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삶은 알바다.

내 맘 알지?

by silvery rain 이혜영

#. 테이크아웃 카페에 간다.

“어서 오세요.”

세련된 화장에 상냥한 웃음을 지녔지만, 목소리는 아기 같은 여학생이 나를 맞는다.

“안녕하세요?”

다정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테이크아웃으로 커피와 냉동 생크림 빵을 산다.

“생크림 빵은 집에 가서 데워 먹을게요. 얼마나 데우면 되죠?”

“10분 정도 데우시면 됩니다.”

“10분요?”

속으로 생각한다. '빵을 10분이나 데워도 되나?'

“네.”

“저기, 잠시만요. 집에 가시면, 1분만 데우시면 됩니다.”

옆에서 우리의 얘기를 듣고 있던 다른 알바생이 서둘러 끼어든다.

아기 같은 목소리의 알바생 얼굴이 발갛게 물든다. 안쓰럽고 애처롭다.

“안녕히 계세요.”

다른 날보다 더 상냥하게 마음을 담아 작별 인사를 한다.


#. 지하철에서 나와 길을 가는데 대학생인듯한 남자가 전단지를 나눠준다.

상냥하게 받는다. 다이어트 전단지다. ‘내가 뚱뚱해 보이나?’ 버리고도 싶지만, 가방에 넣는다. 집에서 읽어보고 버린다.


#. 음식점에서 매운 음식을 먹었다. 땀도 닦고, 콧물도 닦은 휴지가 있다. 뭉쳐서 가지고 있다가 화장실에서 버린다.


#. 파스타를 먹다가 식탁 위에 면을 흘렸다. 휴지로 줍고 식탁을 닦아놓는다.


#. 뷔페에 간다.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눈길이 간다. 접시를 옮기는 그들의 모습이 위태위태하다. 쟤는 꼭 우리 딸 같네. 쟤는 조카 같네.라는 생각을 잠시 한다.

담아온 음식을 남김없이 깨끗이 먹는다.

사용한 접시를 수거하는 알바생에게, 접시를 건네주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집에 돌아와서 딸이 말한다.

“엄마는 왜 그렇게 저자세야?”

“뭐가?”

“식당 같은 데서 왜 그렇게 굽신거리냐고? 친절도 정도껏 해야지.”

“얘는? 엄마가 언제 그랬다고.”


난 나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다. 알바생들이 안쓰럽고 정이 간다. 예전의 '나'같아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은 빈번하게 우리를 속인다. 삶이란 놈이 우리를 속인다 해도, 절망이 꼭 우리의 몫은 아니다. 삶이 우리를 속이면 속아주는 척쯤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속으면 안 된다. 속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흔들리더라도 떨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으면, 언젠가는 내 길이 보인다. 떨어져도 괜찮다.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암튼, 내 길이 보이면 그 길을 가면 된다. 남을 의식하지 말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꼭 기억하면서.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 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정호승, 술 한잔-




부정하고 싶지만,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진리. 삶은 유한하다.

삶에는 정규직도 없고, 무기 계약도 없다. 삶은 잠시 머물렀다 그만두는 아르바이트다.


인생의 알바를 할 때, 끌려다니면 안 된다. 한없이 끌려다니다 보면 만신창이가 되는 것은 나다.


말 좀 한다는 인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나를 사랑하라.”

너무너무 너어무! 맞는 말이다. ‘나’를 사랑해야 수많은 ‘너’들을 ‘나’로 대하며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이 내게 술을 사주지 않으면 내가 나에게 술을 사주자. 혼자서라도 잔을 들어 나의 건강을, 나의 안녕을, 나의 행복을 기원해 주자.

“알바 ‘나’들! 내 맘 알지?”





@ 이번 생은 알바로 살겠습니다. 끝!

알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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