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림자

고구마 넝쿨

by 강쌍용



달그림자




입동을 지나면서 해가 곰 섬 뒤로 넘어가는 시간이 부쩍 빨라졌다. 고구마를 파느라 뒤집힌 흙이 밭고랑을 메워 골이 사라졌다. 그 위로 아무렇게 엉킨 고구마 줄기가 볕에 타면서 색깔이 바래 갔다. 이것들을 한 테 끌어모아 쟁여야 했지만 거기까지 일손이 미치지 못했다. 고구마를 파면서 걷은 줄거리는 나중에 소의 여물로 요긴하게 쓰였다. 밭을 갈려면 술이 큰아버지에게 소를 빌려야 했다. 큰일 한 소를 배불리 먹이는 데는 이만한 것도 없었다. 낫으로 듬성듬성 잘라 뒹겨에 버무려 놓으면 삽시간에 먹어 치웠다. 우두둑우두둑 어금니에 바스러지는 고구마 줄기는 소가 제일 좋아하는 먹이기도 했다. 일을 마친 소가 퉁퉁하게 먹으면 배가 산만큼 부풀었다. 그런 소가 찌뚱 거리고 돌아오면 술이 큰아버지 흡족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렇게 해야 다음에 소 빌리기가 쉬웠다. 그러니 당연히 먹이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음바 쪽에서 땡그렁거리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밭에까지 들렸다. 수업을 마쳤다고 알리는 종소리였다. 엄마를 찾아 밭으로 올라온 아이들이 왁자했다. 이내 고구마 넝쿨을 밭두렁으로 옮긴다고 용을 썼다. 질질 끌고 가는 밭고랑에서 자욱한 흙먼지가 몽실몽실했다.



일하다 말고 밤 어장 시간에 맞추어 아버지가 일어섰다. 낙지잡이를 서둘렀다. 한 짐이라도 더 나르려는 아버지가 그냥 내려갈 리 없었다. 바지게에 고구마를 잔뜩 담았다. 지게 작대기를 딛고 일어서는 몸이 부들거렸다. 휘파람새 같은 신음이 진득하게 배어 나왔다. 맥없이 거칠었다. 넝쿨에 넘어져 깔깔대던 아이들이 재빨리 달려와 지게를 힘껏 밀었다. 아버지 무르팍에서 사기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가까스로 무릎을 세우더니 이번에는 중심을 잡는다고 몇 번 더 흔들렸다. 저녁밥과 어장을 챙겨야 하는 엄마도 따라갔다. 뒷밭 오동나무 위로 어느새 해거름 달이 떴다. 긴 고구마 줄을 전부 연결해도 닿을 수 없을 만큼 멀었다. 밭에 남은 아이들이 부지런히 넝쿨을 날랐다. 사박사박 어둠이 밀려오는 밭두렁에 봉분만 한 낟가리가 쌓였다. 이젠 아버지가 술이 큰아버지 소를 빌리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어두워져도 기척이 없자 아이들을 데리러 오신 엄마 입이 함박만 했다. 대견스러웠다. 옆구리에 낀 고구마 대야가 힘에 부쳤는지 자꾸 흘러내렸다. 어두운 들길에 때늦은 풀무치가 뛰었다. 태구 아저씨 대밭이 어둠에 이슥했다. 묏등 소나무가 마을 쪽으로 긴 달그림자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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