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돌아오는 길에

고흥에서 순천만으로

by 강쌍용



팔영산 봉우리를 앞에 두고 해창만 간석지의 중앙을 가로지릅니다. 여수로 이어지는 오래된 지방도로는 편도지만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고성에서 진동으로 이어지는 지방도로와 함께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가고 싶은 길 10곳 중의 한 곳이기도 합니다.

낮은 산세를 따라 오르락내리락 따라가다 보면 다도해의 비경에 차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유혹에 자주 빠지게 됩니다. 혼곤하게 빠진 나르시시즘을 비웃기라도 하듯 펼쳐지는 자연의 향연은 작고 보잘것없는 자신의 근원을 다시 되돌아보게 합니다.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한 지구에서 티끌보다 더 작은 존재로 살아가는 우리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겠습니까? 자기도취에 빠지지 말고 세상과 더불어 겸손하게 살아가라고 자연은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떠나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는 짧은 여행의 긴 여운입니다.


우주 강국을 향해 나아가는 기상인 듯합니다. 우뚝 솟은 인공물이 압도적으로 시야를 휘어잡는 나로도 우주 발사 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거쳐온 마복산이며 오취리 바닷가 그리고 해창만으로 펼쳐진 푸른 들판을 눈대중으로 가늠해 봅니다.

남기고 온 흔적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다시 볼 수 있을지, 그날이 온다면 지금 우리는 얼마나 변한 모습으로 그것들과 또 마주하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덧없는 시간 속에 몸도 마음도 세월과 함께 늙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 순간이 얼마나 귀중하고 값진 시간인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우주전망대.jpg


이따금 뿌리던 빗줄기가 순천 초입에 이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뚝 그칩니다. 귀가의 아쉬움이 한층 묻어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순천 갈대밭 들렀다 가요!”


예정에 없던 뜻밖의 제안에 잠시 침묵이 흐릅니다. 선택의 망설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제안에 모하비 엔진 소리마저 기가 죽는 것 같습니다. 마치 역마살 끼인 사춘기 아이가 떼쓰는 엄포처럼 들립니다.


“갈대밭은 사계절 따라 그 모습이 제각각이에요,

장마 중의 푸른 갈대밭은 지금 안 보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해요!”


짧은 망설임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대단합니다. 수긍을 이끌어내려는 고군분투가 눈물겹습니다.


“1년 후를 누가 장담할 수 있죠?

내일 닥칠 일도 알 수 없는데!”


명쾌한 일갈에 누구도 반론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재주로 일 년 후를 장담한단 말입니까? 내일 일도 알 수 없는 군상들의 앞날인데! 분위기는 이미 기울었습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그냥 가봅시다.


끽소리도 못한 채 핸들을 꺾습니다. 이렇게 하여 일정에 없던 순천만 갈대밭을 들리게 된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참 다행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비록 우연이 가져다준 필연의 결과라 할지라도 이런 전제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순천 갈대밭은 또 다른 추억거리를 안겨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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