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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판 Apr 18. 2023

봄바람의 설렘과 함께 찾아온 행운

어느 날 우연히 얻은 네잎클로버 이야기




  산책을 나갔다.

  서늘하게 부는 봄바람에 몸이 움츠러드는 날이었다. 점퍼의 헐렁한 모자를 뒤집어쓰고 옷깃을 여미고 걸었다. 한적한 공원에서 여유를 부리기에는 찌뿌둥한 내 몸이 서러웠지만, 바람의 찬기운을 이겨보려고 보폭을 넓혀 힘 있게 걸어보았다. 공원의 조경은 싱그러움으로 내 시선을 붙잡았다. 화살나무의 새순들, 조팝나무의 만나 같은 흰 꽃들이 사랑스러웠고, 해당화의 분홍꽃들이 고왔다.

  그러다 문득, 구부정한 자세로 있는 한 여성에게 눈길이 갔다. 그녀는 잔디들 사이를 비집고 자란 무성한  토끼풀들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아마도 네잎클로버를 찾고 있는 것이리라. 토끼풀 더미만 보면 잠깐씩 들여다보곤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난 여린 미소를 띠고 그녀의 옆을 지나쳐


  잔디밭에는 잔디가 아직 새싹을 키워 올리지 못하고 잡풀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이름 모를 어느 잡풀은 토끼풀보다 더 강력하게 잔디밭을 침범하고 있었다. 아마 곧 뽑히고 말 것인데 신나게 자라는 모습이 신기해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이때 들려오는 한 목소리. "네잎클로버 찾기가 쉽지 않죠?"

   방금 보았던 그녀였다. 내 또래이거나 약간은 더 어려 보이는 그녀는 낯선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난 미소와 얼버무림으로 응답했는데, 그녀는 손에 들고 있는 여러 개의 네잎클로버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찾아도 없더니, 한 군데에서 뭉텅이로 발견했다고 하면서.  

  그러더니,

 "한 개 드릴까요? 예쁜 걸로 드려야지."

   라고 말하며 사양할 겨를도 없이 선뜻 네잎클로버 두 장을 나에게 건넸다. 조금 큰 것과 조금 작은 것.

  나는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그것을 소중히 받아 들며, 약간의 당황한 표정 더하기 기쁜 마음을 담아 고맙다고 말했다. 내가 네잎클로버를 찾고 있는 듯하여 주는 것이라 했다. 우리는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고, 곧 각자의 갈길로 가며 작별의 고갯짓을 나누었다. 그녀는 공원 건너 옆 단지로 통하는 횡단보도로, 나는 공원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연하디 연한 네잎클로버 두 장을 받고 보니 행여 떨어뜨릴까 조심스러웠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시들어버릴 텐데.'

내 왼손 엄지와 검지는 그것을 떨어뜨리지 않아야 하는 임무를 띠고 힘조절을 하고 있었다. 마치 떨어뜨리면 행운을 놓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집으로 가는 길에 돌 위에 얹어놓고 사진 한 장 찍었다. 그 와중에도 바람에 날아가 버릴까 봐 조심스러웠다. 덕분에 산책시간이 짧아져 버렸지만 기분은 좋았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자랑을 하고 곧바로 아들 방으로 갔다. 네잎클로버가 행운을 가져다준다면 아들에게 주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 아들에게 네잎클로버가 생겼다고 보여주며 큰 것 하나를 건네주었다. 큰 행운은 아들에게, 작은 행운은 나에게.

"너에게 행운이 임하기를!"

  핑계 삼아 아들 어깨를 살짝 안으며 축복해 주었다. 컴퓨터를 하고 있던 아들은 네잎클로버가 싫지 않은 듯 소중히 받아 들었다. 왼손의 엄지와 검지로. 덩치 큰 아들의 커다란 손가락 사이에서 네잎클로버는 어쩐지 어색해 보였다.  난 아들이 잠깐 보고 내려놓을까 싶어 다시 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계속 갖고 싶은 눈치였다.

"이거 어떡해?"

  하기에

  "책에 끼워놓는 거야. 무슨 책이 좋을까?"

  아들의 책장을 뒤져보는데, 아들 하는 말.

 "내가 꽂을 테니까 일단 나가."  

  요즘은 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빨리 쫓아낼 생각부터 하는 아들이었다. 난 알았다고 하고 작은 네잎클로버만 들고 아들 방을 나왔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과연 아들은 어느 책에 네잎클로버를 꽂아놓았을까. 내 방으로 온 나는 책장을 훑어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한 권 꺼냈다. 그 책에 작은 네잎클로버를 조심스럽게 펴서 끼워 넣고 책을 덮었다. 30여 년 전에 앨범에 끼워놓았던 네잎클로버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게 생각났다. 오늘 꽂아놓은 것은 언제 다시 발견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미소 한 조각을 선물할 것이다. 봄바람의 설렘이 실린 추억과 함께.


 흔히 행복을 상징하는 세잎클로버와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

어쩌면 행복은 세잎클로버처럼 도처에 널려 있어 관심을 받지 않지만 늘 그곳에 있는 것이고

행운은 행복과 동행하여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세잎클로버 사이에 숨어있다가 발견되는 네잎클로버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얻게 된 두 장의 네잎클로버가 나에게 작은 기쁨과 설렘을 선물해 주었다. 이것이 행운이라면 행운이리라. 행운을 주신 그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작고 여린 잎이 행운의 상징이라니. 그런데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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