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y rain Jan 12. 2022

중앙고속도로 8.

8. 벤츠

벤츠     


 사람을 죽여 본 일이 있는가? 있다? 없다? 그것은 당신만이 알 것이다.

 그렇다면 파리를 죽여 본 일이 있는가? 많다.

 물론 당연히 많을 것이다.

 잼이 발라져 있는 빵이 있다. 몹시 배고프다. 주스도 한 잔 있다. 먼저 주스로 목을 축인 다음 빵을 먹으려고 한다. 그런데 빵에, 그것도 빵 밖으로 살짝 비어져 나온 향긋한 딸기 잼에 파리가 앉아 있다. 어떻게 하겠는가? 파리가 앉았던 부분은 파리의 몫으로 떼어 주겠는가? 아니면 파리를 때려잡겠는가?

 난 후자를 택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파리도 잘못을 했다는 것이다.

 그다음, 빵을 먹고 있는데 다른 파리가 날아다닌다. 내 빵을 노리며. 내 빵을 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자, 저 파리에게 어떤 마음이 생겨나는가? 내 경우엔 그 파리마저 죽이고 싶었다. 왜냐하면 난 이미 파리를 증오하게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였다. 그리고 빵을 다 먹은 후에도 파리채를 움켜쥐고 파리 사냥을 했다. 고맙게도 그건 나한텐 운동이며 유희 거리가 되어 주었다.

 물론 나와 다른 놈들도 있다. 그놈들은 파리가 귀찮게 하지 않아도, 눈에 띄었다는 이유만으로도 파리를 죽이며 즐긴다. 죽이는 방법도 다양하게. 때론 바늘로 찔러 죽이기도 하고, 태워 죽이기도 하고, 목이나 날개 등을 떼어내 죽이기도 한다.

 그런 놈들과 난 다르다. 난 이유가 있는 인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놈들보다 낫다. 그래서 난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

 난 빵을 위해 여자를 납치했다. 그렇지만 내 옆에 앉아 있는 놈은 놀이를 위해 여자를 납치한다. 이런 놈에겐 미래가 없다. 이놈은 파리 중에서 가장 더러운 똥파리일 뿐이다.      


 여자의 차는 빨간색 프라이드다. 벤츠는 타 본 적도, 근처에 가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여자는 벤츠에 타고 있다.    


 

 세상의 나쁜 놈들은 변명한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누구누구의 탓이라고. 부모 탓, 형제 탓, 환경 탓, 조상 탓, 집터 탓, 무덤 탓.

 난 세상의 나쁜 놈들한테 말한다. 변명만 늘어놓는 놈들은 다 나쁜 놈들이라고.

 사람들은 듣고 싶어 한다. 나쁜 놈들이 왜 그렇게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 그러나 그들은 답을 얻지 못한다. 그들이 아무리 분석하고 연구한다고 해도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 하나. 세상 사람들이 절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나쁜 놈은 나쁜 놈일 뿐이다. 나쁜 짓을 저질러야 즐거우니까. 그뿐이다.

 그렇지만 난 그것도 역시 예외다. 필요에 의해서만 나쁜 짓을 한다. 때론 돈이 필요하고. 때론 여자가 필요하고. 때론 심심하기도 하고. 내 부모는 진짜 나쁜 연놈이었고, 나쁜 연놈 사이에서 그렇게 커버렸고, 그러니까 난 그럴 만하다.     

 


 자기 삶이 남에 의해 갑자기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주 끔찍한 고통을 당하면서 서서히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준희한테 해 줄 말이 많은데…… 남자 친구 얘기도, 생리 얘기도…….     


 여자는 남편과 5년 동안 연애를 했고 결혼을 했다. 결혼 2년 만에 아이를 낳았고, 여자에겐 그 아이를 돌볼 책임과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똥파리와 난 교도소 동기다. 교도소는 살 만한 곳이긴 하지만 다시 가고 싶진 않다. 왜냐하면 그곳엔 즐거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뭐, 세상이 점점 각박해진다면 요양 삼아, 휴식 삼아 한번 들어가 보는 것도 괜찮다. 거기선 먹여 주고 재워 주고, 고쳐 주고, 돌봐 주기까지 하니까. 그래서 두렵지 않다. 사회에서 다시 추방된다고 해도, 날 저버리지 않을 곳이 있으니까. 그들은 언제나 날 받아 준다. 어차피 크게 하면 할수록 대접해 주는 곳이 그곳이니까.      


 이 고통이 빨리 사라졌으면…….     


 아니야! 돌아가고 싶어. 준희한테. 준희한테 가고 싶어!     


 여자는 여기가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도 알지 못한다. 여자가 알 수 있는 것은 깜깜하다는 것과 움직일 수 없다는 것과 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과 고통스럽다는 것뿐.

 이제 여자는 어렴풋이 느낀다.     


 희생… 자?     


 맞다. 여자는 희생자다.     


 우리의 첫 살인은 벤츠를 탄 놈이었다. 그놈은 지금 변두리 하수구에 처박혀 있다. 이유는 없다. 빵에서 나온 기념으로 외제차를 한번 타 보고 싶었을 뿐이다. 범죄를 저질러도 폼 나게 저질러야 한다.

 그리고 트렁크에 죽어 있는 재수 없는 여자, 똥파리 눈에 띄었다는 것부터가 재수 없다는 것이다. 여자는 빌면서 울부짖었다. 아이가 있다고. 벌벌 떨면서 우는 여자의 모습은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폭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람 심리는 다 그렇지 않은가? 무서워하고 애원하면 더 학대하고 싶어지는 거.

 여자가 갖고 있던 케이크는 맛있었다. 그리고…… 여자를 먹을 땐 짜릿했다. 아이를 하나밖에 안 낳은 여자는 처녀나 다름없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의 고통과 울부짖음이 극에 달할수록 우리의 쾌락도 극에 달했다. 똥파리란 놈은 좋아서 오줌까지 질질 싸 댔다.      


 딸이었고, 아내였고, 엄마였다. 이젠 희생자일 뿐이다. 여자는 자신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모른다.

 여자는 너무나 괴롭다. 아이한테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완벽하다. 어둠이 왔다. 똥파리 놈 때문에 오랫동안 자유를 누리지 못할 것 같다.

 대부분의 나쁜 놈들은 생각했다.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자기는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지만 난 안다. 언젠가는 잡힐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똥파리를 죽이고 자수를 하게 될지도. 그렇게 되면 똥파리 놈한테 죄다 뒤집어씌울 수도 있겠지만. 글쎄, 그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사형도 안 당할 텐데.

 암튼, 여자를 처리할 때가 됐다. 톨게이트를 빠져나가야겠다.

 단양이다. 단양으로 돌아가야겠다. 산이 많은 곳이니까.

 55번 요금소를 나와 북 단양 인터체인지에서 좌회전, 각기 삼거리에서 좌회전, 적성 방면으로 좌측 방향…….

 차를 훔칠 때는 역시 좋은 걸 골라야 한다. 내비게이션이 모든 걸 다 알려 주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모든 것은 내비게이션의 탓이다.

 그래, 바로 여기다. 금수산!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금수산. 우리와도 딱 맞는 이름이다. 금수들에게 죽은 여자가 묻히기에 안성맞춤인 아름다운 금수산.









*오늘은 나머지 편들도 이어집니다. 

이전 07화 중앙고속도로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