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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y rain Jan 07. 2022

중앙고속도로 4.

4. SM3와 벤츠

 SM3와 벤츠      


 때론 도로 위의 차들이 친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낭떠러지를 품고 있을 것 같은 아득한 안갯속에서, 와이퍼가 밀릴 만큼 퍼붓는 폭우 속에서 노란색으로 점멸되는 앞차의 비상 깜빡이는 도로 위의 등대다. 

 차들은 빛으로 말하고 빛으로 대화한다. 위험을 알릴 때는 비상 깜빡이. 경고는 하이 빔. 고마울 때는 비상 깜빡이 두 번. 그때마다 그들은 먼 길을 함께하는 동반자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과속 단속 카메라를 지나치는 동시에 비상 깜빡이를 끈다. 떼었던 발을 다시 액셀러레이터에 올려놓으며 여자는 룸미러를 흘낏거린다. 액셀을 밟은 발에 힘이 들어가자 차가 기분 좋게 가속된다.

 남편과 아이는 잠이 들어 있다. 룸미러 속 남편의 얼굴엔 피곤이 덧대어 있다. 여자는 낮은 한숨을 쉬며 카오디오의 볼륨을 낮춘다. 

 나들이라는 말은 구실에 불과하다. 관사 생활만 7년. 내 집이 갖고 싶다, 라는 생각에 여자는 하루도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커 가는 아이를 시골 학교에 처박아 두고 안주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또 도시 생활에 대한 향수병에, 하루하루가 지겹기만 했다. 여자는 틈만 나면 청약 통장과 적금, 예금 통장을 들여다보곤 했다. 이젠 어느 정도 될 것 같았다. 한 푼도 없이 시작했지만, 200만 원 채 안 되는 수입으로 1년에 1000만 원씩 모아 왔다. 여행 한번 제대로 간 적 없고, 아이 옷 한 벌 예쁘게 사 입힌 적이 없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영양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이 7,000만 원. 이 정도면 될까? 여자는 내내 들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림도 없었다. 모기지론 어쩌고 저쩌고. 대출 좀 받고 어쩌고 저쩌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어쩌고 저쩌고. 여자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7년 전, 서울을 떠나올 때만 해도 1억 정도면 살 수 있었던 20여 평형 아파트가 지금은 2억을 훨씬 웃돌고 있고, 5천~6천 정도면 세를 얻을 수 있었던 다세대 주택들이 전세 1억 이상을 호가하고 있다. 

 울고 싶지만 웃음이 나온다.

 정말 웃기는 세상이다. 집이, 집이 아닌 세상. 가치만 올려놓고 팔 수도, 편히 살 수도 없는 재산 증식의 수단. 이제 생가라는 말은 국어사전에서 사라져야 할지도 모른다. 언제든 값이 오르면 팔아 치울 준비가 돼 있는, ‘갈아탄다’라는 말이 접미사로 붙어 다니는, 버스 같은 집. 

 서울은 꿈이 되어버렸다. 

 엄마, 우리 이거 찜해 놓자. 

 엄마! 빨리 가서 말해. 우리 이거 살 거라고.

 여덟 살배기 딸은 아파트의 휘황찬란한 구조와 인테리어에 들떠 흥분하며 떠들어댔다. 

 그러나 딸의 손을 잡고 나오는 남편의 표정은 흙빛이었다. 비참함에 축 처진 남편의 모습이 안쓰럽기보다 못나 보였다. 

 다시 들여다본 백미러 속 남편의 얼굴이 무신경해 보인다. 

 짜증 난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 화가 난다. 

 아우디가 SM3 앞으로 나선다. 비치는 운전자 윤곽이 여자다. 

 흥! 잘 살아서 좋겠다.

 괜한 심술이 주위를 분산시킨다.

 강남은 강남이었다. 외제차 일색이었다. 그랜저나 체어맨 같은 것은 너무 흔했고, 벤츠나 BMW, 렉서스 같은 것은 심심찮게 보였다. 아우디, 크라이슬러, 포르셰 같은 것들도 아무렇지 않게 도로를 활보하고 있었다.

 운전하고부터 생긴 버릇이다. 차 이름 외우고 다니는 것. 어차피 타보지도 못할 차 이름은 왜 이렇게 줄줄 꿰고 다니는지. 못나고 못 가진 것들의 공통점이다. 줄줄 꿰면서 끝은 비아냥거림으로 끝나버리는 것. 그래서 더 화가 난다. 부자가 되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말에 소크라테스가 말했단다. 적게 바라면 된다고. 맞는 말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평생 거지처럼 살다가 독배를 퍼마시고 죽었다. 돈도 없고 백도 없고 권력도 없었기 때문에 변변한 핑계 하나 대지 못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죽어 간 것이다.

 그런 거 다 필요 없다. 난 시골이 싫다. 춥고 곰팡내 나는 관사가 지긋지긋하고, 코끝이 찡하도록 시린 맑은 공기가 싫다. 때론 매연이 그립고, 늙어 죽을 때까지 살 내 집이 갖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이 좁아터진 SM3도 확 바꿔버리고 싶다.

 SM3는 방향지시등을 교대로 켜며 차선을 바꿔 아우디 앞으로 나선다. 내친김에 속도를 더 높인다. 웽- 소리가 나며 게이지가 140을 넘어선다. 

 “천천히 가지, 왜 그렇게 밟아대?”

 게슴츠레 눈을 뜬 남편이 잠꼬대처럼 중얼거린다. 

 “더 자! 왜 일어나?”

 “조심해. 트럭 같은 거 있으면 제껴버리고.”

 “알아서 할 테니까 잠이나 더 자.”

 남편은 백미러 속에서 다시 눈을 감는다. 

 저속 주행 도로에 안착한 SM3는 긴장을 푼다. 속도는 100. 여자가 고속도로에서 가장 선호하는 주행속도이다.

 시야가 트인 전방으로 3대의 트럭과 버스가 연달아 달리고 있다. 시속 100km. 그럼에도 앞차와 간격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쩔 수 없다. 또 추월이다. 초보 때도 무섭지 않았다. 트럭이나 버스는 덩치만 컸지 둔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자주 말하곤 한다. 넌 운전이 난폭해. 운전하는 걸 보면 성격이 나온다더니, 넌 남자야. 

 SM3는 왼쪽 깜빡이를 켜며 속도를 올린다. 왼쪽 차선, 약 100m 후방에서 검은 차가 달려오고 있다. 저 정도쯤이야!라는 생각을 하며 SM3는 차선을 바꾼다. 백미러 속의 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돌진 중이다. 여자는 한쪽 눈썹을 찡긋하며 속도를 높인다. 게이지가 150을 넘어간다. 트럭 3대와 버스를 간단하게 젖힌다. SM3는 내친김에 느려 터진 흰색 마티즈도 젖혀버리고 저속 차선으로 안주한다. 

 “휴게소에 좀 세우지? 운전 바꾸게.”

 “괜찮아. 뭘 벌써 바꿔? 더 자.”

 “너 운전하는 거 보니까 또 뭔가에 꽂힌 것 같다.”

 “꽂히긴 뭘 꽂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잠이나 자. 다음 휴게실에서 바꿀 테니까. 그때 저녁 먹으면 딱 되겠네.”

 “몇 신데?”

 “6시 안 됐어.”

 말이 끝나자마자 남편의 머리가 왼쪽 오른쪽으로 진자운동을 한다. 꺾인 목이 애처로워 보인다.

 저렇게 피곤하면서 운전은 무슨!

 여자가 카오디오 볼륨을 더 낮추며 속도를 줄인다.

 초저녁 분위기가 그럴싸하다. 풍경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사실 풍경을 즐길 만한 여유도 없다. 고속도로에선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그래서 고속도로의 양옆이 회색 시멘트만 발라져 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에 눈 돌렸다간, 여유를 가졌다간 끝장이니까. 하지만 초저녁의 분위기는 그럴싸하다. 여자는 초저녁을 무조건 좋아한다. 여자의 뇌리에 박혀 있는 초저녁은 이미지였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분홍빛을 띤 하늘엔 흰 구름이 바람에 살랑살랑 실려 가는,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정겨운, 식상한 그림 같은 이미지. 하지만 좋다. 식상한 그림 같은 이미지가.          

  


 어지러워.

 춘천…… 우리가 갔던 곳…….

 그 사람 머리가 짧았어.     


 남자는 까슬까슬하고 만지면 통통 튈 것 같은, 짧은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모든 것을 담아가려는 듯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사람이 울었어. 기차에서.     


 기차에서 남자는 울지 않았다. 남자가 운 건 춘천에서였다. 그날 밤 사랑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하나로 녹아내릴 만큼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그래 맞아. 무너져 내릴 만큼. 사랑했었지.     


 남자가 청혼했었다. 제대하자마자 결혼하자고.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할 수 없을 만큼 기뻤기 때문이다. 대답 대신 여자는 남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 몸이 떨렸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람 입술에 키스했지. 노래… 노래도 불렀었는데…….     


 그들은 노래하지 않았다.          

  


 “저게 미쳤나?”

 SM3가 휘청거리자 여자가 신경질적으로 클랙슨을 두드려대며 거칠게 말을 뱉는다.

 “왜?”

 남편이 어리둥절한, 그러나 본능적인 순발력으로, 눈에 힘을 주고 큰 소리로 묻는다. 

 “저 미친!”

 여자가 말을 참는다. 

 “뭐야? 왜 그러는데?”

 잔뜩 열 오른 표정의 여자가 운전대를 잡은 채 흥분하고 있다. 

 “아니, 저 벤츠 새끼가 갑자기 깜빡이도 안 켜고 끼어들잖아. 사고 날 뻔했어.”

 남편은 특유의 인상을 쓰며 창을 열고 벤츠를 노려본다. 바람이 몰려 들어온다. 남편의 얼굴은 여자가 가끔 놀리곤 하던 그 표정일 것이다. 깡패, 도둑놈보다 더 흉악해 보여야 하는 교도관의 얼굴. 창의력이 돋보이는 갖가지 흉기와 폭력, 욕설 속에서 교도관들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자위 수단. 말 그대로 얼굴이 무기인 셈이다.

 “그러니까 내가 운전 바꾸쟀잖아.” 

 “뭘! 내가 운전 못 해서 그랬나? 저게 갑자기 끼어들어서 그랬지.”

 “놀랐지? 암튼 휴게소에서 바꾸자.”

 “근데 저 새끼가 아무래도 사고를 유발하려고 그랬던 것 같아. 깜빡이 없이 끼어들더니 갑자기 속도를 팍 줄이는 거야.”

 “그래? 놈이야? 년이야?”

 “몰라! 선팅을 하도 시커멓게 해 놔서. 드라큘라라도 타고 있나 보지. 미친!”

 “너도 저 새끼 앞으로 가서 똑같이 해 봐. 세워서 조사 좀 해 보게.”

 “싫어! 미쳤어? 사고 나면 어쩌려고.”

 “해 봐! 속도 냈다가 깜빡이 켜고 들어가서 비상 깜빡이 넣고 천천히 브레이크 밟아.”

 “안 해, 안 해. 나 못 해. 그리고 자기가 무슨 경찰이야?”

 “해 보라니까!” 

 “아빠, 안 돼!”

 “어? 우리 딸 언제 일어났어?”

 여자가 애써 웃으며 딸을 반긴다.

 “엄마, 그냥 가세요. 위험해요.”

 “알았어. 알았어. 걱정 말고 더 자.”

 “에이!”

 미련이 남는지 남편이 입맛을 다신다. 여자가 속도를 높여 다른 차들을 추월하며 나아간다. 벤츠는 어디에서 오고 있는지 보이지 않고 있다. 고속주행을 하던 SM3는 저속차로로 들어가 평균 속도를 유지한다. 여자는 볼륨을 높인다.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고 있다. 

 “우리 휴게소 가서 뭐 먹을까?”

 “라면요.”

 “넌 맨날 라면이냐? 그러니까 점점 못생겨지지.”

 남편이 놀리자 딸이 아빠를 흘겨보다 마주 장난을 친다. 그들을 보며 웃고 있지만, 여자의 놀란 가슴은 좀체 진정되지 않는다. 휴게소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엄마, 저 새끼가 또 추월해요.”

 아이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SM3가 휘청거린다. 차체의 흔들림과 동시에 뭔가가 검은빛으로 지나간다.

 “뭐야? 방금 뭐였어?”

 “허!”

 남편은 헛웃음만 흘린다. 

 “방금 지나간 거 뭐였냐고?”

 여자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몰라. 나도.”

 “무슨 차였어?”

 “몰라. 검은색이었다는 것밖에.”

 “와, 정말!”

 남편은 말을 잇지 못한다.

 “170은 넘겠다. 그치? 아니 170이 뭐야? 200은 되겠다.”

 “흥! 미친놈!”

 “진짜 미친놈이다. 세상엔 정말 미친놈 많다. 오늘은 특히 그러네? 그치?”          

                                           


 토할 것 같애.

 여기가 어디지? 

 준희… 우리 딸…… 우리 딸 준희, 보고 싶다. 우리 딸…… 우리 준희, 보고 싶다. 


 여자가 계속 웃었다. 결혼식이었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신부가 너무 웃으면 딸 낳는다는 말도 듣기 좋았고, 화장한 볼에 주름이 잡힌다는 말도 듣기 싫지 않았다.     


 많이 웃었어. 그래서 우리 준희를 낳았나 봐.      


 아주 연약한 아기였다. 여자는 작고 여린 아기를 만질 수도 없었다. 아기가 울고 있어도 안아 줄 수가 없었다.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무서웠어.    

 

 그랬던 준희가 다섯 살이 된다. 오늘로.  

   

 케이크…… 생일 케이크… 어디 있지?      


 여자가 산 생일 케이크는 여기에 있지 않다. 다른 것들 역시 여기에 없다.   

  

 우리 준희 건데…… 어디 있지?


 준희의 생일 케이크는 이미 먹어버렸다. 




*2009년에 초고를 완성한 글이라서 현재의 경제상황, 주택상황과 괴리가 있음을 명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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