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아~ 가지고' 사투리 쓰는 촌년들
사투리 두 번째 이야기
"손님! 고무줄로 텡가아~드릴까요?"
(손님! 고무줄로 묶어드릴까요?)
계산을 하던 중 아따씨가 손님에게 했던 사투리로 웃음꽃을 피운 일이 있었다.(예전 글에 있어요.)
생뚱맞은 아따씨의 사투리 발언으로 매장엔 웃음여파가 이어졌다. 잊을 수 없는 여자손님의 얼굴과 남자손님의 웃음 참는 목소리는 그녀를 볼 때마다 생각나게 한다.
나 또한 같은 경상도에 살면서 사투리의 구수하고 억센 억양을 구사하는 편인데 아따씨의 자연스럽고 투박한 사투리의 억양은 좀 더 흥미롭다. 같은 사투리여도 소리의 높낮이가 다르고 찰진 느낌이 난다고 할까? 특히 손님에게는 조심스럽고 공손한 표정으로 말하면서 입으로는 거친 억양을 쏟아낼 때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보인다. 조합되지 않는 그 모습에 웃고 있으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그녀의 표정을 보는 것은 웃음의 덤이다.
서울에서 생활할 때 말투 때문에 사람들에게 듣던 말이 생각났다.
"어디서 왔어요? 말투가 경상도?"
"아! 네~"
하도 많이 들어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였다. 내 말투가 서울에서 튀다 보니 신경이 쓰여 말하기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부산으로 내려오며 편안해진 말투는 요요현상처럼 더 억세져 버렸다. 당시 서울사람들에게 들렸을 억양보다 더 세게 말이다.
그런 나에게 아따씨의 말투는 나의 서울생활을 생각나게 했다. 손님에게 차분히 응대하는 상황에서 터지는 사투리폭탄은 손님의 다양한 반응을 불러왔고 그런 점을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갑작스러운 사투리폭탄으로 퍼져가는 웃음연기를 보면서도 괜찮은 척 손님을 응대해야 했으니 온몸이 근질거렸다.
꾹꾹 담은 웃음은 손님이 가시고 난 평온한 상태에서 터졌으며 아따씨의 추가적인 실수를 기다리기도 했다. 또 다른 실수가 기발하다 생각되면 그 실수를 기다렸다는 듯이 지났던 사투리를 따라 하고 있다. 그녀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한번 굽혔다가 튕기듯이 일어나며 외치는 것이다.
"손님! 고무줄로 텡가아~드릴까요?"(고무줄로 묶어 드릴까요?)
그녀의 말투를 따라 하며 얼굴표정과 몸으로 웃기는 나를 누가 말릴 수 있을까.
며칠 뒤 아따씨가 남자직원인 그에게 말을 했다.
"이렇게 능가~가지고('이렇게 넘겨서'의 사투리) 여기를 요렇게 하면 돼."
"뭐라고요?"
"예?"
"능가~가지고 라구요?"
"뭐가 잘 못 됐나요?"
"사투리의 진수를 보여주시는군요. 어쩜 그리 찰지게 사투리를 생활화하시는지."
"아따 마~ 능가아~ 주세요."
아따씨의 두 번째 사투리가 탄생한 순간이다.
억울한 듯 반문하는 아따씨.
"보통 능가트린다(넘어트린다) 라고 많이 쓰지 않나요?"
"능가트린다를 알고는 있는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쓰지는 않아요."
다급해진 아따씨.
"아니 사장님! 사장님도 안 써요?"
아따씨는 일하고 있는 사장님의 동의를 구하려 했다.
"촌에서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쓰시는 건 들었는데...."
사장님도 아따씨의 편을 들 수 없었다.
같은 지역에 살아도 익숙하게 사용하는 사투리가 있고 아닌 사투리도 있다. '능가 트리다'라는 단어는 나에게 익숙하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닌 알고 있는 사투리정도였다. 그런데 아따씨가 일하면서 익숙하게 사용하는 것을 들으니 또다시 웃음이 터지며 며칠 전 사투리를 생각나게 했다.
그러다 책을 보며 책장을 넘기는데 응용이 되면서 나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두 손을 모아 무릎을 한번 굽혔다가 튕기듯이 빠르게 일어나며 아따씨를 향해 소리쳤다.
"아따씨! 책장을 능가~아 주세요."("책장을 넘겨주세요.")
책장은 내 손으로 넘겼지만 조용한 매장에 찰떡 같이 찰진 악센트를 퍼뜨리며 웃음을 전파했다.
머쓱한 아따씨가 코팅을 하러 가는 순간에도 생각했다.
두 손을 모아 무릎을 한번 굽혔다가 튕기듯이 빠르게 일어나며
"아따씨! 코팅지를 같이 낑가아~줄까요?"(코팅지 같이 끼워줄까요?")
퇴근시간보다 먼저 퇴근해 주길 바라는 아따씨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내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매장에서 일에만 집중하며 진지한 시간들을 보내다 누군가로 인해 웃음포인트가 터지게 되면 글로 남겨 놓게 된다. 그날 저녁 완성해 낸 글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브런치에 올릴 글을 주심에 감사를 전했다. 그녀가 이상한 게 아니라 상황이 웃겨서 쓴 글이었다. 진지하게 살아가던 삶이었는데 빈틈으로 무장한 아따씨의 편안함에 나 역시 같은 촌년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글쓰기의 영감이 되어주는 아따씨가 신기하면서도 고맙다. 같은 나이지만 매장일에서 만큼은 초보인 아따씨가 벌이는 문구점 적응기는 계속될 것이다.
"텡가아~드릴까요?"(묶어 드릴까요?)
"능가아~드릴까요?"(넘어뜨릴까요?)
"낑가아~줄까요?"(끼워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