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이 났습니다.
어린 시절 동네에 가까운 곳에는 높지 않은 산이 있었습니다. 산의 이름을 기억할 수 없으나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그 산에서 소나무 가지를 꺾어 총, 칼을 만들어 놀았습니다. 산은 계절마다 배고픈 어린아이들의 먹거리를 제공하는 보물 창고이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우리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은 다른 동네 형들과 산에서 마주쳤습니다. 그들은 밤을 따고 있는 우리 일행을 밤나무 주인에게 알리겠다고 협박을 하며 자신들의 말에 따르면 밤나무 주인에게 이르지 않는다는 그들의 조건은 우리 일행이 손과 발로 밤 가시를 벗겨 그들을 위해 밤을 까서 상납하는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초겨울 어느 날 몇몇 친구들과 동네 산을 갔습니다. 추운 날씨라 우리 일행은 불을 피웠습니다. 주의 깊게 살펴야 했는데 바람을 타고 날아간 작은 불씨가 우리 일행도 알지 못한 사이에 큰 불을 만들었습니다. 너무 놀란 우리 일행은 어떻게 산에서 내려왔는지 연기를 보고 근처 어른들이 뛰어오는 모습을 보고 서둘러 산에서 도망쳐 내려왔습니다.
산불은 어른들로 인해 진압이 되어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기온이 떨어져 춥고, 산불 사고를 쳤기에 집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대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나를 동네 누나는 "너 산불 냈지. 혼나야 해" 하며 대문 초인종 벨을 눌렀습니다.
배도 고팠지만 부모님의 꾸지람이 더 두려웠기에 배고픔은 참을 수 있었습니다. 굳게 닫힌 대문이 열리고 두려움에 조심스럽게 한 발씩 내딛으며 들어서는 나는 청소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엄마는 아무런 잔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당시를 생각하면 엄마는 아이의 충격에 오히려 잠잠하게 행동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친구 부모님들이 산불에 대한 피해 보상을 하였다고 나중에 들었습니다.
"너 우리하고 살지 왜 굳이 외국으로 가야 하냐" 출국 전 날 모든 가족은 함께 멀리 떠나는 나를 위해 모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국에서의 밤에 엄마는 나에게 함께 살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너 한국에서 사는 것 잘 생각했다" 하며 아쉬워했던 오래전 기억과 다르게 말해 주었습니다.
오늘 새벽 엄마가 그리웠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아버지는 내가 하는 카톡을 받지 못하여 동생들이 부모님 댁에 방문하면 카톡 영상을 연결시켜 주고 있습니다.
자식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곁을 떠나 보니 이제야 부모가 보입니다. 이제야 부모가 생각납니다.
송강 정철 선생의 애달픈 부모를 기리며 살아생전 잘하라는 인생의 조언이 새벽에 와닿습니다.
그날은 엄마에게 꾸지람을 듣고 의기소침하여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나의 발을 만지는 느낌이 들어 잠을 깨웠지만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나의 기분을 풀어 주려고 그랬는지 나의 발을 주무르며 기도를 하듯 중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며칠 만질 수 없는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그저 카톡 영상으로 뵙는 그들의 얼굴 속에 저의 미래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