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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원인과 직장 내 관계의 역설

2-8. 감정의 소진과 관계의 정치학

by 일이사구

번아웃은 과로가 아니라, 관계에서 온다.


나 역시 사람 때문에 지쳤다.


선천적으로 몸도 약했고,

그리고 한때는 이것도 못 견디는 실패자라고 자책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잘 지내는 것 같았는데?”

“문제없어 보였는데?”


그게 번아웃의 무서운 점이다.


겉으론 멀쩡해 보인다.


그 사람은 끝까지 강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조용히 무너진다.


소진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그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다.


한두 번 넘긴 회식,

꺼내지 못한 의견,

억지로 웃으며 넘긴 감정들.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하지.”

“매출과 이익이 더 나와야 하는데…”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지겠지.”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야.”


그렇게 쌓인 감정은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폭발하거나,

완전히 꺼져버린다.


사람들은 번아웃을 피곤함이나 과로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번아웃은 감정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다.


번아웃은 무기력한 사람에게만 오는 게 아니다.

책임감이 강하고, 기대를 놓지 않았던 사람에게 더 자주 온다.


그들은 늘 괜찮은 척했고,

그래서 무너질 때조차도 조용했다.


"잘하려는 마음"이 더는 생기지 않고,

"회복의 의지"조차 사라진다.


문제는,

이런 상태가 일보다 사람 때문에 더 많이 온다는 것이다.


나는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힘들어서 지쳤다.


갈등을 피하느라 말을 아꼈고,

감정적으로 보일까 봐 표정을 감췄고,

혼자 해결하려 애썼다.


그게 어른스러운 거라 믿었다.


하지만 결국,

감정은 말하지 않으면 병이 되고, 말하면 정치가 된다.


조직 안에는

말해도 문제고, 말 안 해도 문제인 순간들이 있다.

이견을 내면 “공격적”이라는 말을 듣고,

침묵하면 “의지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솔직하면 “감정적”이라 하고,

무던하면 “존재감이 없다”라고 한다.

그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관계는 회피도, 전면전도 답이 아닌 상태로 떠돈다.


그래서 회사 안의 감정은 자주 정치가 된다.


누구와 밥을 먹고,

어디 회식에 참석하며,

어떤 말투로 누구를 대하느냐가

일보다 중요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정치는 싸움이 아니라

감정과 관계의 배분 구조다.


피하면 고립되고,

끌어안으면 소진된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의 방향을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


리더에게도 감정 설계는 필요하다

감정 설계는 구성원에게만 필요한 기술이 아니다.

리더 역시 감정을 설계하지 않으면, 팀 전체가 지쳐간다.


말이 없던 상사,

표정이 굳은 팀장,

회의에서의 짧은 반응 하나가

팀의 공기를 바꾼다.


리더는 자신이 감정을 숨긴다고 생각하지만,

그 감정은 아래로 스며든다.


설명 없는 감정은 오해를 낳고,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방치로 읽힌다.


조용한 리더는 멋있지 않다.

조용한 리더는 위험하다.


감정을 조율하는 기술 없이 무심함으로 버티는 리더는,

결국 팀 전체를 소진시킨다.


결국, 감정 설계는

개인의 생존 전략이자,

팀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리더십 기술이다.


정치란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은 이거다.


오늘 누구의 말에 신경 쓰셨나요?

어떤 감정을 삼키며 퇴근하셨나요?

내일도, 그 감정에 지치게 될까요?


나는 그 감정들을 너무 오래 쌓아뒀다.

화도, 실망도, 억울함도

표현하지 않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좋은 직장인의 미덕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믿음이

나를 지치게 했다는 걸,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지금의 나는 안다.


정치를 피할 수 없다면,

감정의 방향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


누구와 가까이하고,

어떤 거리에서 소통하고,

무엇은 단호히 선을 긋는지.


그건 관계의 기술이 아니라

소진을 막는 감정의 설계 방식이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는 게

가장 편한 길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가장 안전한 길이라 믿게 된다.


하지만 그 길 끝에는

무너지는 자신이 기다리고 있다.


조용히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감정이 말라버린 것이다.


정치는 싸움이 아니다.


정치는 방향이다.


피로한 관계에

더는 감정을 쏟지 않기로,

내 일의 의미를 외부에 덜 기대하기로,

그게 나만의 정치다.


그리고 그것이,

내 감정을 지키는 방식이다.


< 어느날 갑자기 머리만은 안되.. - AI 생성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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