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드림그릿 (갱년기와 사춘기)
정말 내가 많이 변한 줄 알았다. 나잇살도 먹었고 인생도 평탄한 편은 아니었으니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작은 일에도 분내며 남과 비교하는 더러운 성격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다. 연륜은 인생의 깊이를 더해주지만 '갱년기'는 연륜을 뛰어넘었다. 아니 갈아엎었다. 사실 갱년기의 격한 진통을 앓은 사람은 나보다 남편이 먼저였다. 그 당시 남편은 부하직원의 일로 책임을 안고 회사를 나와야 했고 건강도 나빠진 상태에서 '갱년기'를 겪었다. 옆에서 남편의 혈기와 이상 징후를 지켜보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다 내게도 불편한 '갱년기'가 찾아왔다. 평소 추위를 타는 체질인데 갑자기 몸과 마음에서 밀려오는 열감 때문에 '갱년기' 손님을 쩔쩔매며 대했다. 그동안 남편의 잔소리 폭격을 받아왔는데 이제는 질세라 남편에게 한방의 강펀치를 날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갱년기가 나를 살린 것일까!!
부부간의 갱년기 다툼은 중2인 딸이 사춘기를 겪으면서 서로의 문제는 내려놓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핸드폰과 영상에 빠져 시간을 마냥 버리는 딸, 새벽까지 영상을 보며 낄낄 웃고 있는 딸의 소리에 화가 나서 소리쳤더니 그 새벽에 방바닥을 쿵쾅거리며 반항하는 딸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용서를 빌었고 반성했다. 이 방법으로는 딸을 살릴 수가 없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뱉는 말은 '부모 말이 맞으니 너는 순종해야 해'라며 '너는 틀리고 나는 옳다'며 씩씩거렸다.
"넌 뭐가 되려고 이러니?"
"너 핸드폰만 보다가 대학교 못 가고. 직장도 못 구해.. 공부하기 싫으면 다른 것 준비해.. 학원비가 아깝다.."
사실 어떤 때는 더한 소리도 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먼저 우리 부부의 언어 사용부터 바꿔야만 했다.
'하지 마'라는 부정적인 말을 줄이고, 긍정적인 언어 사용을 늘리는 것이다.
"잠을 푹 자면 피부가 좋아진대.. 피곤할 텐데 따뜻한 물에 발을 씻겨줄게.."
게임 중간이라 멈출 수가 없다고 말하면, "10분 안에 끝내기로 하자. 그다음은 엄마한테 주는 거다 아니면 뺏을 수 있어 네가 제자리에 갖다 놓았으면 좋겠다."
딸과 얘기할 때는 먼저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숨 고르기를 한 뒤에 딸과 대화하면 일단 대화는 성공적으로 끝난다.
얼마 전 서랍정리를 하다가 딸이 쓴 '서약서'를 발견했다. 아마 그날도 새벽까지 핸드폰과 아이패드에 빠져 새벽까지 자지 않은 딸에게 그만하고 자라고 반복하다가 결국 큰소리가 났었다. 딸이 힘들어하면 부부 사이도 갈등이 생긴다. 이럴 때 아빠가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다들 모여, 서로 불만사항 얘기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말해 보자"
그때가 새벽 2시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대인배 아빠가 먼저 딸에게 용서를 빌면서 가족회의는 잘 마무리되었고, 딸은 서약서에 사인을 했다. 내용의 대부분은 '평일에는 게임을 30분만 한다' '밤 12시 전에는 잔다' '약속을 잘 지키면 주말에는 3시간 할 수 있다' 등이다. 물론 이 약속은 얼마간 잘 지켜졌지만 점점 어물쩍 넘어갔고 또다시 가족회의를 거쳐 '서약서'를 수정해야만 했다.
서약서를 다시 읽으면서 이런 방법만이 최선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 간의 공감할 만한 긍정적이고 친근한 약속도 많은 데 말이다. 딸과 아이스크림 먹는 날을 정해 캘린더 일정에 적고 그 날짜가 됐을 때 딸과 함께 먹으며 느끼는 행복감, 딸이 원하는 생일파티를 차려주거나 여행에 대한 약속, 남편과 데이트를 따로 시간을 내어 캘린더에 적어놓고 특별히 시간을 갖는 일은 당연한 일상을 감사함으로 변화시키는 긍정적인 모습일 것이다. 이런 작은 약속을 지키면 지키려고 노력했을 때 찾아오는 '작지만 소박한 행복감'은 서로 간에 신뢰감을 형성하며 '약속하길 잘했다'라는 인식이 생길 것이다.
약속에는 힘이 있다. 일상 속 작은 약속이라도 실제로 지켜냈을 때 가족 간의 신뢰가 모아져서 끈끈한 연결고리를 이루게 되고 약속의 가치에 대한 공감을 일으킨다. 신뢰를 바탕으로 세워진 가족 간의 사랑은 새로운 일상을 열어주며 더 행복해질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제 2023년은 곧 올 것이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약속을 통해 새해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것이다. 딸 덕분에 엄마의 반성문을 써야 했지만, 딸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고, 엄마가 바라던 꿈도 찾아 행복하게 준비하게 되었다. 아침마다 딸을 축복하며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엄마가 잘못했을 때는 바로 용서를 빈다. 엄마의 진심이 서로에게 시너지를 내어 서로를 그대로 인정하며 응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 힘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수 있는 초석이 되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