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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Aug 12. 2023

러시아 대대전술단(BTG)의 개념과 실전

실패한 전쟁사-외전

https://youtu.be/3xC5Njniwo0

대대전술단(BTG)의 등장


BTG의 기원을 살펴보자. 원래 나폴레옹 전쟁 시대에는 군단이 제병협동작전의 기초였다. 1918년에서 1923년 사이 적백내전에서는 기병, 말이 끄는 수레에 장착된 기관총 분견대, 말이 끄는 포병, 때때로 전차 또는 장갑차로 구성된 습격 그룹, 전방 분리대, 후방 경비대, 선행 경비대 및 기타 기동 대대로 구성된 부대 편제가 독립된 작전을 펼쳤고 이 부대 단위의 초점은 속도, 기동성, 대규모 화력이었다. 냉전 당시 소련군은 전차 및 차량화 소총병 사단(군 10,000명, 전차 300대 이상, 보병 전투 차량), 전차 및 차량화 보병 연대(군 2,000명, 전차 또는 보병 전투 차량 90대), 대대(군 300명, 전차 또는 보병 30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진지하게 새로운 편제에 대한 필요성이 커진 건 1990년대 체첸 전쟁이었다. 개전 당시 1개 공수연대로 2시간이면 상황 정리가 가능하다는 국방장관 파벨 그라초프의 주장과는 달리 3일 만에 투입된 BMP 보병전투차 120대 중 102대를 잃고 그로즈니에서만 T-80 전차 68대 중 67대를 잃으며 아프간 때보다 더 최악의 졸전을 경험하게 된다. 2000년대 이후로는 인구 감소 및 저출산의 문제로 징병자 수가 줄어들자 복무기간을 12개월로 단축했는데 문제는 12개월 만으로는 사실상 전투 인원으로 쓰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계약병으로 징집병의 전투력 부족을 해소하고 차량화 소총병 대대를 기반으로 전차를 보충하는 개념의 편제였다.


러시아는 어느정도 국력을 회복해갔고 그 시작은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이었다. 이때 러시아가 자각한 지점은 우리는 지역분쟁에 최적화된 부대가 필요하겠구나, 하고 말이라는 것이었다. 남오세티야 전쟁 당시 블라디미르 볼데로프 장군은 그동안 러시아군 차원에서 키워온 직업 군인들의 전투력이 징집병만도 못하다고 한탄할 정도였고 특히 공수부대는 그루지야 방공망을 제압하지 못한 덕에 육상에서 아예 처음부터 밀고 들어갔었다. 정찰대대도 도중에서야 배치되었었고.


결국 러시아는 2008년 아나톨리 세르듀코프 국방장관 주도로 국방 개혁을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러시아군은 군 구조 개편, 지휘체계 최적화, 병력 감축 등을 단행했다. 그러나 2009년 12개월로 더욱 단축되어 짧아진 복무 기간은 병력의 숙련도를 낮췼으며 이는 러시아 내 저출산 문제와 맞물려 상당히 심각했었다. 따라서 이후에 진행된 러시아군 현대화 프로젝트의 목표는 높은 수준의 준비 태세를 갖춘 편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계약병들이 다수인 전문 군인으로 구성하고 화력과 기동성을 추가적으로 갖추는 걸 목표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2014년부터 돈바스 전쟁이 터지며 미국, 나토와의 전면전보단 국지전 위주의 전투의 수행이 필요성이 더욱 증대되어 여단보다 작은 규모의 BTG, 즉 대대전술단이 등장하게 된다.

BTG의 개념


우선 각 연대와 여단에는 두 개의 지정된 BTG가 들어간다. 물론 남부 군관구의 경우에는 여단당 3개의 BTG가 들어가기도 하지만 말이다. 일단 BTG는 다양한 장비를 가진 차량화 소총병 대대 또는 전차 대대로 구성되고 여기에 박격포 등으로 무장한 대대지원단과 자주포, 다연장, 자주대공포 등으로 무장한 여단지원단이 따라붙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한마디로 말해 BTG는 반(半) 독립적인 복합 무기 전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임무 조직이라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BTG에는 700~800명의 구성원이 있지만 일부는 900명이 될 때도 있다.


이렇게 장갑차나 전차만으로는 제한되니 포병과 방공 부대를 집어넣는 방식을 통해 러시아군은 대대 단위로 제병협동작전이 가능할 거라고 봤었다. 이것은 2차세계대전 직전 투하쳅스키가 만들었던 종심작전교리를 국지전으로 한정시켜 바꾼 버전이었다. BTG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한다면 적의 전진을 지연시키고, 탈출 경로를 차단하고, 본체에 대한 기습 공격을 방지하고, 행군 중 본체에 대한 보안을 제공하고, 적과 지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능하다는 것이며 어찌보면 점점 병력 인적자원이 줄어드는 러시아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도 있었다.


병참 측면을 보면 BTG의 주요 군수 부대는 BTG가 기반을 두고 있는 대대에 유기적인 지원 소대이다. 러시아 내의 군사 전문가들은  BTG의 표준 기준대로라면 3번의 재장전 주기에 충분한 탄약, 2번의 재급유 주기에 충분한 연료, 최대 10일 동안 식량을 보급받을 수 있다고 가정하긴 한다. 근데 BTG의 구성 자체가 원래 작전 변수와 의도된 전투 임무에 따라 달라질 변수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병참 유지 능력은 아마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대대전술단은 이처럼 새로운 전투부대로써 전차중대, 기계화보병중대 및 기갑수색소대가 전투지원부대로 자주포대(2∼3개), 방사포대, 대공포대(2개), 전투공병, 드론부대, 전자전부대 등이, 전투근무지원부대로 지원소대가 편성된 걸 통해 대대급 독립전투수행이 가능하다고 보는게 2022년 러우전 이전까지는 의외로 많았던 시각이었다.

실전에서의 BTG


2014년 돈바스 전쟁이 발발하고 러시아군은 60개의 BTG를 돈바스 지역에 투입했다. 당시 드론을 활용한 장거리 포병화력 유도와 전자공격을 통해 상대의 지휘통제를 마비시킨 후 부대를 양쪽에서 투입해 상대를 다중포위하는 포위전을 벌였다. 이를 통해 도네츠크 루한스크 공항은 손쉽게 넘어갔으며 우크라이나군 소속 제128 기계화보병여단은 돈바스 반군과 BTG 부대들에 의해 포위되서 장비들을 다 버리고 도주했다. 결과적으로 도네츠크 주와 루한스크 주의 일부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분리하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BTG는 분명히 성공적인 군사 제도의 혁신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러시아군은 2015년에 있었던 시리아 내전 개입 작전에서는 BTG를 제대로 쓰지 않는다.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군이 쓰던 전술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들처럼 보병들이 적 식별 후 공습으로 일망타진하는 방식이었고 여기서 참전한 바그너 그룹은 크게 비약적으로 성장한 반면 러시아군은 그러지 못했다. 남오세티야 전쟁과 돈바스 전쟁은 정규군을 상대한 전투가 핵심인 반면 시리아 내전은 어디까지나 IS 및 자유시리아군 같은 반군들이었기 때문에 2015년을 기점으로 러시아군의 포커스가 정규군보단 비정규군 토벌에 맞춰진다. 미군이 아프간 전쟁을 수행하며 부대 구조가 바뀐 것처럼 러시아군 또한 지상전투를 위한 재래식 전력의 개선보단 항공타격 부분만 발달하게 되었다. 참고로 러시아군은 당시에 시리아에 주둔한 병력이 많을 때도 63,000명에 달했는데 시리아에 러시아가 2021년까지 가진 거점만 83개였다.


그리하여 2022년 당시에도 러시아군의 BTG는 2014년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게다가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군은 지상군 포병부대보단 우선적으로 항공타격을 더 집중적으로 운용하였기에 BTG의 핵심이자 제정 러시아 이래 전장의 꽃이었던 포병을 키우지 못했다. 시리아 내전에서 많이 활용된 무기들을 보자면 Su-35 및 57, Tu-160, S-400, Ka-52 등 대부분이 항공과 관련된 무기들이었으며 BTG의 한 축을 맡을 전차나 자주포, 장갑차들이 종횡무진하며 진격하는 그런 양상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러시아군은 돈바스 전쟁 당시까지 하이브리드전에 맞춰 정규전 중심으로 키워운 군사 교리와 편제를 시리아 내전을 통해 발전시키긴 커녕 오히려 퇴보시킨 셈이었다. 분명 시리아에도 하마 시나 알레포 같은 도시들도 많았고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도 도시화가 잘 되어있지만 순항미사일, 항공타격에만 몰두하며 기계화부대보다 항공우주군과 특수부대 운용에만 너무 익숙해져버린 탓에 기존 BTG의 방식을 그저 제파식 포위 공격에 국한해 결국 2022년 말까지 러시아군이 우크라 내 도시 작전에서 애먹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만다. 그나마 2014년과 우크라 전쟁 직전과 차이점이라면 2021년 8월 기준 168개 BTG로 더 늘었을 뿐이지.


한편 2014년 돈바스 전쟁에서 BTG에 호되게 당했었던 우크라이나군은 신속대응여단, 기계화여단 등으로 전투단을 꾸리며 변화를 시도하였고 결국 러시아군도 22년 말을 기점으로 여단, 사단 편제로 병력을 재편성하며 효과가 없던 BTG를 사실상 버린다. 오히려 그 후에야 아르툐모프스크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BTG의 가장 큰 문제점


BTG의 가장 큰 문제는 지휘통제와 정비, 의무, 보급 등의 조직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적 지역 종심에 깊이 진출하기가 어려운게 문제고. 보통 대대전술단의 전투에서 10대의 T-90이나 T-80이 서고 그 뒤로 40대의 BTR, BMP에 탑승한 기계화보병들이 종렬하는데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는 대전차미사일에 전차가 무력화되는 경우가 많아서 상당히 문제점을 드러냈다. 또 제파전술에는 강해도 시가전에는 취약한 것도 문제.


결국 러시아군도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키예프에서 된통 BTG가 깨진 이후 여단 중심의 제병협동작전 수행으로 다시 돌아가는 추세다. 그리고 뭣보다 병력 구성이 3분의 2가 징집병이라는 거다. 그래서 근접 전투 능력이 상당히 떨어진다. 결국 러시아군의 실험은 실패했고 대대로는 제병협동작전을 수행하기 힘들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겠다. 그 BTG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려면 준비가 체계적이야 하는데 소련 붕괴 이후 급속도로 무너진 러시아의 상황에 겹쳐 애당초 대대전술단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지 얼마 안되었고 진짜 국지전이었던 돈바스를 제외하면 사용해본 적이 적으니까 준비 측면에서 한계가 분명했다.


사실 돈바스 전쟁 당시 BTG가 먹혔던 것은 러시아군의 보병 부족을 돈바스 반군이 상쇄해줬던 부분도 있었다. BTG는 최소 3개의 기계화 보병 중대가 더 필요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현실적으로 보자면 더 필요한 상황이며 러시아군이 지나치게 BTG를 많이 만들어 질을 떨어뜨린 것도 문제였다. 거기다가 진짜 제대로 이 편제가 잠재성을 발휘하는 혁신적인 모델이 되려면 BTG 사령관, 구성 중대장 및 하급 장교가 주도권을 발휘하고 진화하는 전장 상황에 역동적으로 대응해야 해야 하는데 러시아군의 구조는 지나치게 수직적이었다.


그래서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공격적으로 나오며 전선에서 밀기 시작한 시점도 아이러니하게도 BTG를 조금 물리고 난 뒤였으며 우크라전 최대 도시 전투 아르툐모프스크를 함락시킨 것도 러시아 정규군이 아닌 바그너 그룹이었다. 여단 중심의 전투단이라는 서방 편제에 맞서 더 혁신적인 시도로써 대대전투단을 구성한다는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문제는 러시아군이 편제 개념에 맞게 군 개혁을 하지 않았으며 실전 경험은 돈바스 빼면 전무했던 것도 모자라 아예 침공을 위해 지나치게 많이 만드는 와중에도 정작 중요한 준비는 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맺음말: 진짜 중요한 건 BTG의 효용성이 아니다


이번 러우전을 계기로 BTG라는 편제가 러시아 국내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편제인 것은 맞다. 이미 BTG를 주도했던 쇼이구마저 작년 말을 기점으로 다시 여단, 사단 중심 편제로 되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어디까지나 지역분쟁이나 국지전을 위해 만들어진 편제인데 러우전의 현재 양상은 과거 돈바스 전쟁 때와 같은 지역분쟁 수준이 아니며 우크라이나군부터 미군식 여단전투단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라 더 이상 BTG로 상대하기만은 무리다. 특별군사작전이라 명명된 우크라 침공도 대리전을 거쳐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마당에 BTG의 효용성은 당연히 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근데 러시아군의 문제는 단순히 BTG에 관한게 아니다. 제일 심각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부분이다. 쇼이구-게라시모프 중심의 실로비키들이 프리고진을 내치고 바그너 그룹을 쫓아냈지만 러시아군의 현재 공세 속도는 매우 더딘 지경이다. 아르툐모프스크에서 우크라군 26개 여단을 말 그대로 갈아버렸던게(사실 이것도 바그너가 주축이지만) 무색하게도 지금 러시아군은 몇달 만에 공세가 상당히 주춤해진 지경이다. 뭐 우크라이나가 지금 버틸 능력이 벨고르드 공세의 처참한 멸망으로 커다란 한계가 와서 전황을 바꿀 만큼의 진격을 못하고 있는 것 때문에 참호 파대면서 1차세계대전 코스프레 놀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말은 곧 전쟁이 적어도 2~3년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기도 하다.


장기화가 된다면 우크라이나는 최소한 버틸 능력마저 바닥나서 협상에 나설 거고 그렇게 되면 못해도 노보로시야 영유권은 얻을 것이다. 이거는 양국의 체급 차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장기화가 진행된 만큼 러시아의 국가 이미지가 내려가는 리스크도 분명 있을 것이고 지금 당장이야 브릭스 중심으로 경제권을 구성하여 경제가 무너지진 않겠지만 과연 러시아 혼자만 경제적 타격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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