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순천만의 낯선 손님들

물고랑의 갈대

by 강쌍용



예전에는 둑길을 따라 갈대와 철새들을 볼 수 있는 단조로운 코스였지만 순천만 정원 박람회를 계기로 많은 편의 시설이 갖추어졌습니다.

고흥반도와 여수만 사이로 약 5.4㎢의 갈대밭과 22.7㎢에 이르는 방대한 습지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이미 2006년 우리나라 최초로 람사르에 등록되기도 하였습니다. 이곳에 자생하는 도요새와 흑두루미 그리고 물떼새를 비롯한 다양한 철새들과 칠게, 붉은 외발 농게 등 많은 갯벌 생물들은 보호종으로 엄격히 관리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더 이상 인간이 자연의 파괴자라는 오명을 써서는 안 됩니다.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조력자로서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공생이 가능한 조화로운 지구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사소한 힘이라도 모아나 가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할 때입니다.


습지의 긴 물길을 따라 출렁이는 갈대의 군락이 마치 거대한 카퍼레이드를 펼치듯 시선을 압도합니다. 아쉽게도 길게 트인 물고랑을 따라 드나 더는 작은 어선들은 볼 수 없습니다. 흐린 날씨 탓입니다. 해넘이의 풍경과 함께 순천만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기를 원하는 그림입니다.

작은 통발 배가 그어 놓은 귀선의 물살 위로 갈매기가 나는 목가적인 풍경은 아름답다 못해 차라리 황홀하기까지 합니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고요 속의 정물화 같습니다.

그러나 드러나는 그림의 단면만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단지 한 폭의 피사체로 바라보는 시선은 거의 교만에 가깝습니다. 풍경 뒤에 꿈틀거리고 있는 그들의 고달픈 삶도 제대로 보아야 옳습니다. 억척스러운 애환을 읽을 수 있어야만 그림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겉은 보되 속은 간과하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척박한 뻘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갈대의 생명력만큼 그들의 삶도 그만큼 튼튼하고 우렁차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숙연하고도 남을 경건한 순간을 포착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운전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잠시 눈을 붙인 탓에 먼저 간 일행들과 합류하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부지런히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일행들의 한가로운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잘 만들어진 데크 로드를 따라 저마다의 사연으로 이곳을 찾았을 사람들과 함께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바쁠 이유도 서둘 까닭도 없습니다.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을 오래간만에 온전히 즐기고 있습니다. 스쳐 지났으면 누리지 못하는 여유입니다.

하늘을 수놓는 물새 떼를 은근히 기대했으나 갑자기 방문한 낯선 손님에게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의지로 인위적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시계에 따를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시기와 장소와 시간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지만, 하느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시혜는 오직 그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엄위한 자연을 두려워하고 언제나 경외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순천만을 찾아준 손님들을 반기듯 농게 한 마리가 제집을 벗어나 엉금엄금 기어가고 있습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일행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며 한참 서 있습니다. 돌아갈 길이 아직 멀었는데도 말입니다.

멀리서 몰려오는 구름이 다시 비를 뿌리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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