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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y rain Jan 11. 2022

중앙고속도로 7.

7. 벤츠와 마티즈, 그리고 SM3

 벤츠와 마티즈그리고 SM3     


 마티즈가 왼쪽 깜빡이를 켜며 도로로 진입한다. 저녁 8시 8분. 금요일의 중앙고속도로 하행선엔 차가 많지 않다. 가끔 버스나 트럭이 지날 뿐이다.

 운전대를 잡은 여자의 손이 떨린다. 질주에 집중할 수가 없다. 벤츠, 맘만 먹으면 작은 마티즈를 집어삼킬 수 있는 검은 두려움. 어딘가에서 벤츠가 이빨을 드러내며 튀어나올 것만 같다.     


 세상에는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어릴 때는 사랑을 모르고, 젊을 때는 사랑밖에 모르고. 나이가 들면 사랑을 잊어버린다.     


 준희… 준희 아빠…… 사랑해.      


 우리가 저 담쟁이만큼 살 수 있을까? 여자가 남편에게 물었었다. 담쟁이덩굴이 벽을 뒤덮고 있는 아주 오래된 성당에서였다. 담쟁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손자 손녀는 볼 수 있을 거야,라고 여자의 남편이 말했었다. 남편의 말에 여자의 볼이 달아올랐었다. 그들은 신혼여행 중이었으니까. 

 아침에 여자는 남편한테 말했다. 일찍 들어오라고. 준희 선물 잊지 말라고. 여자는 궁금하다. 남편이 준희 선물로 뭘 샀을지.     


 인형을 샀을까? 

 준희…… 준희 보고 싶어. 

 난, 왜…….    

 

 벤츠다.      

 여자가 핸들을 움켜잡는다. 다시 시작된 것이다. 벤츠는 갓길에 정차되어 있다. 널 기다렸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핸들을 움켜쥔 손바닥과 손가락 사이로 땀이 비어져 나온다. 검은 짐승처럼 포복하고 있던 벤츠가 음산한 웅크림을 풀지 않는다. 뒷골이 얼어붙는 긴장감을 느끼며 마티즈가 서서히 속력을 높인다. 뒤이어 벤츠가 급발진을 한다. 

 도대체 니가 원하는 게 뭐야?

 맹렬한 속도로 접근해 오는 벤츠를 향해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마티즈가 급가속 페달을 밟는다. 

 니가 도망친다면 쫓아가 주지!

 벤츠가 하이 빔을 쏘며 마티즈의 꽁무니를 압박한다.

 마티즈는 이제 땀을 흘리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120 - 130km……. 마티즈가 어금니를 깨문다. 마티즈의 핸들에 이제 흔들림 따위는 없다. 하지만 벤츠의 압박은 점점 더 노골적이 되어 간다.

 백미러 속 벤츠 안, 운전석과 조수석에 도사리고 있는 두 개의 그림자엔 움직임이 없다. 왼쪽 사이드미러 속 300미터 후방에서 차 한 대가 달려오고 있다. 맹렬한 속도로.

 마티즈의 브레이크 등이 두세 번 깜빡인다. 벤츠가 비웃듯이 굉음을 내더니 시뻘겋게 달궈진 돌기를 치켜들며 마티즈를 몰아붙인다.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마티즈가 휘청거리며 차선을 바꾼다. 또 한 번의 급가속 140km. 다시 따라붙는 벤츠. 헐떡이며 재차 차선을 바꾸는 마티즈. 가드레일을 스치며 날아가는 왼쪽 사이드미러. 귀 양쪽이 떨어져 나간 불구의 마티즈를 덮치려는 벤츠. 휘청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마티즈. 붉게 달궈진 벤츠가 하얗게 질린 마티즈 꽁무니에 아가리를 들이미는 순간, 급가속한 마티즈가 핸들을 꺾어 갓길로 빠지며 브레이크를 밟는다. 

 그렇겐 안 될걸! 절대 널 놓아줄 수 없지.

 갓길로 들이닥치며 마티즈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는 벤츠. 벤츠의 스키드 마크와 마티즈의 스키드 마크가 뱀처럼 뒤엉켜 괴성을 내지른다. 벤츠의 급브레이크와 마티즈의 급브레이크가 충돌하려는 순간, 마티즈가 비명을 지르며 납작 엎드린다.

 마티즈 여자의 몸이 앞뒤로 흔들린다. 그러나 정신을 놓을 여유가 없다. 차를 확인해야 한다. 차문을 확인해야 한다.

 벤츠의 문이 움직인다. 여자의 숨이 멎는다.

 어떻게 하지? 이대로 있어도 될까?

 그때 갓길로 들어서며 여자의 뒤에 정차하는 또 한 대의 차. 열렸던 벤츠의 문이 주저하다가 닫힌다. 여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각기 다른 세 종류의 차가 갓길에 서 있다. 벤츠, 마티즈, SM3. 그들의 엔진엔 이상이 없다. 연료도 떨어지지 않았고 직접적인 접촉 사고도 없다.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뭔가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을 기다리고 있다. 

 예상치 못한 일이다. 벤츠가 동요한다.

 마티즈가 숨죽이며 눈치를 본다.

 SM3는? 

 긴장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빛들만 점점이 떠돌아다니는 중앙고속도로에 긴장감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긴장감이 불안으로 바뀌어 갈 즈음, 벤츠의 양쪽 앞문이 열린다. 도로 위로 나온 두 개의 물체들은 남자들의 다리. 그들을 주시하던 SM3의 운전석 문이 열린다. 여자들은 여전히 숨죽인다. 두 발을 딛고 선 SM3의 남자가 마티즈 쪽으로 걸어가려 할 때다. 

 “여보! 총 갖고 가!”

 SM3의 여자가 남자에게 둔중해 보이는 물건을 건네주며 큰소리로 외친다. 그러자 다리만 꺼내 놨던 벤츠 속의 물체들이 제각각 다리들을 거둬들이고, 급가속해 시야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벤츠가 사라지고 나서 한참 후, 복잡한 눈물을 흘리던 마티즈가 출발한다. SM3가 그 뒤를 잇는다.

 언제부터인지 SM3 앞에서 마티즈의 비상 깜빡이가 손을 흔들고 있다. 마티즈의 고마움이 멈출 줄을 모른다. 여자가 잊었거나 잊지 않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SM3와 마티즈는 나란히 집으로 향한다.     

 

 “엄마, 아까 검은 차에서 무슨 소리 났어요.”

 “응? 너 안 자고 있었어?”

 “응.”

 “너, 그럼 다 알고 있었어?”

 “뭘?”

 “아냐. 아무것도.”

 “근데 엄마는 그거 왜 들고 있어요?”

 “뭐?”

 SM3의 여자는 호신용 봉을 아직도 가슴에 안고 있다. 

 “엄마, 나 아까 강아지 소리 같은 거 들었어요.”

 “강아지 소리?”

 “응. 낑낑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노랫소리 같기도 하고. 이상한 소리였어요.”

 “그래?”

 아이의 아빠가 대신 대답한다. 남자가 속도를 줄이며 휴대폰 폴더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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