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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y rain Jan 12. 2022

중앙고속도로 9.

9. 톨게이트

톨게이트     


 검은색 벤츠 01다 34XX. 수배 차량.     


 SM3의 신고로 톨게이트마다 검문검색 명령이 하달되었다. 벤츠는 실종 차량이다. 중앙고속도로 부산 방면의 안동, 예천, 의성 등의 톨게이트에서 검문이 시작되었다. 톨게이트 요금 징수원은 조금 전의 벤츠가 수배 차량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벤츠는 이미 톨게이트를 빠져나간 상태다.      


 준희, 준희야……. 우리 딸 생일인데…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우리 준희 생일인데…… 준희 생일날 엄마가 함께 못 있어 줘서. 

 왜… 난 왜? ……돌아가고 싶어. 준희야…….

 내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조퇴만 하지 않았다면 괜찮았을까? 지하철을 탔다면? 마트에 가지 않았다면? 아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치마를 입지 않고 바지를 입었다면? 그랬다면 저들의 눈에 띄지 않았을까?

 왜 나지?

 운명일까? 피할 수 없는? 난 희생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일까?     


 여자는 모른다. 세상은 항상 저들의 것이라는 것을. 저들의 존재 가치는 선량한, 선의의 피해자 몇몇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저들은 국가와 사회를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필요악이라는 것을. 약자인 여자는 집 안에만 있어야 했다. 그들에게 여자는 먹이 아니면 장난감.      


 놈과 난 매인 것이 없는 몸이다.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여자들, 차들, 심지어는 집들까지도 마음만 먹으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고, 차지할 수 있다. 그런데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이 유희를 좀 더 오랫동안 즐기려면. 목표로 삼았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땐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 마티즈를 날려버렸다. 아깝다. 짭새 놈이 탄 차가 방해만 하지 않았다면 다른 차로 갈아탈 수도, 또 다른 재미를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씨발놈들!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놈들이 있다면 그건 경찰 새끼들이다. 옛날에는 경찰보다 간수 새끼들을 더 죽이고 싶었지만 그건 옛말이다. 간수 새끼들은 이제 신경 쓸 거리도 안 된다.      


 피가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생리일까?     


 생리가 끊긴 지 열흘이 넘어가고 있다. 널브러져 있는, 여자의 가방 안엔 임신 시약이 들어 있다. 

 여자는 슬프다. 죽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현재를 같이 하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미래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 초등학생 준희. 고등학생 준희. 대학생 준희. 아가씨 준희. 웨딩드레스를 입은 준희…….

 여자는 궁금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자를 잊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여자는 기도한다. 그들이 자신을 빨리 잊어 주기를. 그들의 아픔을 보상해 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어둠뿐이다. 그나마 있던 초승달도 산 너머로 들어가 버렸다. 남자들은 삽을 들고 있다. 내딛는 걸음마다 허공을 밟는 것 같다.

 “씨발! 드럽게 깜깜하네. 라이트 좀 킬까?”

 “잡히고 싶으면 그렇게 하든지.”

 “…….”

 똥파리 놈이 계속 떠들어대고 있다. 새끼의 주둥이를 삽으로 찍어버리고 싶다. 저놈이 어떻게 출옥을 할 수 있었는지. 하긴 오랫동안 착한 척만 하고 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비를 베푸는 곳이 대한민국이니까. 좋은 나라다. 

 “쪼끔 아까 그년 괜찮던디…….”

 “누구?”

 “갸 말여. 톨게이트 안내양.”

 “흠!”

 “쉰 목소리에 깐깐한 눈깔 하며 쫀득쫀득해 뵈던데…….”

 그래, 괜찮아 보였다. 모처럼 놈과 나의 취향이 맞는다. 

 “어때? 우리 작품 하나 만들어 보는 것이?

 “……?”

 “톨게이트 여직원 실종 사건! 멋지지 않아? 미모의 톨게이트 여직원 실종되다!”

 “흠!”

 좋은 의견을 낸 똥파리의 어깨가 들썩들썩한다. 사투리 하나 안 섞인 자신의 어투마저 자랑스럽다.

 두 남자가 열심히 일한다. 한 남자는 손과 입이 바쁘고, 한 남자는 손과 머리가 바쁘다. 그들은 즐겁다. 다른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의미이다. 덕분에,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그들은 제법 깊은 구덩이를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난 죽은 것일까?     


 두 남자가 벤츠의 트렁크를 연다. 비닐 돗자리에 싸인 물컹한 것이 만져진다. 아까운 몸이다. 일회용으로 끝내기엔.     


 난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두 남자 중 한 남자가 움찔한다. 일회용이 움직인 것 같다. 소름이 돋는다.

 “이, 이년 아직 안 죽었는디?”

 “…….”

 “귀찮은디, 워떻게 혀? 그냥 묻어버려?”

 “…….”

 산과 어둠이 하나가 되어, 산 그림자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두 남자는 여자를 장사 지내고 있다. 그들의 삽이 몸을 두드리며 박아대도 여자는 비닐 돗자리 안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돗자리가 있어서 흐뭇하다. 피가 튀지 않으니까.     


 여자는 돗자리 안에 있어서 아늑하다. 옛날을 추억할 수 있으니까.

 여자의 입이 낮게 노래 부른다. 아무도 여자의 노랫소리를 듣지 못한다.    

 

 여자의 노랫소리는 산이 듣고 비둘기가 듣고.

 산이 듣고 비둘기가 듣고.

 나무와 땅이 듣고, 또 나무와 땅이 듣는다.

 나중에

 여자가 비둘기가 되었을 때,

 나무와 땅이 되었을 때,

 그리고 산이 되었을 때,

 여자는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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