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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Jul 12. 2023

우크라이나가 과연 정의인가?

실패한 전쟁사-8

https://youtu.be/pE5Bz5mUqtI?si=ZrhuMR74aRcEpfMQ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한지 벌써 1주년이 지났다. 초기 러시아군의 키예프 공세가 성공하여 그들이 원하는대로 특별군사작전이 마무리될 것이라던 예측은 전부 빗나갔으며 러시아군이 졸전을 치르고 젤렌스키가 수도에 남아있던 모습을 통해 나오던 반대로 우크라이나가 도네츠크, 루한스크를 넘어 크림반도까지 탈환하여 러시아 침략자로부터 우크라이나 전역 해방할 것이라는 예측 또한 빗나갔다. 결국 전쟁은 장기화 되었고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아직도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것이란 믿음이 강한 것 같다. 특히 자유주의 국제관, 민주평화론을 따르는 자들이 그러한 경향이 강한데 현실은 마냥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마치 침략당한 건 우크라이나니까 곧 그들은 무고하고 가련한 피해자다 이리 인식되는 것 같다. 사실 이 글에서는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누가 옳은지 얘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한국 언론 뿐 아니라 인터넷상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과도한 감정이입이 벌어지기에 현실과의 괴리를 짚고 싶었다.


지원병이 부족한 우크라이나
돈바스는 우크라이나의 중요한 공업지대다
우크라이나는 마구잡이식 징집으로 소년병을 운용하고 있다
기동 불능이 된 레오파르트

1. 애초에 한계에 다다른 우크라이나의 상황


많은 이들이 현실을 부정하는데 딱 잘라 말해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은 한계에 봉착했다. 현재 단순히 러시아 국방부 뿐만 아니라 월스트릿 저널도 보도 자료를 통해 우크라이나군의 자원병 문제 얘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부 우크라이나에선 장애인이 징집되고 있고 또 다른 인원은 동원된 지 한 달 만에 사망했는데 훈련을 받은 기간이 놀랍게도 10일 밖에 안되는 건 덤이고.


젤렌스키 대통령도 일본 언론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르툐모프스크 전투(바흐무트 전투) 당시 아직 동쪽으로 공세를 펼칠 만한 힘이 안된다면서 무기가 충분치 않다고 지적하면서 그래서 다른 나라에게서 새로운 보급품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특히 전차, 포병, 하이마스가 더 필요하다 했으며 기껏 받은 레오파르트와 에이브람스도 전선에서 소모율이 높다. 우크라이나군은 특히 벨고르드 공세를 비롯한 대대적인 반격 작전이 실패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고 프리고진의 쿠데타로 잠시 숨을 돌렸지만 언제까지 갈 지는 미지수.


실제로 우크라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오데사주 출신 박격포병인 니콜라는 탄약이 위험한 수준으로 열화되었다가 나토 지원 이후 상황은 나아졌다만 자신들의 박격포는 2차대전의 유물이며 솔레다르 방어전 때와는 달리 아르툐모프스크에서는 박격포탄마저 부족해졌다고 말했다. 세르게이라는 병사는 보급과 통신의 질부터가 엉망이라 답했으며 러시아군의 BTR 단 한대인해 피해가 막심할 동안 우크라이나군에서는 단 한발의 중화기도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중장비의 부족으로 인해 알보병으로 떼우고 있는 상황이다.


https://apnews.com/article/russia-ukraine-war-longest-battle-bakhmut-893a2f22a73c68162c6cb3bbd62efe91

더욱이 아르툐모프스크 전투 당시 이 지역 포위망 안에 소속되어 있던 건 우크라이나군 30여개의 독립연대 혹은 여단과 예하부대였다. 그 중에는 2개 전차여단, 3개 포병여단, 3개 공중기동여단, 10개 기보여단, 아조프 특임대 등 우크라군 전력의 근간을 이루는 부대 대부분이 포진되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전투 패배 후 탈출을 한 부대도 있었지만 일부 부대는 궤멸적 타격을 입었으며 링크의 AP 통신도 우크라군 병력 손실의 문제는 사상자 수가 아니라 최정예 부대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결과적으로 아르툐모스크에서의 우크라군 손실은 총합 30만이라 추정된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산업지대의 대부분은 돈바스 지역에 있다. 돈바스는 구 소련 시절부터 산업 중심지 중 하나였고 반대로 서부 우크라이나는 곡창지대로써의 가치가 컸다. 특히 돈바스의 석탄 채굴량은 의외로 많기에우크라이나의 제1공업지대였고, 중요한 에너지 공급원 이었다. 실제로 돈바스를 잃은 이후부터 우크라이나는 대외 원조에 의존하기 시작했으며 전쟁 발발 이후부터는 사실상 짐바브웨급 파탄 국가로 전락한 상태다. 그 말은 즉슨 우크라이나는 경제적으로 버틸 능력이 없다는 것.


https://english.nv.ua/nation/continuous-assaults-water-logged-trenches-and-cold-how-ukraine-is-holding-the-line-in-bakhmut-50287756.html

또한 우크라이나는 앞서 말한 지금 인적 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소년병까지 징집하고 있는 지경에 이르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총동원령을 계속 연장하고 있고 더 이상의 인적 자원이 부족해지자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청소년까지도 징집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스보보다 대대의 사령관이 한 인터뷰에 따르면 이 곳에는 장비와 포탄이 충분히 보급되어 있지도 않다고. 더 나아가 1월 8일 리바르 리포트는 솔레다르 함락 직전 현지 여단은 도망갔고 광신적인 우익 민병대들이 지켰다고 보도할 정도였다.


이러한 우크라이나군의 행보는 사실 놀랍지는 않은게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우크라이나인들의 국부 스테판 반데라가 협력한 대상이었던 나치 독일이기 때문. 나치 독일은 동부전선, 서부전선, 북아프리카 전선 등 넓어지는 대규모 전선 덕분에 막대한 인적 자원을 소모할 수 밖에 없었으며 미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고 소련군이 바그라티온 작전을 감행하자 결국 국민척탄병이라는 이름으로 예비군 나잇대까지 동원하며 분전해보나 아르덴 공세에서 거하게 말아먹고 베를린 공방전에서 마침내 국민돌격대라는 전 국민들을 동원하여 총알받이로 쓰는 짓을 하며 최후의 발악을 하다가 무너졌다.


또 다른 하나는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제국. 미드 <더 퍼시픽>에 나오듯이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군은 옥쇄를 강요하며 오키나와 주민을 총알받이로 쓰거나 수류탄을 나눠주고 자살을 강요했는데 이 때문에 오키나와 주민의 4분의 1이 무고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 후로도 정신을 못차린 건지 자국민을 동원해 결사대를 조직하고 38, 30년식 소총으로도 모자랐는지 무라타 소총이나 심지어는 죽창을 지급하며 미군 상륙에 맞서 군사 훈련과 귀축영미에 대해 증오심을 주입하며 '현인신' 천황 한 명을 위해 1억 일본인의 목숨을 개죽음으로 만들고자 했다.

전차에 새겨진 독일 국방군 철십자 마크와 할리치나 사단 현수막
마리우폴의 아조프 연대 포로의 하켄크로이츠 문신과 전차 속 철십자 마크
나치 부역자 전범 스테판 반데라 추모제와 우크라군 병사의 아조프 마크
아조프 연대의 단체 사진. 아마 2014~15년쯤?

2. 푸틴 이상으로 막장인 젤렌스키 정권의 행보


우리나라에선 침략국인 러시아와 푸틴에게 비난의 포커스가 맞혀지지만 애초에 우크라이나 역시 야누코비치 정권에 저항해 일어났던 유로마이단 사태 당시에도 악행을 저질렀다. 그 중에서 프라비 섹토르 민병대는 오데사에서 러시아계 여성과 어린이들을 빌딩에 가두고 태워 죽이면서 그걸 즐겁다고 유튜브에다 올렸다. 심지어 저들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민병대 정규군 편입 정책에도 저항할 정도로 광신적인 반데라 지지자들이다.


https://twitter.com/Militarylandnet/status/1678000214534156288?t=dBszUYfZSLK27D_6ExhLYQ&s=19

https://www.aljazeera.com/news/2022/3/1/who-are-the-azov-regiment

프라비 섹토르의 단체사진. 날짜가 22년도 2월 25일인 점으로 보아 개전 하루 뒤에 올라온 사진이다.

결정적으로 그런 악행을 저지른 프라비 섹토르 부대는 우크라이나 정부군 소속으로 다시 전선에 복귀한 게 현재 상황이다. 그 뿐인가? 아조프 연대 역시 한 때 페이스북을 비롯한 서구권 SNS에서 금기의 상징이었을 만큼 프라비 섹토르 이상으로 강한 친나치 성향을 띄는 단체였으며 2015년 11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아조프 연대가 민간 건물에 무기와 군대를 배치하고 민간 재산을 약탈한 후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돈바스 지역에서 수감자들을 강간했다는 내용이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에서 2016년에 나온 보고서에 있었다,


그래서 지금 아조프 연대가 뭐하냐고? 우크라이나의 국가 영웅으로 대우받고 있다. 선전부장 올레냐 세마냐카는 대놓고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젤렌스키 뒤엎을 수 있다고 했는데도 우크라이나 정부는 어쩌지 못한다. 왜냐면 그들은 마리우폴 전투의 '영웅'이니까.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 문제가 단순히 러시아의 프로파칸다로만 취급되는 것 같은데 선전의 목적도 물론 있지만, 우크라이나가 빌미를 준 것은 사실이다. 굳이 과거 스테판 반데라와 OUN이 저지른 짓까지는 안 거슬러가더라도 우크라이나 정부가 반데라와 명확히 선을 그은 적이 없으며 오히려 사진처럼 국가 차원에서 반데라 추모 행사를 매년 지원하기 때문.


https://economictimes.indiatimes.com/news/international/world-news/ukraines-president-volodymyr-zelenskyy-suspends-parties-with-russian-links/articleshow/90333402.cms

거기에 더해 젤렌스키는 러시아와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11개 정당의 활동을 금지시켰는데 문제는 이들이 의회 의석 450석 중 44석을 차지할 정도의 발언권이 있는 야당들이기 때문이다. 근데 여기서 금지된 정당들의 상당수가 우크라이나 사회당, 진보사회당, 좌파연합당 등 좌익 정당들이 대다수이며 과연 이들을 친러 매국노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 논하자면 솔직히 아니라고 본다. 분명히 말하자면 이들 중에는 반러 반푸틴 세력 또한 상당수 있으며 이건 그냥 젤렌스키가 정적 탄압한 것이나 다름 없다.


https://www.opendemocracy.net/en/odr/ukraines-new-labour-law-wartime/

나아 젤렌스키 정부와 우크라이나 의회는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대표할 수 있는 능력을 대폭 축소시키는 동시에 '고용 정지(근로자를 해직시키는 대신 직장에서 근무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임금도 받지 못하게 하는 꼼수)'를 도입하고 고용주에게 일방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전시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그 결과는 일터에서 부당한 대접이나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해도 항의도 못하고 제재를 받는 상황으로 이어지며 우크라이나인들의 사기 진작에는 하등 도움되질 않는 법안인 건 둘째치고 스스로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표방하는 젤렌스키 본인의 주장과도 모순되는 짓거리다.

보론: 우크라이나는 전쟁 막을 기회 있었는데?


나토의 동진은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이 된 이유 중 하나다. 당연히 대부분의 친우 인사들은 그저 러시아의 프로파간다일 뿐이라며 취급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크라이나에서 모스크바까지는 말 그대로 평지인데 이들이 나토에 들어가게 된다면 러시아는 완충지대 없이 그대로 고속도로 뚫리는 것이다. 당연히 러시아 입장에서는 노발대발할 수 밖에 없으며 만약 우크라이나에 폴란드처럼 미군이 주둔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면 우크라이나에게 핵우산 제공은 물론이고 전시에 직접적으로 모스크바를 타격할 위치를 나토는 점하게 된다.


그리고 자꾸 러시아가 주변국 위협하니 걔네가 어쩔 수 없이 들어갔다고 하는 얘기도 나오는데 나토의 동진 금지 약속을 먼저 어긴 건 러시아가 아니라 나토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이후 나토는 계속 동진을 해왔고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 과거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최전선이었던 국가들을 가입시켰다. 심지어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발트 3국까지 나토에 가입시켰다. 이 중 1990년대에 가입한 국가만 해도 폴란드, 체코, 헝가리 같은 옛 바르샤바 조약기구 핵심국들을 다 넣어 러시아를 포위시키려 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국무장관 베이커는 1990년 2월 고르바초프를 만난 자리에서 나토를 단 1인치도 동진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며 이는 외교문서에 그대로 적혀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게 지켜진 적은 없었다. 빌 클린턴이 들어서면서 동유럽 구 공산권 국가들을 나토의 몸빵용으로 끌어들이더니 조지 워커 부시에 가서는 아예 발트 3국을 가입시킨다. 이건 완충지대도 아니고 러시아 해군 발트함대의 주요 기지인 칼리닌그라드를 포위한 것이나 다름 없다.


결정적으로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러시아는 동유럽 주변국의 안보를 크게 위협할 만한 힘이 있는 국가가 아니었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에도 나토가 같은 슬라브주의 국가 세르비아를 공습하는데도 입만 털었지 실질적으로 행동으로 나선 적이 없었다. 이런 말하면 꼭 2008년도 남오세티야 전쟁 들고 나오며 우기는 인간들이 있는데 그건 그루지야 사카슈빌리가 나토 가입이 문제가 아니라 먼저 치고 들어가 러시아 평화유지군을 공격했으니까 그런 거다. 종합해보면 90년대 동유럽이 나토 가입을 차근차근 진행하는 동안 러시아는 병자였고 00년대 이후로는 참다참다 폭발한 적이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남오세티야 전쟁, 나머지는 크림 반도 합병이었다. 근데 전자는 앞서 말했듯 단순히 나토 문제를 넘어 그루지야군이 아무리 평화유지군이라지만 남오세티야로 헤집고 들어가 러시아군을 선제공격했다니까?


https://m.news.zum.com/articles/73643308?cm=front_news_text_1&r=2

분명 러시아는 유로마이단 이후부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해왔다. 그런데도 듣지 않은 건 우크라이나 쪽이고. 프랑스 마크롱이 우크라이나를 핀란드화, 즉 중립국화 시키자는 제안을 했을 때 거절한 쪽은 러시아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였다. 이 시점인 22년도 2월 초에서 서방과 러시아의 대화 채널은 중단되었고 24일에 알다시피 침공 작전이 개시되었다. 이게 어찌보면 전쟁을 막을 최후의 희망이었던 것인데 이를 걷어차고 끝까지 나토 가입하겠다고 한 건 코미디언 젤렌스키였다. 푸틴이 침공한 것은 물론 비판받을 일이고 잘못 되었지만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게 할 수 있었음에도 똥고집 부리다가 자멸하는 엔딩을 선택한 건 우크라이나였다.

석유, 천연가스, 석탄 수출 모두 정상을 기록
22년도 경제성장률은 -2%고 러시아와 중국의 무역액은 1,500억 달러를 찍었다
밀 수출 순위. 전쟁 전에 비해 판매가 제한됨에도 여전히 러시아는 1위다.

3. 효과 없는 쉐도우 복싱인 대러제재


대러제재는 애초에 조금만 생각해봐도 헛점이 많음을 알 수가 있다. 일단 원초적인 질문으로써 경제 제재가 역사적으로 어느 한 정권을 무너뜨린 경우가 있었는가? ABCD 포위망은 일본이 두 손 두 발 들기도 전에 광분하여 진주만을 때리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쿠바나 이란은 여전히 멀쩡하다. 북한 역시 국가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음에도 핵무기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남한과 일본을 핵인질로 삼고 버티는 중으로 제재의 헛점으로써 중국은 북한에 3대 원조를 계속 지급해주고 있는 상태이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지금까지 9차까지 있었고 현재 10차를 진행시키고 있다. 현재 기준으로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는 6천억 달러 정도 하고 있으며 전세계에서 5위, 6위 정도 하고 있다. 서방은 러시아산 원유 가격상한제를 도입하는 것에 실패했다. 실제로 러시아의 환율을 보면 개전 직후에 반토막 나서 1달러에 140루블까지 다운이 되었다가 지금은 2014년 크림 반도 위기 이전으로 돌아간 상태다.


또 경제성장률 면에서도 서구 언론에서는 마이너스 6,7% 예상했음에도 - 2%라는 나름의 선방을 했다. IMF에서도 올해치 전망을 플러스 0.3%로 내놨고 2024년은 아예 2.1%다. 이는 오늘날 유럽이나 미국하고 다를 바 없는 수치다. 결제 시스템 면에서도 SWIFT에서 러시아가 퇴출되었을 때 서방 측에서는 결제를 아예 못하게 될 거라고 봤다. 그런데 미르라는 시스템 덕에 구 소련 출신 CIS 국가들, 베트남, 한국, 브릭스 국가들까지 그걸 이용해서 러시아랑 교류를 하기에 퇴출시켜도 별 소용이 없는 셈이다.


그리고 중국하고 러시아의 교역량이 역대 최고치를 갱신했다. 작년 10월 기준 무역액이 1,500억 달러까지 뛰었다.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했음에도 중국과 브라질, 사우디, 남아공, 인도 등은 러시아 시장의 주요 고객으로 남아있었다. 서방이 아무리 하지 말라 해도 중국과 인도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다. 아니 끊는 게 오히려 이익을 포기하는 길이지.

러시아는 거기에 대해 내수가 자급자족이 되는 나라다. 서방의 대레제재는 사실 2014년 크림 위기 때부터 지속되어 왔는데 그때부터 러시아는 보호무역적인 정책들을 펼치며 내수를 키워왔다. 그 결과 제재를 역이용해 식량을 무기화 했다. 러시아가 최대 밀 생산국이 되고 또 다른 생산국이 우크라이나를 틀어막음으로써 식량자급률이 40%대인 우리나라는 참 난감한 처지가 되는 거고.


당연히 러시아 입장에서는 준전시 상태이고 서방으로부터 고립된 상태인지라 식량을 비축해놔야 할 거다. 솔직히 전쟁이 언제 끝날 지 모르니까. 다만 얘네도 이걸 무기로 쓸 생각이 있는 건 확실한 거 같다. 작년 러시아의 작황은 풍년이었고 우크라이나 주요 무역 상품인 밀은 러시아군이 장악한 동남부 해안 지대 때문에 함부로 나갈 수 없다. 이게 카드가 된 거고.

그리고 가스 측면에서도 제재를 우회해서 들여오는 방법이 있기 때문에 뭐....무의미한 측면도 있다. 지금도 되는 방법인지는 모르겠는데 러시아 원유 30%, 아랍 에미리트 원유 70% 이런 방식으로 제재 우회하는 방법도 있었다. 애당초 러시아가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이기에 안들여오고 살 수는 없을 것이고 원전으로는 지금 상황에선 그걸 전부 대체하긴 무리다.

서방 세계가 러시아 가스 구입을 중단해도(과연 '완전히 러시아를 배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만) 사실 살 나라는 많다. 미국은 전쟁 이전까지 하루에 9만 배럴을 구매했었는데 이 기회를 노린 인도는 적극적으로 진출해서 러시아 가스를 30만 배럴로 더 늘려서 사갔다. 중국은 아예 가즈프롬 산하의 정유 회사인 가즈프롬 네프에서 달러 대신 위안을 받으며 중러 양국 간 통화 거래 규모가 개전 이전보다 10배 이상 급증했다.


쉽게 말해 러시아가 입은 경제적 타격은 서구의 예상보다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걸 알아야 할 게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러시아는 2014년 크림 위기를 기점으로 제재를 받아왔다. 당연히 어느정도 제재에 내성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당장 러시아 가스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해보면 러시아가 제재 받는다고 굶어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망상이다. 유럽한테 잠가라 밸브를 시전한다 해도 중국과 인도라는 더 거대한 블루오션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해결되기 때문.

격파된 우크라군 T-64 전차와 훈련 중 꼬라박은 T-64 전차. 이처럼 우크라의 전차병 역량은 갈 수록 저하되는 중이다.

4.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우크라이나에게 총력전이다 (feat. 불리한 우크라이나의 전황)

총력전에서 군대의 강약은 국민의 정치적, 경제적, 정신적 강약에 의해 좌우되며 국민의 정신력은 대단히 장시간에 걸친 생존투쟁에 필요한 단결력을 군과 국민에게 부여하고 또한 국민의 존망을 위하여 전쟁에서 최후의 결정을 주는 것

- 에리히 루덴도르프 -

총력전은 단순히 전투에서 몇번 이긴다고 끝나지 않는다. 당장 1차세계대전 당시 1918년 독일군은 이른바 '루덴도르프 공세'를 펼쳐 마른강을 돌파하고 파리를 넘봤으나 미영 연합군이 본토에서 유럽 대륙으로 증원되고 독일군 내부의 단결력과 생산력에 한계가 오면서 불만이 커져가다가 킬 군항 반란이 발생, 그렇게 제국 정부는 무너졌다. 어찌보면 생산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크라이나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던 것은 단결력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주요 공업지대는 대충 동남부 해안, 즉 러시아가 노보로시야의 영유권임을 주장하는 영토에 있는데 그 곳을 빼앗겼으니 곡창지대인 서부와 해외 원조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원동력은 단결력이 아닐까 한다. 젤렌스키가 어쨌든 지금까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기와 단결력이 떨어지면 싸움은 금방 끝난다. 1차세계대전에서 파리로 진격할 기세였지만 순식간에 꺾여버리고 한계가 급격히 찾아왔던 루덴도르프 공세 당시의 독일군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전황은 상당히 우크라이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이지움 공세에서 약간의 수복을 얻어낸 후 전선은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 후 벌어진 전투가 바로 그 유명한 솔레다르 공방전과 아르툐모프스크 전투인데 여기서 우크라이나군이 얻은 손실은 상상 이상이다. 애초에 현대전 자체가 포병화력 지원화력에 의해서 사상자가 결정되는데 아르툐모스크 전선에선 러시아군의 화력이 압도적인지라 그대로 26개 여단을 다갈아버렸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최소한 30만명 이상의 손실은 감안해야 하며 그 덕분인지 우크라이나군의 아르툐모프스크 이후 반격 작전은 대실패했다. 그 뿐인가? 우크라군은 전쟁 초기에는 대대 하나당 전차 중대 하나는 꼭 붙여 대대 전투단 단위로 작전을 펼쳤지만 이지움 공세 이후로는 전차 소대 한 개로 규모가 줄었다.


하계 반격에서 노출된 우크라이나군의 야전 방공망은 제 역할을 못하는 수준이었으며 6월 4일, 5일 전투에서도 여기 찔러보고 저기 찔러보기 식의 축자투입과 축자소모를 반복하는 실수를 범한다. 당시 러시아군은 Su-25 공격기와 Ka-52 카모프 헬기까지 동원하여 집중적인 화력을 퍼부었는데 전력을 한 곳에 집중하지 못했던 우크라군은 그저 각개격파 당할 뿐이었다. 특히 우크라군 제77공기여단은 경보병을 베르호프카와 같은 요새화된 적 방어선에 정면으로 투입했는데 이건 가미카제 특공대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우크라이나군의 하계 대반격 작전은 제2의 쿠르스크 전투를 기대하고 계획한 듯하나 실상은 과달카날 전투의 서막이었던 테나루 강 전투라는, 이치키 분견대가 닥돌하다가 미군의 화력 앞에 개죽음 당한 것에 더 가깝다. 이 반격은 우크라군이 나토에게 제공받은 레오파르트 2 전차까지 동원한 그야말로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국가의 사활이 걸린 전투였음에도 고작 그 꼬라지가 난 것이었다. 안 그래도 손실이 심한 판국에 이 반격의 실패까지 메꿔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더 절망적인 상황인 것이고 그나마 위안이라면 프리고진과 쇼이구 사이의 갈등으로 벌어진 바그너 쿠데타로 러시아군이 주춤한 것 정도?


생산, 단결, 동원, 전투 모든 요소가 맞물린 총력전에서 우크라이나는 점차 요소들을 잃어가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게 러시아는 어디까지나 부분 동원령만 내린 준전시 상태에 가깝다는 것이고 이것만으로도 30만 예비군을 모아 이지움 공세로 반전된 상황을 다시 교착 상태로 만들었다. 우크라이나는 총동원령을 몇번이나 때려야 할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우크라이나의 생명이 유지되는 시간을 결정 지을 요소는 서방이 얼마나 물자를 보내주는 것일텐데...그마저도 우크라이나 전차병의 실력이 T-64 전차 기동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갈 수록 떨어지고 있는지라 잘 모르겠다.

5. 그래서 전쟁 끝나면 어쩔 건데?


사실 이 문단이 핵심 포인트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면 뭐 어쩔 방도가 우크라이나에게 있을까? 이미 우크라이나는 최후의 희망이던 나토 가입조차 튀르키예 찬성 측 입장 전환에도 불구하고 아직 바이든의 오락가락하는 입장으로 결정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더해 2024년 내년은 미국 대선이 있는 해인데 바이든이 재선하지 못하고 공화당에게 정권이 넘어간다면 우크라 입장에서는 좋을 게 없다. 그도 그럴게 트럼프는 굳이 말 안해도 알 것이고 드산티스조차 우크라이나에 크게 호의적인 노선은 아니기 때문.


그리고 이걸 알아야 할 게 우크라이나는 매우 심각할 정도로 부패한 국가다. 당장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스파이 2,000여명을 풀어주고 러시아로부터 경제지원을 받고자 했는데 돈을 못받은 건 둘째치고 안보에 엄청난 위해가 됐다. 또 지난해 10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판도라 페이퍼스(문건)’는 그가 조세 회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거액의 재산을 은닉하고 탈세를 해왔다는 의혹이 생겼고 대통령 선거 때부터 잡음이 많았던 우크라이나의 금융 재벌인 이고르 콜로모이스키와 유착 관계라는 의구심도 여전하다.


https://www.voakorea.com/a/world_europe_us-ukraine-sanctions/6056740.html?fbclid=IwAR1DWjXYYt5o4eJsbeOVyskNGWvPoceDEgnBHjLCfc8KIoaJVgM1jNHEBTY

(이게 콜로모이스키라는 인물)


젤렌스키는 코미디언 출신으로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재벌과 기성 정치인에 대한 반감으로 그 자리에 다다랐음에도 정작 기득권 타파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당선 이후 콜로이모이스키와 선을 그었음에도 그는 21년 초 영국 잡지 <스펙라이터>에 따르면 키예프에서 열린 콜로모이스키의 생일 파티를 위해 방역 규칙을 위반하기도 하였으며 그해 유출된 문건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과 그의 코미디 제작 파트너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키프로스 및 벨리즈에 기반을 둔 사업과 관련된 역외 회사 네트워크를 소유하고 있었다.


https://www.occrp.org/en/the-pandora-papers/pandora-papers-reveal-offshore-holdings-of-ukrainian-president-and-his-inner-circle?fbclid=IwAR3rV7GLUviARHdn4EjsIlOkF_2g9Eqtx8Ilbma5eA_c8JuWsG392Uz8P2A

따라서 우크라이나는 이미 썩을대로 썩은 국가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의 부패는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상위 10%의 올리가르히가 78%의 부를 장악한 상황이니 러시아의 실로비키 독점 체제 못지 않게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https://m.yna.co.kr/view/AKR20220805114200009

실제로 우크라이나에 후원되는 서방 군사 원조의 30%만 최전선에 도착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친러 분리주의 반군이 준동해 내전이 시작된 2014년부터 현재까지 우크라이나군 최전방 부대에 해외 군사원조 물자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오던 리투아니아의 NGO 단체인 블루-옐로의 CEO가 했던 말이다. 또 그 CEO는 NGO란 입장 때문에 비공식 채널로 살상 무기를 제외한 방탄조끼와 야시경, 첨단 드론 등 물자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만연한 부패와 관료주의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이번 전쟁으로 우크라이나는 전후 복구 능력까지도 상실했다는 것이다. gdp의 30%가 증발했고 수백만명의 난민이 고국을 등져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선 산업기반을 확실히 살려내야 한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우크라이나의 산업지대 대부분은 러시아군의 점령지인 상태고 여기를 되찾을 만한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당장 미디어에 자주 소개되는 돈바스만 해도 우크라이나의 제1공업지대였고 중요한 에너지 공급원 이었으니 말이다.


국제기구인 세계은행은 우크라이나 재건, 복구 비용은 약 4,100억 달러 정도라고 발표했다. 이걸 원 달러 환율로 대충 계산해도 약 530조원 가량이 될 것이다.그러나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에 이런 막대한 돈을 전부 줄 만큼의 여력이 없는데 세계 경제가 지금 특히나 불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일정 비율은 우크라이나 스스로 경제를 살려 메꿀 수 밖에 없는데 돈바스 공업지대와 동남부의 곡창지대를 잃은 상태로 전쟁이 끝난다면 성장 동력은 없는 거세된 상태로 살아남아야 한다.


게다가 오데사를 지켜내고 헤르손을 되찾았음에도 실질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내륙국이나 다름 없다. 오데사라는 중요한 항구가 있지만 대부분의 해안 도시가 러시아군이 장악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크라이나의 해양 이용은 제한적으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던 몇몇 항구와 바다와 접한 해안도시의 무역, 상업, 교통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내륙국 아닌 내륙국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6. 맺음말: 이길 수가 없었던 전쟁. 그러나 이긴 쪽도 피로스의 승리


이렇듯 러우전은 우크라이나가 애당초 이길 수가 없는 전쟁이었다. 그걸 알기 쉬운 방법이 바로 겨울전쟁이라 불리는 소련의 핀란드 침공으로 이 전쟁에서 소련은 역대 최악의 졸전을 거듭했음에도 어쨌든 이겨서 핀란드 땅의 3분의 1을 뜯었다. 왜냐면 국가 체급 차이가 말도 안되게 차이나는 데다가 총력전 양상으로 흘러가면 더 국력이 강한 쪽이 유리하게 흘러가게 되는게 역사의 흐름이었다.


그래서 러시아군이 초기 공략 졸전을 본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의 승리에 희망을 걸었지만 그 행복회로와 반대로 지금까지 전쟁이 끝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우크라군의 열성적인 반격에도 불구하고 전황은 점차 러시아의 목표인 노보로시야 회랑 확보에 유리한 쪽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분전으로 주목을 받은 건 키예프 방어전이랑 이지움 공세 이 두개가 전부고 헤르손 공세는 러시아군의 일방적인 철수로 이득본 거로 이후 러시아군은 붕괴될 거란 예상과는 달리 부분 동원령으로 30만 예비군을 투입해 순식간에 전선을 교착상태로 만들고 공백을 메꿨다.


다만 러시아 쪽도 이긴다 해도 피로스의 승리일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워낙 초기에 삽질을 거하게 했고 최근에는 군부와 바그너 사이의 갈등까지 표면에 공개해버린 상태다. 거기에 더해 비록 대러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들도 많다지만 국제사회에서 이미지가 큰 손실을 입은 건 사실이며 압도적인 체급 차이에 우크라군 역시 삽질을 계속하는데도 지금까지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건 분명 러시아군 내부가 그만큼 썩었다는 것도 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앞으로 전쟁이 2~3년은 더 갈 거라고 예측한다. 과연 어떻게 전쟁이 끝날지는 나도 속단을 못하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국 언론과 인터넷상에서는 우크라이나가 필요 이상으로 영웅시되고 있는 것 같은데 러시아의 승패 여부는 둘째치고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만큼의 영토를 수복하지 못한 채 끝난다면 그건 아랍의 봄, 시리아 내전 당시의 서구 언론들의 설레발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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