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소설가 지인 임현석 작가의 진화
‘타고난 맷집을 지닌 아이’
소설가 지인이자 기자 후배인 임현석 군의 첫인상은 흐릿하지만 비교적 뚜렷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다소 투박하고 남성적인 외향과는 달리 말 한마디 한마디와 손짓에서 진중함과 겸손함이 배어 나왔다. 사회적 관계를 위해 튜닝된 의도적 존대라기보다는 그냥 기본적으로 예의를 갖춘 사람처럼 느껴졌다. 기자 초년병 시절의 고난과 역경을 잘 이겨낼 것 같다는 믿음을 주는 후배였다.
한 장면이 특히 생각이 난다.
당시 선배 한 명이 유독 막내인 임 군을 ‘깼다’. ‘가르쳤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당시 팀원 대부분이 했다.
그 선배는 실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대다수의 후배들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둔갑시키는데 능했는데, ‘예의’ 바른 임 군이 유독 타깃이 되곤 했다. 아마도 못 참고 들이받는 후배들과는 달리, 수용적인 후배에게 더 심하게 굴었던 것 같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행태였다.
하지만 임 군은 돌부처 같은 풍모로 외풍에 맞섰던 것 같다. 끝까지 진중한 에티튜드와 미소를 유지하며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나갔다. 환경부 담당이었던 임 군은 미세먼지 저감 정책 관련 단독을 이어가며 자리를 잡아나갔다. 그 시절의 잔소리들이 무색할 정도로. 훗날 임 군은 당당히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그 시절 선배들의 행태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임 군은 중견 기자로 성장해 영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아마도 이때의 추억을 아래 문장들도 풀어 기사에 녹이기도 했다. 당시를 기억하는 소수만이 웃음 지을 수 있는 글이었다.
<기자 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 사수는 엉망진창 내 기사를 뜯어고치며 글쓰기 원칙을 상기시켜 주곤 했다. 그중엔 되도록 동어 반복을 피하라는 것도 있었다. 경제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지적으로 느슨해서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같은 표현을 쓰다 보면 관점이 강조되고, 한쪽 입장으로 비탈지게 빨려 들어가니 조심하라는 경고도 함께였다. 불가피한 되풀이도 있지 않나? 그때 나는 항변하고 싶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세상 모든 원칙이 그러하듯 절대성을 지닌 명령이라서가 아니라, 함의가 더 와닿는다. 동어 반복은 무신경하고 섬세하지 못한 자들의 방식이라는 점 말이다.>
‘나름 힘들었을 텐데. 이런 식으로 아름답게 풀어낼 수 있는 내공이라니.’ 태풍이 불어도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은 후배의 성장에 감사함과 흐뭇함이 밀려왔던 것 같다.
그에게 어떤 선배였을까 종종 생각한다. 결론이 잘 나지 않지만 ‘꼰대’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거 같다.
한 장면이 생각난다.
10년 차에 가까워졌던 임 군은 회사의 디지털 전략을 담당하는 부서로 가고 싶다고 했다. 신문 기자에게 ‘10년 차’란 전공 분야에서 한창 꽃을 피우는 시절이다. 데스크(약 15년 차) 전 현장 팀장으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울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전공이 될 만한 분야를 하나라도 더 하는 게 좋지 않겠냐”라는 신문기자의 스테레오 타입에 가까운 말만 했다. 꼰대였다.
임 군의 뜻은 확고해 보였다. 디지털 세계에서 조금 더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차장하고 부장 하고 그렇게 전형적으로 올라가는 길이 아닌 ‘글 쓰는 트랙’을 하나 뚫어보고 싶다고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당시에는 임 군의 의중을 잘 이해하진 못했던 것 같다. 히말라야의 신 루트를 개척하자는 말처럼 들렸다. 꼰대였다.
하지만 임 군에겐 계획이 다 있었다. 그의 등단과 작품 세계를 접하면서 뒤늦은 배움이 적지 않다. 기사를 넘어서는 글에 대해 뒤늦은 갈증을 느끼는 나에게 임 군의 행보는 큰 자극과 힘이 된다. 기자로서는 선배였지만, 작가의 세계에선 임 군이 선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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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작가는 매우 밀도 높은 글을 쓴다. 면밀한 취재와 디테일한 팩트 파인딩까지 기자적 풍모가 소설 곳곳에서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 촘촘함에 감탄할 때가 적지 않다.
등단작 <무료 나눔 대화법>에는 아주 예의 바른 임 군 같은 사람들이 다수 등장한다. 그들이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내어주고 대화를 이어가는 과정이 아주 일상적이지만 필연적으로 다가온다. 그의 글 속에 임 군 자신이 자꾸 보이는 거 같아 미소가 지어졌다.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2/01/01/WJEP23Y2WJEH7KOFTQAB5FIUQI/
뒤늦게 그의 작품들을 접하며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10년 가까이 한 회사에서 함께 일 했지만 그의 꿈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아마도 기자에 대한 아이덴티티가 너무 강했고, 기자 이외의 삶에 대해선 잘 생각하지 못했고, 기자 외적인 이슈들에 대해선 큰 관심을 두지 못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그런 선배에게 자신의 오랜 꿈을 드러내지 못한 건 너무나 당연하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전해 듣는 과정에 대해 쓴 아래 칼럼을 읽고 임 군의 오랜 꿈 이야기를 뒤늦게 알게 됐다. 소설가라는 이름을 획득하기까지의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담겨있는 칼럼을 읽고 나서 한동안 먹먹했던 것 같다. 꽤 가까운 위치에 있었는데도 그의 꿈을 응원하지 못하고, 회사의 전형적 경로만을 강조하는 ‘꼰대’였던 모습이 못내 미안했다.
https://www.chosun.com/opinion/cafe_2040/2022/01/07/RT2MVLQTHJF5FPIEMNFAYSLZVM/
임 군이 소진되지 않고 오랫동안 좋은 글을 많이 발표해 줬으면 좋겠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듯, 회사와 창작 활동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며 지속 가능한 라이터로서 오래 동안 활동해 주길 기원한다. 밥벌이라는 지난한 행위를 하면서도 우리는 충분히 크리에이티브 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길 바란다. 우리 모두에겐 힙해질 권리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