상 과장으로 일했다. 그만큼 매장으로 전화받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나 보다.


점심을 먹고 카운터를 지나면서 아따씨를 향해 갑작스럽게 돌아본 순간이었다.

"아이고 알겠다고요. 미안하다고요."

"내가 뭐라고 할 줄 알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매장으로 전화하지 말라는 말이잖습니까. 나도 알아들었다고요."

"어? 이제는 눈빛만 봐도 제 말을 알아주시는 겁니까?"

"아이고. 과장님이 눈을 희번뜩하고 뜨는데 그걸 모를 리 가요. 그래도 오늘은 장난기 있는 희번뜩이지. 어쩔 땐 살벌한 희번뜩이 나옵니다."

"살벌한 희번뜩이요?"


"당신이 이기 뭐시고 하면서 옆으로 째려보는 눈이 있어요. 그 희번뜩은 상대방의 폐부를 찌르고 오줌을 질질 싸게 하는 살벌한 눈빛이 되는 겁니다. 당신은 그 눈빛을 보지 못하지만요."

"그런가요. 그러고 보니 사장님도 아따씨에게 농담 섞인 잔소리를 할 때는 코를 찡그리던데. 어머나! 어느새 우리의 몸짓 언어를 알아채셨군요."

"그렇지요. 이 살벌한 매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으려는 저만의 생존방식인 거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비언어적 의사소통인 몸짓 언어가 있다. 몸짓언어는 말하지 않아도 나타나는 신체적 표시로 타인이 알아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손짓, 발짓, 눈짓, 몸짓으로 말하는 언어라 상대가 알아줘야 소통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의도적인 몸짓도 있겠지만 무의식에서 나오는 습관으로도 상대가 알게 되니 신경 쓰이는 행동이기도 하다.

비언어적 몸짓인 잔소리가 내 눈빛을 통해 나왔다니 무안하다. 그리고 왠지 미안하다. 나도 모르는 감정 메시지가 몸짓을 통해 나온 것이라 말해주지 않은 이상 모르고 살았다. 쉽게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후가 되자 급피곤 해졌다. 오전에 아따씨에게 쏟은 에너지로 내 체력이 고갈된 것이다. 달달한 코코아가 그리워지면서 잔소리 폭탄을 맞은 아따씨를 달래줄 필요가 있었다. 음료와 와플이 깔린 폰을 보여주며 말했다.

"아따씨야. 뭐 먹고 싶어요?"

"웬 음료수입니까?"

"당근이지요. 오전엔 채찍을 날렸으니 오후엔 당근을 먹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길게 했으니 와플도 먹어요."

"이건 뭐지? 먹여가며 조련하시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요. 앞으로도 잔소리는 계속될 테니 체력을 보충할 겸 맛있게 드십시오."

"아주 그냥 사람을 가지고 노십니다. 당신들 둘이 내가 가만 두지 않을 겁니다."

"제발 가만히 좀 두십시오. 나도 피곤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일을 잘하면 잔소리도 못해요."

"그런가요?"


편한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몸짓과 장난기가 있는데 그 모습이 아따씨 앞에서만 나온다. 때론 바보 같고 짓궂은 모습이지만 그만큼 편안한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그럴수록 조심하고 지내야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눈빛과 몸짓만으로 통하고 알아주니 이제는 완벽한 내 사람이지만 뭔가 아쉽다. 앞으론 그녀의 실수에도 의연하며 눈빛을 깔고 잔소리하는 몸짓 언어를 터득해야겠다. 일터에선 어쩔 수 없는 진상 과장이 되겠지만 이제껏 이어온 우리의 코믹코드를 포기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홀로 환장한다



혼자 고민스러운 몸짓

어 안 들어가는데요

건네받은 달력과 비닐

내 손에선 한두 번 만에

완성된다


나를 향한 그대의 감탄

나는 홀로 탄식한다


손님과의 대치상태

손에 든 두 개의 카드와

계산기로 느낌이 온다

대치상황에서 긴급투입

두세 번의 클릭으로 상황종료


시간 끄는 실루엣

그럼에도 감사한

환상적인 손님들

활짝 웃는 그대 얼굴에

손님들의 얼굴도 활짝


반짝이는 그대 미소

나는 홀로 환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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