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할 때 또는 남편이랑 다툴 때나 생각해 봤던 질문이다. 비난하는 뉘앙스가 아주 없다고는 못하겠으나, 나름대로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 내지는 고찰이 주축을 이뤘음을 자신 있는 어조로 고백할 수 있다. 물론 약간의 자조가 섞여있긴 하다.
이해하려 애쓰지 마라, 미래를 상상하지 마라, 모든 게 어떻게 언제 끝나게 될지 생각하며 괴로워하지 마라.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지도, 스스로 자문하지도 말라
이 책은 파시즘에 대한 강고한 저항운동을 전개했던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파시스트 민병대에 붙잡혀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노역수용소에 10개월간 감금당한 프리모 레비의 체험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대로 나치스의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없는 일'을 중심으로 그들의 악랄한 행태를 폭로하고 고발하는데 포커스가 있지 않다.
극한의 폭력 앞에 인간 본성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 성질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희생자의 한탄 섞인 어조나 복수심을 품은 날 선 언어가 아닌 침착하고 절제된 증언의 언어들이 사용되었다.
바로 며칠 전만 해도 따뜻한 집 식탁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저녁 식사를 하고, 하루의 피로를 풀어줄 따뜻한 샤워와 깨끗한 속옷을 향유하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들 앞에 닥친 현실은 소리 때문에 도망은 꿈도 못 꿀 나막신과 누더기 줄무늬 옷, 진창 냄새가 나는 미지근 한 물이 있을 뿐이다.
이마저도 건강함을 인정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자, 노인, 어린아이 등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90프로 이상의 유대인들이 가스실의 연기로 사라져 버렸다.
174517.
수인번호.
이들은 갯수로 계수되었다.
174517들은 발가벗겨졌고, 내몰렸으며, 추위와 굶주림, 가혹한 노동으로 인간 존엄성이 빠른 속도로 마모되어져 갔다.
이들은 '고통과 욕구만 남은, 존엄성이나 판단력을 잃어버린 텅 빈 인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반합부터 신발까지 모든 물건을 상의에 집어넣어 보따리를 만들어 베개로 베고 자는 기술을 익혀 도둑질당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죽음은 신발에서 시작되므로 저녁에 있을 '신발 바꿔 신는 의식'에 참가해서 잽싸게 자기 발에 맞는 신발을 골라야 한다.
수용소는 이들을 동물로 격하시키는 거대한 장치이기 때문에 동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생존을 위해서 최소한 문명의 골격, 골조, 틀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죽을지언정 마지막 남은 한 가지 능력,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그러니까 비누가 없어도 얼굴을 씻어야 한다. 나막신을 질질 끌지 말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걸어야 한다.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노동을 하다가 부상을 당한 프리모 레비는 의무실인 '카베'에 들어가 20일을 보내고 나와 새 옷, 새 신발(기존에 입던 것이 아닌)을 신고 새 막사로 들어가는데, 낯선 환경과 냉담한 새 동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부담을 느끼며 이렇게 회고한다.
'명백히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숨을 구덩이를 파고, 껍질을 만들어내고, 주변에 미약하게나마 방어의 울타리를 쳐놓는 인간의 능력은 놀랍기만 하다'
충분히 절망적인 낯선 환경 속에서도 적응을 하고 울타리를 치는 인간의 능력은 레비의 말처럼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카베에서 발진티푸스와 성홍열을 앓고 있던 쇼마지가 스스로 더 이상 가망이 없음을 느끼고는 나머지 동료들에게 자기 매트리스 밑에 빵이 하나 있음을 알리며 나눠 먹으라고 한다. 프리모 레비는 고백한다. 그 빵 4분의 1쪽을 뺏기 위해 동료가 죽기를 기다렸다고. 그리고 덧붙인다. 물론 죽기를 기다렸던 그들의 잘못은 아닐지라도, 미개한 피그미, 가장 잔인한 사디스트보다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전형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이었노라고.
수용소는 생존을 위한 투쟁 상태에 놓인 인간이라는 동물의 행동에서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이 무언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실험장이었다.
이 실험의 결론은 궁핍과 지속적인 육체적 고통 앞에서 수많은 사회적 습관과 본능이 침묵에 빠진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인간들을 뚜렷하게 구별 짓는 두 개의 범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구조된 사람과 가라앉는 사람이라는 범주다. 이곳에서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한시도 쉴 수가 없다. 모두가 잔인할 정도로 혼자이기 때문이다. 약자에 관심을 갖는, 더군다나 손 내밀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밀어닥치는 포로들로 인해 인구조절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나치스는 가스실로 보내질 사람을 선발하는 작업을 거친다.
선발된 사람에게는 두 배의 죽이 배급되는데, 보통의 양을 배급받은 치글러가, 쫓아내는 블록앨테스터 앞에서 고집을 부리며 불쌍하게 서 있다. 이 모습은 2024년 봄날, 도서관에서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는 한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치글러의 카드(선발자)를 확인한 블록앨테스터가 두 배의 죽을 배급 하자 치글러는 조용히 침대로 가 죽을 먹는다.
각자 조심스레 반합 바닥을 긁고 있을 때, 프리모 레비는 듣는다. 쿤 노인의 감사 기도를. 쿤 노인은 자신이 선발되지 않았음을, 갓 스무 살 먹은 선발자 옆에서 큰 소리로 감사한다.
'이것이 인간인가'
일말의 인간성마저도 앗아가 버린 수용소의 끝날 것 같지 않은 밤은 러시아군이 진격하면서 끝이 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