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y rain Jan 10. 2022

중앙고속도로 6.

6. 벤츠와 아반떼

 벤츠와 아반떼     


 묵직하던 아랫배가 땡땡해지더니 뒤가 당긴다. 남자가 조급해진다. 여전히 내비게이션은 휴게소를 알려 주지 않고 있다.

 아이, 씨!

 전 휴게소에서 대변을 보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이젠 배가 아프기까지 하다. 앉아 있기가 힘들다. 아, 똥 마려워! 빌어먹을! 휴게소가 왜 이렇게 멀어? 중간에서 쌀까?

 휴게소 20km.

 남자가 가속페달에 힘을 준다. 130 - 135 - 140 - 150km.

 씨발! 이러다 똥도 못 싸 보고 죽겠네.    

 

 우리 준희는…… 자는 모습도 참 예쁜데…….

 준희, 준희야! 준희한테 가야 돼. 준희한테…….     


 여자가 생각에 사로잡힌다.

 여자는 준희를 잘 키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도 보내고 피아노도 가르치고. 강한 아이로 키워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강한 아이로 키워야 한다고. 또 생각한다. 강한 아이로 키워야 된다고.     


 2km 전방에 화장실이 있습니다. 1km 전방에 화장실이 있습니다.

 화장실? 참 나, 이젠 휴게소가 화장실로 들리네.

 깜빡이도 잊은 아반떼가 휴게소로 내달린다. 아반떼는 화장실 앞에서 엉거주춤, 제 라인에 들어서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자세로 엎드린다. 남자가 휴지를 챙겨 들고 화장실로 뛰어간다.

 성적 쾌감이 이것만 할까? 배변의 쾌감에 머리카락이 찌릿해질 정도다. 입에서는 절로 신음이 새어 나온다. 배를 쓰다듬으며 만족해하는 꼴이 우습기도 하지만 남자는 흐뭇하다.

 흐뭇함도 잠시, 화장실 안의 정서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너무 조용하다. 냉혈동물의 뱃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소리란 소리는 죄다 증발해버렸다. 남자는 심호흡을 하며 헛기침을 해 본다. 그러나 느껴지는 것은 배변 끝에 오는 한기뿐. 어둠처럼 드리워진 적막감에 소름까지 돋는다. 남자가 서둘러 옷을 입는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산은 하나의 덩어리다. 완벽한 어둠과 충만한 적요는 어떤 비밀이라도 지켜 줄 듯하고, 어떤 음모라도 덮어 줄 듯하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자연은 개의치 않는다. 어떤 고통에도 눈감아버릴 뿐이다.   

   

 아반떼는 모습 그대로 얌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자가 담배를 피워 문다. 배는 채워져 있겠다, 쾌변도 봤겠다, 담배 한 대만 피우면 더 바랄 게 없다.

 남자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휴게소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어둠으로 조성된 공원 안엔 장승들이 밑을 내려다보며 서 있다. 낮에 봤다면 우스웠을 장승들의 희화된 모습이 밤엔 섬뜩한 느낌을 준다. 돌출 입 장승, 입 벌려 웃는 썩은 이빨의 장승, 화난 장승, 벌거벗고 흐느적거리는 장승, 어른 팔뚝보다 더 굵은 성기를 위로 내뻗고 있는 장승, 고개 숙인 성기의 장승, 처진 젖가슴과 슬퍼 보이는 얼굴의 장승.

 ……노랫소리.

 소름이 돋는다.

 허밍?

 노랫소리?

 공원의 후미진 곳에 외따로 서 있는 검은 차에서 들려오고 있다. 여자의 허밍이.

 남자가 검은 차를 향해 촉각을 세운다. 벤츠.

 마른침을 삼킨다. 남자의 입술에서 타들어 가던 담배가 멈춘 시간 속에서 잿빛으로 변해버린다. 남자가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려 벤츠를 훑어본다. 시동이 꺼진 벤츠 안엔 사람이 없다.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주위엔 아무도 없다. 벤츠 가까이 간 남자가 뭔가를 줍는 척하며 차 쪽으로 귀를 기울인다.

 아닌가?

 남자는 좀 더 집중한다.

 들리는 것 같다. 노랫소리. 아니, 허밍.

 자장가. 엄마가 섬 그늘에, 로 시작되는 그 노래.

 남자의 눈이 경련을 일으킨다.

 뭐지?

 물고 있던 담배가 땅에 떨어져 마지막 불꽃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이내 목을 떨군다.

 뭐야?

 남자가 좀 더 가까이 귀를 대 본다. 남자의 눈동자가 좌우로 경련을 일으킨다. 속눈썹의 움직임도 빨라진다.

 그러나

 아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뭘!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휴게소에서 나오고 있는 남자들을 의식하며.

 그럼, 그렇지! 내가 잘못 들었어.라고 남자는 단정 짓는다.

 남자의 갈등은 그것으로 끝난다. 남자는 자신의 아반떼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남자를 태운 아반떼는 일상 속으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 아가…… 잘 자…….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이전 05화 중앙고속도로 5.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