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그 악명 때문에 영생 불사를 얻었다.”
저희 딸이 하는 말입니다. 할리우드를 유대계가 지배한 덕분에 할리우드는 지금도 히틀러를 조롱하고 야유하고 분노하는 그런 영화들을 숱하게 만들어냅니다. 심리학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 할 것 없이 유대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출판계에서도 히틀러는 동네북입니다. 어지간하면 책에 히틀러의 이름이 안 나오는 경우가 없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예요. 만약에 평행세계가 있다면 그 증거는 무엇일까? 질문을 해보면 안다. 히틀러를 아냐고 물어본 뒤 만약에 들어본 적 없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 다른 평행우주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뉴오커와 롤링 스톤스 기자 출신으로 전미 작가상을 수상한 존 콜라핀토의 책 ‘보이스’는 인간의 목소리를 다룬 책으로 음성학과 구술 언어에 관한 역사책인데 이 책에도 하이라이트에서는 여지없이 히틀러가 나옵니다.
루스벨트를 필두로 미국의 당시 정치가들은 히틀러가 어떻게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론과 계몽주의 전통이 강한 독일에서 그렇게 높은 인기를 얻으며 마치 피아노를 치는 연주자처럼 독일 국민들을 조종할 수 있었는지 정말 놀랬습니다. 일본이야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민족이니까 그런 군국주의가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독일인이 히틀러를 받아들인 이유는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죠. 그들이 그렇게 행복한 눈으로 하일 히틀러를 외치는 걸 보고도 눈이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목소리 전문가 클라민토는 바로 목소리로 설명합니다. 히틀러는 말의 힘 목소리의 힘을 잘 알고 있었죠. 그가 유대인 학살 및 슬라브족의 노예화라는 대구상을 밝힌 ‘나의 투쟁’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역사에서 가장 큰 정치적 변화와 종교적 변화를 일으켰던 힘은 아주 옛날부터 마술적인 힘밖에는 없었다. 거대한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말의 힘밖에는 없다. 모든 위대한 움직임은 대중의 움직임이며, 이 움직임은 대중에게 말의 횃불을 던짐으로써 인간의 열정과 감정이 화산처럼 폭발하는 것이거나 블행의 여신이 일으키는 것이다.”
결국 히틀러는 자신의 목소리를 콧대 높던 하지만 전쟁의 패배와 굴욕적인 조약과 최악의 인플레를 거치며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독일 국민에게 던질 수 있었기에 정권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히틀러의 타고난 연설 능력과 타고난 기만술 그리고 때로는 자신도 속일 수 있는 위장술이 그에게 독일 국민이 영혼을 바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는 지도자라기보다는 사이비 종교 교주에 가깝습니다.
지금 합리성의 관점에서 그의 연설들을 들어보면 왜 당대 독일인들이 이렇게 미쳐있었는지 이해가 안 될 겁니다. 그에 따르면 히틀러는 소리를 지르고, 울부짖고, 흐느끼면서 계속 연설을 해나갔습니다. 수사학적으로 볼 때 그의 연설에는 논리적인 요소가 전혀 없었죠. 증오, 분노, 자기 연민, 열렬한 독일 국가주의, 그리고 아리안족의 인종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단순한 호소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게 통했습니다. 당시 독일 국민들은 거의 모두가 자기 연민에 빠져 있었고 분노하고 있었으며 모든 원인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죠. 히틀러는 이렇게 꼬셨습니다. “질문하지 마. 정답을 알려 줄 게. 모든 게 유대인 때문이야.”
아무리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민족이라도 상황에 따라 거짓과 모순에 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히틀러에게 당한 독일 국민들이 그 증거죠. 히틀러는 분노에 찬 목소리, 가차 없는 반복을 통해 독일 국민이 지닌 일상적인 도덕성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히틀러가 죽자 자신을 포함 5명의 자녀와 와이프까지 모두 따라 자살한 괴벨스는 이렇게 말했죠.
“총통의 목소리가 총통의 피 속 깊은 곳에서 나와 듣는 사람의 영혼 깊숙이 박히며, 지치고 게으른 사람들을 일깨웠고, 무관심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 겁쟁이들과 약자들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히틀러의 목소리는 당시 전 새계에서 가장 많은 교육을 받고 이성적이었던 독일인들의 심장을 저격한 것입니다.
당시 연합국에서는 히틀러의 연설을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달려들어 분석했는데요. 그들은 히틀러를 무당에 비유했습니다. 일단 조용하게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연설이 진행되면 목소리가 계속 커집니다. 절정에서 그는 발작합니다.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죠, 자신도 그리고 청중도 무아지경에 빠뜨리는 겁니다. 그는 현대에 태어닜으면 헤비메탈 그룹의 리드 보컬이 되었을 겁니다.
미국으로 건너 가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평론가로 성장한 조지 스타이너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라디오에서 들리던 그의 목소리에는 뭔가 최면을 거는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의 목소리에서 그가 느껴졌습니다. 라디오 바깥으로 나와 내 앞에서 말을 걸고 있는 느낌이었죠.”
저자는 히틀러는 당대 최고의 이성을 보유했던 독일 국민들을 세뇌시켜 인류 역사 최악이자 최대의 전쟁으로 이들이 자발적으로 걸어가도록 만들었죠. 세계 정복이라는 그의 꿈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그를 통해 독일인들은 대중의 분노와 좌절감이 극단적인 선동가를 만나면 아무리 선진적인 국민이라도 세계를 위협할 파시즘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위험을 세계에 알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을 내렸습니다. 히틀러가 해 놓은 짓 중에 인류에게 유익했던 것은 단 하나네요. 세상은 그와 같은 독재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노력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의 책을 읽고 나서 얻은 결론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21세기에 재현해내려는 21세기의 히틀러가 이번에는 러시아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참으로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