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미국병원 15

간호사?

by 새 날

내가 간호학과를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가까운 분들로부터 엄청난 압박과 설득(?)을 견뎌야 했다. 우리 엄마는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은 약사라며 내가 약학대학에 가기를 원했고 엄마의 도장을 받아야 입시지원서를 낼 수 있었던 나는 밤새 엄마와 싸워야 했다. 얼마 전에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내가 대학 입학원서 낼 때 밤새 싸우다가 결국 엄마가 도장 찍어 줬잖아. 그때 왜 맘을 바꿨어?"

"네가 간호학과 가면 꼭 의사랑 결혼하겠다고 해서."

"우하하하하...... 약속을 못 지켰네....ㅎㅎㅎㅎㅎ "


밤을 꼬박 새우고, 엄마도 울고 나도 울며 마지막엔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도장을 받았던지라 어찌 되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었다. 엄마의 눈 높이에 맞춘 거짓말로 간신히 도장을 받은 다음, 학교에서는 교장의 도장을 받아야 했는데 이번엔 담임선생님이 다시 생각하라고 몇 시간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네 실력이면 가정대학도 충분히 붙을 수 있어. 근데 왜 간호학과를 가니, 다시 생각해 보자. "

그분들이 그저 내 뜻을 원치 않고 나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분들은 간호사의 길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내가 수월한 인생을 살기를 원하셨던 것 뿐이었다고 이해한다. 그만큼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았다.

내가 간호학과에 합격했다고 우리 할머니께서 다른 친척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돌아온 반응은 이랬다.

"갸는 어릴 때부터 그러케 공부 잘한다고 해 쌓더니 왜 간호학과를 갔디야?"


내가 대학 면접시험장에서 들었던 질문 하나,

"왜 간호학과에 지원했니?"

"네? 간호원이 되려고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교수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오늘 면접 본 전체 학생 중 간호원이 되겠다는 학생은 너 하나야."

"네? 그럼 다들 왜 간호학과에 지원하는데요?"

"다들 교수가 되겠다네."

"......"


신규 때 이런 일도 있었다. 야간근무 중이었고, 어느 거동 힘든 할머니에게 변기를 대 드리고 치우는 중이었는데 미안했던 할머니는 이렇게 미안함을 표현하셨다.

"아이고, 쯧쯧, 나이도 어린것이 몇 푼이나 벌겠다고 이 고생을 하나 쯧쯧.."

"할머니, 저 어리지 않아요, 대학 졸업한 나인데요."

"뭐여? 대학을 졸업했어? 근디 왜 간호원을 하고 있디야?"


나 자신은 그때 왜 그리 완강하게 간호사가 되겠다고 했을까? 아마도 사춘기의, 독립을 열망하게 만드는 호르몬 때문이 아니었을까? 고등학교 시절 나는 헤르만 헤세와 전혜린에게 푹 빠져 있었고, 나도 때가 되면 꼭 독일에 가겠다고 생각했다. 독일이 아니어도 좋았다. 내 인생을 내가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자유가 나의 최종 목적이었고,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곳에 가서 혼자 살기를 원했고 그러려면 세계 어디에 가도 취업할 수 있어야 해서 간호사가 되겠다고 했던 거였다. 한편 그때 내가 다니던 교회에 간호학과에 다니던 멋진 선배가 있었고 나도 그 언니처럼 멋있고 싶었다. 대학원이나 교수는 단 한 번도 내 머릿속을 스쳐가지 않았다. 어느 눈먼 의사와의 결혼 역시....ㅎㅎ

부모님의 경제적 여건도 어려워 비싼 대학을 가서 등록금 때문에 빚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간호학과는 국립대 중에서도 가장 등록금이 싼 대학이었다.

전혜린


대학에 다닐 때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그때는 1980년 전후였고 나는 강의실이나 도서실보다 거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간호학과의 분위기도 싫었다. 매주 제출해야 했던 실습보고서는 이게 간호학과 보고서야, 패션 보고서야 싶은, 현란한 꽃 리본들이 올려져 있는 동급생들의 작품 중에 스테이플로 찍은 내 보고서는 성의가 없어도 너무 없었고, 수많은 뼈 이름, 혈관 이름, 근육 이름들을 외워야 하는 해부학은 교수님의 자비에 기대 간신히 낙제를 면했다. 진짜 공부는 간호사로 일하기 시작한 후 시작되었다. 취업한 첫 해에 생리학 책과 해부학 책을 다시 읽었고, 이 때는 어려움 없이 기억할 수 있었다. 일하면서 만나는 환자들의 증상을 이해해야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알아야 했고 환자와 의사를 도울 수 있어야 했다. 비로소 간호학 공부가 재미있었고, 새로운 환자를 만날 때마다 배움의 기회를 얻었으며, 나는 열심히 했고 잘했다. 내가 일 했던 한국과 미국의 병원들에서 나는 자랑할 만한 여러 변화들을 만들었고 내가 시작했던 일들이 이제는 당연한 과정이 되어가고 있다. 아무도 그 변화들이 내가 만든 것이라는 걸 알아 주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변화와 진보이지, 누가 했느냐가 아니다.


한 번은 미국에서 밤근무를 할 때 새벽에 새로 입원한 환자의 팔에 혈관 주사를 삽입하는 중이었는데 그녀가 물었다.

"간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What do you think of Nursing?)

삼십 대의 백인 여자로 상당히 뚱뚱해서 혈관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나와 소위 스몰토크를 하고 싶었던 듯했다. 나는 속으로 혈관주사도 하지 않고 입원시킨 응급실 간호사를 욕하며 혈관 찾기에 집중하고 있었고 새벽시간은 밤근무 중 가장 피곤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나는 사회성이 심하게 결여된 사람이라 원래 직설 화법 밖엔 사용할 줄 모른다.

" 그냥 일이죠."(It's just a job.)

" 뭐야?"(What?)

그 환자는 즉시 팔을 빼냈다. 내게 주사 맞지 않겠다고 했다. 책임간호사를 불러 달라고 하며 이렇게 간호에 대한 헌신과 열망이 없는 간호사에게 간호받고 싶지 않다고 간호사를 바꿔 달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그녀의 팔은 몹시 두꺼운 지방층에 싸여 있어서 혈관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 환자는 남은 두어 시간 동안 책임간호사가 맡았다. 책임간호사에게 미안할 뿐, 나는 이런 일로 상처받지 않는다. 왜 담당을 바꿨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환자의 의무기록에 이 모든 대화를 자세히 기록했다.


얼마 전에 한 후배가 내게 말했다. 자기가 신입생 때 간호학과에 머물러야 하나 아님 과를 바꿔야 하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내가 그녀에게 한 말 덕분에 자기는 고민에서 벗어나 간호학과에 머물렀다고 한다.

'중요한 건 간호사가 되느냐, 아니면 다른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그건 그저 삶의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니, 내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먼저 정해야 한다.'

하하, 나도 그런 말을 할 줄 알던 시절이 있었나 보다. 어쨌거나 그 후배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천만다행이고. 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Nursing?, It's just a JOB and I had been very good at it!!!!!

Now, it is a time to enjoy my life!!!


(실은 한국과 미국에서의 간호사의 경제적, 사회적 위치의 차이, 대중이 인식의 차이에 대해 써 볼까 시작했는데 역량 부족으로 인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흘러 유감입니다. 다음 기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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