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말, 1년 휴직 신청을 냈다는 사실이 동료들에게 알려지자, 몇 분은 인사말로 '그럼 뭐 할 거예요?'라고 물어왔습니다. 장황하게 설명할 일은 아니라, '이것저것 해보려고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정말 뭘 하려고 했던 걸까요?
2022년 3월 초 친청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저의 계획에는 지각변동이 생겼습니다. 코로나시국이라 간병인에 대한 제한 조건이 많아서, 오빠는 주간병인, 저는 오빠의 보조역으로 바통을 이어주고 이어받으며 병원에서 간병을 하고, 집으로 어머니를 모신 후에도 친정에 가서 얼마간씩 간병을 했습니다. 그러기를 석 달, 어머니는 6월 8일 요양병원으로 가신 후에 6월 30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 곁에 있을 때나,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있을 때나, 저를 지켜준 것은 루틴이었습니다. 누구는 저의 휴직을 두고 '여행'을, 누구는 '친구들과 만나고 쉬는 시간'을 말했습니다. 일터를 잠시 떠나는 거라 쉬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며칠의 기간도 아니고, 몇 달도 아니고, 1년의 휴직 기간을 살아가는 데는 저만의 루틴이 필요했고, 처음 한 달은 최적화된 루틴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기상시간부터 하루동안 규칙적으로 하려고 했던 일들은 실제 해보면서, 일련의 과정을 만들었습니다. 필요한 변화는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아파트 공터를 산책하던 것에서 산을 오르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머니의 장례식 후에는 허전한 마음에, 힘을 쏟을 대상이 필요해서 악기를 연습하는 시간을 오후 루틴에 넣었고요. 하지만, 기본적인 루틴은 대동소이했습니다. 여행이나 만남은 이런 루틴을 잠시 벗어날 때 더 특별한 행사가 됩니다.
계획형인 분들(J형)은 계획을 즐깁니다. 계획한 것이 크던 작던, 계획을 실행해 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낍니다. 아침 루틴이 있으면, 눈을 뜨자 해야 할 일들을 순서대로 하면서 바로 자신의 실행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은 반자동적인 흐름을 만들기 때문에 에너지가 적게 듭니다. 뭘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단계가 끝나면 예정된 다음 단계를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요.
대단한 목표가 아니라도, 오늘 하루 일상의 흐름을 지켜내는 것이 큰 안정감을 줍니다. 잘 만들어진 루틴은 마치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잘 맞는 친구 같아서 편안함을 주며, 내 작은 성공을 축하해 줍니다.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저 멀리 있는 목표지만, 오늘 내가 하려고 했던 유튜브영어영상을 세 개를 봤다는 것은 측정가능한 일이고, 오늘 당장 실현가능한 일입니다. 루틴은 오늘 작은 성취를 선물해 주고, 그 경험들이 지속되면, 시간의 축적이라는 복리이자를 줍니다. 조금씩이지만 나아가는 하루, 루틴이 지켜줍니다.
특별한 일이 없어서 심심한 하루라고 생각하는가? 루틴은 그런 고민을 덜어준다. 매일매일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반복이라 이미 루틴대로 산다고 생각하지 마라. 학교나 직장에 매여 있지 않은 시간에 내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가 진짜 루틴이다. 쫓기듯 사는 루틴을 벗어나려면, 아침 기상 시간을 조금 당겨서 일어나는 루틴을 만들고 자신을 위한 의식을 집어넣어라. 잠들기 전 회복과 충전을 위한 의식을 만들어 넣어라. 너의 소진을 회복시킬 권리와 책임도 너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