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장학금은 꿈이고, 알바는 현실이라서.

굳이 그렇다는데.

by silvery rain 이혜영

2021년 현재는 국가장학금 덕분에 웬만큼만 성적이 나오면 모두가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80년대 말은 그렇지 못했다. 성적장학금, 근로장학금, 향토장학금 정도가 장학금의 전부였고, 액수도 그리 많지 않았으며, 수혜자의 폭도 그리 넓지 않았다. 정부에서 보증하는 학자금 대출은 아예 없었고, 개인이 은행에 의뢰해 보증을 세우고 심사를 거쳐 대출을 받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부모에게 의존할 수 없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늘 등록금에 대한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랬다. 장학금은 불확실한 꿈이었기 때문에 현실적인 알바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전봇대에 알바를 구하는 전단지가 종종 붙어있었다.


「숙식제공, 월수입 50 이상. (지금으로 치면 500 이상이다.) 면접 후 결정.」


오! 괜찮은데!


전화해봤다. 나른한, 쉰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전단지 보고 전화했는데요.”

“대학생이에요?”

“네. 무슨 일하는 거예요?”

“아, 힘들지 않은 거예요.”

“입주 과외인가요?”

“그건 아니고, 일단 와서 얘기할래요?”

“뭐 하는 건지 알아야.”

“서비스업이에요. 일단 한번 와 봐요.”

“네. 거기가 어디죠?”

여자가 주소와 상호명을 가르쳐 줬다. ‘엘르?’ 잡지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찜찜했다.

“생각해보고 다시 걸게요.”

“아니, 먼저 면접해 보고 얘기하자니까요.”

후에 알았다. 돈 많이 주고, 무슨 일인지 분명치 않고, 숙식 가능. 이런 곳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그런 것을 알기엔 그 당시가 너무 폐쇄적인 사회였다. 물론 맹추 같은 내 탓이 제일 컸지만.




나의 두 번째 알바는 학교 매점이었다. 말이 학교 매점이었지 거의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강의 하나가 끝나면 수백 명의 학생이 매점으로 몰려온다. 참고로 캠퍼스 전체에 매점은 두 개밖에 없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만 되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타고난 문과 체질이라 계산만 생각하면 두통이 생기고, 눈치를 보던 내가, 계산기에 가깝게 물건값을 셈해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에 가깝다.

여담이지만, 그때의 학생 식당은 정말 형편없었다.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에 죽죽 늘어선 식탁들, 낡은 의자들. 쇳내가 나는, 앞사람의 음식이 덜 씻긴 스테인리스 식판, 대충 조미료로 맛을 낸 음식들. 김치, 단무지, 돈가스, 멀건 콩나물국... 이런 것들이 그 시절의 풍경이었다. 그래도 젊던 날들이라 그런 것들도 맛있었다. 돈가스를 먹는 우리만의 비법이 있었다. 옛날식 얇은 돈가스를 잘게 잘라 밥, 김치, 양배추 샐러드와 비벼 먹는 것이다. 개밥과도 같은 그 비주얼이 어떻게 그런 감칠맛을 낼 수 있는지. 현대의 두툼한 돈가스와 깔끔한 샐러드는 그 맛을 낼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암튼 그 매점 알바는 일주일 만에 그만뒀다. 계산 머리에 과부하가 걸려서 도저히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친절했던 매점 주인아주머니의 작고 귀엽고, 오동통했던 모습이 생각난다.






세 번째는 국립 과학관이었다.


그전에 찰나와 같은 알바가 있었다. 바로 다방! 요즘의 방 다 구해준다는 다방이 아니다. 커피 마시고, 차 마시는 다방이다. 당시 대학가에는 음악다방이라는 곳이 제법 있었다. 지금의 농촌에 있는 이상한 다방과는 다른, 음악 부스가 있고, DJ가 있고, 학생들이 스터디를 하거나 음악을 들으러 와 몇 시간씩 죽 때리는(버티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도 즐거운 하나의 문화였다. 다방 알바를 한 지 3일쯤 지난 어느 날, 서클의 남자 선배와 아주 짧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너 아르바이트한다며? 어디서 해?”

“새봄 다방요.”

“새봄 다방? 왜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해? 다른 데도 많은데.”

“그냥. 왜요?”

“야! 다방은 좀 그렇잖아.”

“다방이 왜요? 차 마시는 곳인데. 음악도 나오고, 스터디도 하는 곳이고. 카페에서도 아르바이트 많이 하잖아요.”

“야! 카페는 그렇다고 쳐도 다방은 좀 아니다.”

“그래요? 뭐가 아니지?”

“아휴! 야, 다방은 좀 그렇지.”

“뭐가 그렇지?”

“아휴! 이, 맹추야!”


그만뒀다. 굳이 그렇다는데.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물론 공강 시간에 잠깐씩 할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그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내가 그만둬주지.



국립 과학관은 다음 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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