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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뭐지? 챗봇에게 물어봤지만...

by 엘엘리온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라는 예능을 보다가 엉엉 울었었어요. 몇 개월 전, 내가 상담했던 사례와 비슷한

내용의 교통사고 피해자가 몇 년째 침상에 누워 있는 장면이었어요. 사고로 인해서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의 삶까지 망가졌는데, 가해자는 반성문 몇 장 쓰고 손방망이 처벌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가족들은 분노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나는 그 가해자의 마음에 공감하고, 위로를 해줬었어요. 사실, 우리도 운전하다 보면 끼어들기를 할 때가 많잖아요. 그 사고는 가해자의 삶에 있어서도 엄청난 사건이었을 거예요. 의도하지 않은 우발적인 상황이었던 거죠. 살다가 교도소에 올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저는 그 두려움과 절망감에 공감했었어요. 그런데 방송을 보다가 내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된 것 같아서 너무 죄송스러웠어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연신 내뱉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내가 한 일에 대한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3년간 선생님을 만나면서 제가 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늘 '외로움'인 것 같아요..."


"엘엘리온님은 슬픔에 잘 접촉하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 이 이야기를 하면서 또 눈물을 글썽였는데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외로움'이라는 단어로 화제를 돌려버렸어요. 그 연결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요.

울려다가 갑자기 왜 '외로움' 이야기를 한 거죠? 외로워서 울었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앗!


당황스러워서 순간 말음 멈추었다. 머리도 같이 멈춘 듯 멍해졌다.


'내가 '슬픔'과 접촉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슬픔'이 뭐지?

어떤 경우에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지?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를 보면서 나를 울렸던 감정이 '슬픔'이라는 것인가?'


당연히, '슬픔'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전혀 모르겠다. 이 단어가 적절하게 사용되는 상황 자체가 떠오르지 않는다.

핸드폰을 열어 검색창에 '슬픔'이라고 입력해 본다.

'슬픈 마음이나 느낌'이라는 네이버 어학사전의 성의 없는 답변을 뒤로하고, 좀 더 검색하니 '나무위키'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었다.

'복잡한 감정 표현의 하나이다. 탈력감, 실망감이나 좌절감을 동반하고 가슴이 맺히는 등의 신체적 감각과 함께 눈물이 나오고, 표정이 굳어지며, 의욕, 행동력, 운동력 저하 등이 관찰될 수 있다. 또한 눈물을 흘리며 말로 할 수 없는 소리를 내는 '우는' 행동을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


나름 구체적인 설명 같지만, 이 역시 '슬픔'이라는 감정이 표현되는 모습을 설명한 것이지, 근본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 경험에서 그 답을 찾아야만 할 것 같다. 40년 넘게 살면서 그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을 리는 없다. 단지, 선생님 말씀처럼 그것을 맞닥뜨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이 단어에 대한 무지함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토록 이 단어가 두려웠을지도 들여다봐야겠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들여다볼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알지 못하겠다.

다시, '슬픔'이라는 단어로 검색해 본다. 이 번에는 어학사전이 아닌, 블로그 글을 살펴본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익숙한 글이 보인다.

여기에서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이번에는 챗봇에게 물어본다.

나: 젊은 베르테르는 왜 슬펐어?

챗봇:... 그의 열망과 불안, 인생에 대한 탐구 등이 복합적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청춘의 열정과 인생의 복잡성에 대한 고전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대답이 시원찮다.

도대체 '슬픔'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왜 그것을 모르는 것인지...

갑갑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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