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교직 2년 차(2002년 임용되었으나 2003년은 육아휴직으로 쉬었습니다), 첫 담임을 했던 제자의 연락이 왔습니다.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하고, 가끔 전해오는 소식에 멋지게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올해 5월 교생실습을 시작했고, 자신이 만나는 학생들에게 좋은 지도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다음은 그 친구에게 보낸 저의 답장입니다.
이런 기쁜 소식, 너무나 반갑다!
내가 기억하는 좋은 모습대로 잘 성장하고 열심히 살아왔다는 게 느껴지네.
우리 학교도 어제부터 교생선생님이 오셨고, 담임지도를 맡아서 이번 한 달을 지낼 텐데, 다른 공간에서 교생생활을 하는 너를 생각하면 교생선생님에게 더 보탬이 되는 시간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사 2년 차라 부족한 것 투성이의 그때 부끄러운 모습에 가끔 참회에 젖지만, 그중에서도 너는 이렇게 좋은 모습을 찾아 기억해 주니 너무 고맙고 기뻐서, 카톡 메시지 보고 많이 울었어......
참 고마워. 그리고 지금 만나는 아이들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네가 나를 오늘 또 가르쳐 주네. ^^
의미 있고 보람된 시간으로 교생실습을 잘 마치기를 바라.
#2
담임반 학생들이 편지꽃다발을 스승의 날 아침에 전해주었습니다. 올해 학생자치회에서 마련한 스승의 날 이벤트였습니다.
우리 반 단체대화방에 저의 답장을 남겼습니다.
스스의 날을 맞아 여러분이 저에게 준 아름다운 꽃다발 감사합니다.
꽃보다 더 고운 여러분의 정성 어린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정말 눈치 1도 채지 못하게 비밀리에 준비해 준 덕분에, 저에겐 정말 서프라이즈 선물이었어요. 제가 해 준 것보다 더 많은 감사를 받은 것 같아, 고맙고 또 한편으로 부끄러운 마음도 있어요.
여러분의 정성에 보답하도록 저도 노력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저 꽃다발 안에 우리 반 14명 14송이 꽃송이들이 있다*는 것이고요, 각자의 사연과 다짐 모두 소중하다는 것이에요. (*출결이 불안정한 친구 2명이 있어서 쓴 말입니다)
우리가 한 반이라는 사실도 감사하고 이제까지 여러분이 잘해준 것처럼, 앞으로도 잘 해내갈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가 커지네요.
저에게 이런 큰 기쁨과 감동을 선사해 준 3학년 0반, 모두 감사해요.
스승의 날은, 선생님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더 아름다운 주인공들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담아
2024년 3학년 0반 담임 이 00
인간에 대한 의심이 많고, 인간성에 대해 회의적이며, 그러기에 사람에게 거는 기대도 적은 비사회적인 성향인 저에게, 교직은 오히려 제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는 배움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사랑하고 헌신하는 것을 배웠고, 아프고 고된 순간들이 있지만, 또 자녀로부터 받은 사랑과, 부모의 책임감으로 저는 더 성장하였습니다.
사람에게 마음을 쏟는 일, 그래서 자기 사랑의 범주를 벗어나 살아가는 일, 그 책임 속에서 긍휼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책임지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인데, 그 책임이 저를 살게 했고, 조금 더 저를 인간답게 만들었고, 어른되게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눈물도 점점 더 많아집니다.
아직도 턱없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따뜻한 심성을 타고난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면, 부럽기도 합니다. 그런 분들은 제가 쓴 이 두 편의 메시지를 훨씬 능가한 따뜻한 답신을 쓰실 수 있겠죠. 그러니 제 글을 공개하면서도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부족함이 많은 저에게 사랑과 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이 사랑과 지혜를 주시도록. 저의 영광이나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세우는데 사랑과 지혜가 사용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