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개국! 야생 늑대와 길들여 진 개의 차이

자유의 길! 고독의 길!

by 윤옥환

세계적으로 개체수가 줄어드는 야생 늑대.

그들은 왜 전통적 삶을 포기하지 않고 지키려고 어렵게 살아가는걸까?


늑대들은 먹이를 찾아 어둡고 추운 산길을 헤매며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떨어져 살아간다.


한국에서 사는 동안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연계의 야생생활이다.


야생의 거친 들판에서 처음 늑대를 만난 곳은 파키스탄을 지날 때였다.

파키스탄의 정겨운 도시 '퀘타'에서 이란을 향하던 도중에서였다.


퀘타는 파키스탄 중부에 위치한 비교적 커다란 도시였다.

사람들은 카라치처럼 과격하지 않았다.

카라치는 정말 살벌한 곳이었다.

카라치는 여차하면 테러가 발생한다.


시설물이나 사람에대한 공격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곳이다.

퀘타는 정반대로 아주 평온하였다.

퀘타는 이란의 국경을 가려면 거쳐야 하는 도시였다.


각종 과일들이 풍부하였다.

진한 갈색의 얼굴을 한 사람들은 대개 표정이 무겁고 어두웠다.

전형적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의 모습이다.


파키스탄 역시 자본주의와 물질주의에 홈빡젖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온통 돈을 찾아 눈들을 크게 뜨고 분주한 생활 속에 살고 있었다.


재래시장과 각종 상점들은 각종 거래를 하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이 그 사람 같다.


하얀색 아니면 검은색 계열의 전통 이슬람식 복장을 하고 다닌다.

남녀 간의 엄격한 전통적 이슬람 율법 때문이겠다.


행여 소매 짧은 옷을 입은 외국 여자라도 나타나면 사내들의 시선들이 바빠지는 것을 알게 된다.

서양 여자가 나타나면 분위기가 더욱 산만해질 것이다.


파키스탄 사회에서는 평생 여인의 손목 위부분이나 얼굴 아래 노출 부분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율법에 따라 살아가고는 있지만 지식이나 인격이 충분치 못한 일반 민중들의 삶이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장면 속을 헤치며 지나갔다.


퀘타와 이란의 국경 사이는 대부분이 황량하고 거친 사막이다.

중국의 신장에서 중국의 동부나 동북부의 천산산맥을 갈 때의 광경과 유사하다.


사막의 모래바람이 마구 몰아치는 밤은 너무 추웠다.

상점이나 마을도 나타나지 않는 곳이다.

양을 치며 사막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이 유일한 위로였다.


다행히 모닥불을 피우고 사막의 벌판에서 잠을 자는 사람 틈에 자리가 허용되었다.

양젖과 양 치즈도 대접받았다.


이른 아침이었다.

양들을 지키는 젊은 파키스탄 사람이 손짓을 했다.

그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사막 멀리에서 개처럼 생긴 짐승이 두어 마리 걸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개가 지나가는 줄로 알았다.

그것은 개가 아니고 늑대란 것이다.


파키스탄 젊은이는 소리를 지르며 돌을 던지기도 했다.

늑대의 공격으로부터 양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두 번째로 늑대를 보게 된 곳은 이란에서였다.


이란의 테헤란을 지나 터키의 국경을 찾아가는 도로였다.

이란 역시 벌판과 사막이 많았다.

때는 2003년 겨울이었다.


이란의 테헤란에서는 도둑들을 만났지만 교외나 시골은 달랐다.

어느 나라든 시골 사람들은 정직하고 인색하지 않았다.


이란의 동북부 지역 아르메니아 가까운 지역은 땅들이 거칠었다.

터키로 가는 길 중간중간은 사막과 높은 산들이 좌우로 들어서있었다.


밤낮으로 눈보라를 쉽게 만났다.


정처 없이 가는 길, 돌아갈 곳 없는 길

알아보는 사람 한 명 없는 길, 가게나 상점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길을 달린다.


양을 치는 목동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추운 어두운 밤을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비록 해가 뜨면 헤어질 사람 사이지만 소중한 인연이다.

터키 국경 가까운 곳을 지나면서 더욱 자주 늑대를 보았다.


사막을 어슬렁거리며 걷는 늑대는 대부분이 먹잇감이 부족한 모습이다.


머리는 축 아래로 떨어트리고 꼬리도 아래로 쳐진 채 걸어간다.

좀처럼 일반 개와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황금색 털을 뒤집어쓴 여우는 쉽게 구별이 되었다

이란에서 만난 여우들은 좀처럼 잊을 수 없는 모습이다.

일단 색깔이 확연하고 몸집이 개나 늑대보다 왜소하다.


여우는 동작이 총총하고 훨씬 기민한 동작을 보여준다.

주위의 환경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아프리카를 지나면서 더욱 많은 야생동물들을 만났다.


그런데 늑대나 하이에나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는 기회가 더욱 많았다.

하이에나도 늑대와 유사한 행동들을 보였다.

늑대와 달리 하이에나는 때를 지어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왜 늑대나 하이에나는 인간들을 멀리하는가?

왜 굶주려가면서 인간사회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가?


개나 고양이는 인간들을 거부하지 않고 순응해서 귀염도 받고 음식도 얻어먹지 않는가?


개와 늑대의 차이를 설명해본다.

늑대는 평상시에 절대 짖는 일이 없다.

늑대는 싸울 때를 제외하고 짖을 이유가 없다.

짖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의지할 곳이 있다는 것이다.

주위에있는 다른 개들의 동조를 구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개들 역시 군중심리가 강하다.

짖으면서 서로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주인인 사람의 주의를 끌려는 본능이다.

주인이 없는 떠돌이 개는 짖는 행동이 없다.

주인이 없는 개는 풀이 죽는 것이다.


주인이 있는 개는 의기가 양양하게 짖는다.

자신을 지켜주고 지시를 하는 주인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 속박되어있다는 것이다.


충성심을 표하는 방법이다.

충성심을 잘 표현하면 사랑도 받고 먹을 것을 받는다.

주거가 안정된다.

그러나 공짜는 없다.


음식을 선택할 권리는 없다.

주인이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요즈음 인공사료를 먹는다.

백인들이 개발한 인공사료다.

인공사료는 더욱 집요하게 맹종적인 애완견으로 만든다.


굴종과 속박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주체적인 자신의 자유가 없다.


늑대는 전기불을 피하며 산다.

늑대는 전기불을 위험하게 여긴다.

모든 불종류를 두려워하지만 특히 전기불을 멀리한다.


안락해지고 안전감을 가지는 것을 본능적으로 회피하며 산다.

안락해지면 더욱 안락을 추구하게 된다.

게을러지는 것은 물론이고 야성을 잃을 것이다.


전기불들은 자연적 불과 다르다.

인공적인 불이다.

자연적인 불은 영적인 기를 포함하고 있다.


인공적인 불은 자연적인 불이 가지고 있는 우주의 에너지가 빠진 것이다.

인공사료와 같은 것이다.


늑대를 비롯하여 많은 야생동물들은 전기불을 경계하고 멀리하며 살기를 원한다.


편리한 것은 반드시 잃는 것도 있다.

일반인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깊은 어둠에서 자연의 불과 인공적 불의 효능 차이를 보아야 한다.

자연이나 사람이나 자연적 어둠과 자연적 불이 주는 깊은 의미를 알아야 한다.

'Into the light'


늑대는 인간을 믿지 않으며 전통적 습속을 지키며 산다.

늑대는 인간을 절대 믿지 않는다.

늑대의 교육은 전통 유대인식의 교육이다.

늑대의 교육은 자이나교식의 교육이다.

늑대의 교육은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다.

먹이를 빼앗기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지만 정신을 빼앗기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늑대는 사람이 주는 먹이를 믿지 않는다.

사람의 음식이나 가축을 훔쳐 먹는 한이 있어도 구걸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으로 음식을 해결한다.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여 사냥을 하거나 훔쳐 먹는다.

자신의 스킬을 열심히 닦는 것이다.

사람이 주는 음식을 쉽게 먹으면 안 된다는 대대로의 교육을 받는다.


사람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면 사람한테 고맙다는 정서가 생길 것이 뻔하다.

고마운 마음이 생기면 믿기가 쉬어진다.

배고픔을 모면하기 위하여 더욱 자주 사람께 갈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편한 유혹에 빨려들어가는 것이다.

사람이 주는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사람에게 의지하게 된다.

결국은 인간에게 꼬리도 치게 될 것이다.


자신들의 전통적 야성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자유를 잃게 된다.

산과 들판을 마음대로 다닐 수 없게 된다.

사회를 이루면서 함께 어울릴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연인을 만나 사랑을 나눌자유도 박탈된다.


산과 들판에서 신선한 공기와 온갖 새들의 소리도 자유롭게 즐기지 못한다.


늑대는 고독을 원한다.

어두운 밤을 좋아한다.

어두운 밤하늘의 달과 별을 바라보기 좋아한다.


보름달이 뜨기를 기다린다.

보름달이 뜬 깊은 밤 울부짖는 것은 늑대들의 의식이다.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가족들이 함께함을 달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애완견이나 개는 고독을 참지 못한다.

고독을 이겨내지 못한다.

항상 주인이나 사람과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


함께 놀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함께 놀아줄 것을 요구하며 온갖 애교를 부린다.

개는 그들의 야성을 잃고 살아간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얻어먹는 것이 유전적으로 박혀있다.


대부분 인간들은 자연계에 대한 자신들의 만행을 자각하지 못한 지 이미 오래다.

애완견과 고양이를 위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연의 질서를 간섭하는 일이다.

자연계를 깨트리는 일이다.

인간들의 이기심의 발로이다.


자연계의 자유로운 먹이사슬을 분해하는 것이다.

자연계의 자유로운 사회생활과 짝짓기를 규제하는 것이다.


애완견이나 개는 이미 오래전에 유전자가 바뀌었다.

자신들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망각한 것이다.

갇힌 채로 인간의 노예로 살다가 죽는 것이다.


늑대는 가족을 위해 부양의 책임을 평생 동안 수행한다.

늑대는 자라면서 가족을 부양하는 법을 습득한다.

자라서 성인이 되면 자신의 배우자를 고르고 찾는다.


수컷의 늑대는 배우자 늑대와 자식을 낳고 평생을 동거 동락한다.

일편단심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지킨다.

수컷 늑대는 사냥을 하거나 죽은 먹잇감을 발견하면

먼저 배우자와 새끼들을 배려한다.


마치 수탉이 먹을 것을 발견하면 "꽥꽥" 소리를 지르며 암탉과 병아리들을 부르는 것과 같다.


늑대는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사냥과 채집을 한다.

반면에 애완견이나 개는 가족을 이룰 본능도 제압당하고 산다.

집주인인 인간의 의도와 취향에 의해 결정된다.

털 깎기와 샴푸도 인간의 기분에 따라 이루어진다.

짝짓기도 인간이 결정하고 실행한다.


심지어 정관수술부터 피임 행위까지 이루어진다.

관련 산업의 상술과 인간의 무지가 합작해내는 일종의

폭력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들의 폭력이다.


신발도 신기고 옷도 입힌다.

이런 웃지 못할 인간계의 소꿉장난의 정도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시간의 소중함을 모른 채 살아간다면

그 인생은 실패한 삶이다.

시간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급속도로 정신계가 공허화되고 있다.

모두가 백인들의 문화가 낳은 비극인 것이다.

백인들의 표준이 급속도로 전 세계의 표준이 되고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일반인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은 너무도 많이 있다.


늑대는 인간들과 동화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전통정신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늑대 고유의 본성은 그들의 혼이다.

늑대들은 고유의 혼을 지키기 위해 야생에서 나오지 않는다.


남미에 있는 산속에는 늑대같이 혼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원주민들을 볼 수있다.

그들은 자연을 신으로 여긴다.


서양종교도 거부한다.

전통적인 춤과 노래를 즐기고 화목한 생활을 한다.

청소년문제나 범죄도 없다.


늑대의 투철한 정신력으로 과학문명을 결합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대통령자격

#정신

#영혼

#간직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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