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와 씽크볼을 본 순간, 좀처럼 사용될 일 없는 저의 발작 버튼이 딸깍 눌립니다. 같이 식사를 한 아들에게 설거지를 부탁해 뒀는데, 그게 씽크볼 안에 그대로 있었던 겁니다.
"00아, 이게 뭐야? 설거지가 안돼 있잖아."
그 소리를 듣고 방안에 있던 아들이 나오는데, 그 모습을 보니 더 화가 납니다.
"어, 하려고 했는데 잊어버렸어. 지금 할게." 하면서 싱크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시작했지만, 설거지를 마친 후 아들은 폭풍 잔소리를 피할 수 없었죠.
설거지를 한다는 행위는 같습니다. 하지만, 그 행동을 어느 시점에서 하느냐에 따라서 무척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제가 없는 사이, 아들이 설거지를 했다면, 저는 집에 돌아와서 깨끗하게 비워진 씽크볼을 보고, 아들이 저와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에 흐뭇하고 고마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 아들은 제가 돌아온 후 설거지를 한 것으로, 엄마와의 약속을 하찮게 여겼고, 게으르고, 기대를 저버린 아들이 되었습니다. 엄마다 보니 '저렇게 해서 앞으로 어떻게... '라는 생각에 속상했습니다. 작은 것을 제대로 못하는 것, 안 하는 것 이게 싫어서였습니다.
"작은 일은 작은 일이다. 하지만 작은 일을 완벽히 하는 것은 큰 일이다."
"작은 일이 완벽함을 만든다. 완벽함은 작은 일이 아니다."
설거지만큼 미룸의 흔적이 즉각적으로 티가 나는 게 없습니다. 끼니 후 다음 끼니까지, 그 주기도 짧습니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설거지는 바로 해야 합니다. 씽크볼에 씻지 않은 그릇 대신, 새 그릇을 꺼내 쓰고 한 번에 씻는다? 제때 세척되지 않은 그릇은 어떤 면으로 봐도, 바로 씻을 때보다 어렵습니다. 눌어붙은 밥알을 불려야 하는 압력밥솥 같은 건 제외하고요. 여벌 그릇을 꺼내 쓰는 것은 씽크볼을 점점 채워가는 일이고, 여벌 그릇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의 공간을 불필요하게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취 생활하면서 간단하게 먹는다 해도, 설거지가 안 나올 수는 없습니다. 사발면 용기나, 배달음식 용기도 씻고 버리는 정리를 해야 합니다. 미룰수록 고약해집니다.
혼자 사는 자취생은 이제 누구에게도 뒷정리를 맡길 수 없습니다. 당신이 나서서 치우지 않는 이상, 그대로 거기 모든 흔적이 머무를 것입니다. 그게 단순히 씻기지 않는 그릇일까요? 그 흔적들은 나태함, 게으름, 미룸, 책임 회피라는 부정적 에너지와 자아상입니다. 그 자리에 눌러앉아, 다시 찾아온 당신에게 무언의 말로 공격합니다. 덩어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 공격의 목소리는 커지겠죠.
내가 해야 할 일을 내 힘으로 해낸다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설거지는 작은 일이지만, 그 일을 미루지 않고 해낸다는 것은 큰 일입니다. 작은 일을 해냈던 힘들이 모이고 쌓이다 보면 큰일이 왔을 때도 그 힘으로 조금씩이라도 전진할 수 있습니다.
먹고 비워진 그릇들을 제시간에 씻어 정리하는 것은 네 마음 자세를 정갈하게 씻어내는 것과 같다. 나태함과 회피라는 음습한 자존감 공격자들이 네 마음에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쫓아내는 것이다. 설거지그릇이 말끔히 씻겨 옮겨지고, 물에 젖어 반짝이는 씽크볼을 보며, 오늘 너에게 주어진 너의 책임을 다해냈다는 만족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기쁘게 뒤돌아서서 힘 있게 또 다른 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