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났던 것 같은 사람이, 가끔 있다. 오늘 만난 XX도 그랬다. 오래전, 인문학공동체에서 청소년 인문학 학교를 운영한 적이 있었다. 그때 열여덟 살이던 그 아이를 처음 만났다.
당시, 청소년들이 인문학 학교에 오는 계기는 크게 보면 두 부류였다. 아이에게 대안적 삶을 제시하려는 매우 진보적인 부모님 덕분이거나, 인문학마저 공부시키려는 매우 열성적인 학구열을 지닌 부모님 덕분이거나. 그러나 그 아이는 달랐다. 지방 도시에서 다니던 (공교육) 학교를 그만둔 뒤, 자기 스스로 인문학 학교를 찾아내고, 지방에서 홀로 올라와 우리와 함께 공부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인문학 같은 것에는 무관심하던 부모님을 자기에게 감명을 준 인문학 공부에 입문시켰던 똘똘하고 씩씩한 녀석이었다.
당시, 그곳에서 인문학 공부를 하던 청소년들의 행보도 역시 크게 두 부류였다. 한 두해 함께 공부하고 활동하다가 대학에 진학하거나 유학을 떠나 공동체에 돌아오지 않는다. 아니면 매우 드물게 공동체에 아예 뿌리를 내려, 스승님들과 함께 인문학 공부로 먹고 살기를 도모하는 경우다.
오늘 만난 아이는, 인문학 공동체에서 책으로 하는 공부도 열심이었지만 활동 공부도 열심이었다. 당시 공동체 안에서 베이커리 활동을 주도하던 선생님과 함께 매일매일 신메뉴에 개발에 열을 올리기도 했고, 운동 모임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해 굳센 체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렇게 3~4년을 함께 지내던 어느 날, 그 아이는 진학을 하거나 인문학 전문가의 길이 아닌, 결혼을 선택했다. 우리는 모두 놀랐지만, 이제 청소년이 아닌 성인이 된 그 애의 선택이었으므로, 축복해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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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난 그 아이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그러니 이젠 정말 '아이'가 아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열여덟 살이던 그 애의 모습이 각인되어 그냥 열 여덟로 보이는 것이다!) 어떻게 사느냐는 말에, 행복주택이니 적금이니 하는 말이 척척 나오는 걸 보니 나보다 훨씬 다부지게 잘 사는 듯했다. 얼마 전에는 엄마와 인도 여행을 다녀왔다며, 내게 재미난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숙소 베란다에 둔 바나나 냄새를 맡고 온 (길) 원숭이가, 바나나를 더 달라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베란다에 널어 둔 속옷 빨래만 (고의적으로!) 집어갔데서 한참 웃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이제 아기가 생기면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아이를 낳아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키우는 데 힘들기만 하고 돈도 많이 들 것 같고 뭔가 손해 보는 장사(?) 비슷한 것 같은 생각이었다고. 그런데 왜 생각이 바뀌었을까 궁금해하는 나에게, 그 애가 또 말했다.
"예전에는 저의 밝고 좋은 면만 좋아해서 안 좋은 면은 안 보려고 했는데요, 이제 안 좋은 면도 그냥 다 나구나 싶더라고요. 그러니까 아기도 그런 마음으로 키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네 아기는 정말 좋겠다!"
내가 아이들을 다 키우고서야 이제야 아는 것을, 똘똘하고 씩씩한 그 애는 벌써 알고 있었다. 그 애가 아기를 안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 '아이'의 아기가 아장아장 걸을 때쯤의 언젠가에도, 마치 어제 만난 사람을 또 만난 것처럼, 다시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