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라?"
수화기 너머로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을 때, 나는 그 이름이 주인을 제대로 찾아간 것인지 확신하지 못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상대가 이내 밭은 숨을 몰아쉬며 "예스"라고 대답했다. 누구냐고 되묻는 그녀의 서툰 경계심을 나는 짧은 자기소개로 허물어뜨렸다. 그러나 영어 과외를 요청하는 나의 돌발적인 제안에 그녀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은 듯, 대답을 다음이라는 기약 없는 시간 너머로 미뤄버렸다.
도로는 시가행진의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다행히 7월 초입의 여름은 아직 무덥지 않았고, 바람 끝에는 서늘한 습기가 남아 있었다. 이런 날은 편의점의 생리상 일 년 중 가장 큰 대목이었다. 목마른 군중들이 쏟아낼 갈증을 예감하며, 베네타와 나는 며칠 전부터 온갖 종류의 음료를 쿨러 안에 쟁여두었다. 축제의 소란이 휩쓸고 간 하루의 끝, 매상장부에는 일주일치 수입에 달하는 숫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편의점 조합 일을 본다는 주인은 기분이 좋았는지 나와 베네타에게 예우에 없던 당일 보너스를 건넸다.
“아저씨, 이런 보너스를 챙겨주는 주인은 이 바닥에 없어요.”
베네타는 지폐 몇 장을 손에 쥐고 아이처럼 신이 나 떠들었다. 그녀의 웃음 뒤로 언뜻 스쳐 가는 것은 80년대의 화려했던 청바지 프랜차이즈 사업 성공 후 태평양을 건너온 뒤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한 가족의 몰락사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낯선 땅에서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삶의 의욕을 잃고 끝내 병사했다. 생의 자존을 다 소진해 버린 사내가 남긴 빈자리를, 이제 스물아홉의 베네타가 가장이라는 무거운 외투를 걸친 채 채우고 있었다. 축제의 행렬이 남긴 쓰레기들이 바람에 뒹구는 거리를 바라보며, 나는 보너스 봉투를 만지작거리는 그녀의 가냘픈 손마디에서 지독한 생의 비린내를 맡았다.
샌드라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여름의 잔열이 맥없이 스러지던 무렵이었다. 영어 공부를 도와주겠다는 그녀의 제안은, 마치 예고 없이 당도한 철 지난 서신처럼 내 일상의 여백을 파고들었다.
기세를 떨치던 토론토의 무더위가 한풀 꺾이자, 도시는 비로소 이방인들을 유혹할 만한 서늘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거리마다 몰려나온 관광객들은 현지인들의 일상 속에 기묘한 색채로 섞여 들며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부유하고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서둘러 찻집에 자리를 잡았다. 문이 열릴 때마다 쏟아지는 빛의 입자들 속에서 나는 그녀의 옷차림을, 혹은 그녀가 몰고 올 공기의 질감을 가늠해 보았다. 처음 교회 무리 속에서 존재감 없이 그녀를 응시하던 그 무기력한 시선은 어느새 지워지고, 이제 나는 이 기다림의 온전한 주인공이 되어 문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창가에 드리워진 엷은 푸른색 커튼이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뒤척일 때마다, 카페 내부에는 비릿하면서도 감미로운 계절의 냄새가 번져 나갔다. 그때였다. 어깨에 다소 버거워 보이는 하늘색 가방을 멘 그녀가 풍경을 가르며 들어선 것은. 나는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시선 끝에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신호를 보내듯이.
"공부는 잘 끝냈어요?"
생각보다 매끄럽게 내 말을 받아내는 그녀의 한국어 발음에서 묘한 생경함이 묻어났다. 대화의 여백을 메우기도 전에, 단정한 매무새의 종업원이 다가와 우리 사이에 메뉴판을 밀어 넣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이름을 불렀다. 아이리쉬 커피 두 잔.
아일랜드산 위스키의 독한 기운이 뜨거운 커피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그 액체는, 캐나다에 첫발을 디뎠던 날 내 입안에 새로운 세계의 지도를 그려주었던 기억이 있다. 혀끝에 감돌던 그 알싸한 향기는 고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동이자, 이 낯선 땅에 나를 붙들게 한 유혹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 아이리쉬 커피는 내 외로움을 달래는 가장 탐미적인 습관이 되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따뜻한 잔을 감싸 쥔 채 나를 향해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무해한 미소를 마주하며, 우리는 서로의 비어 있는 시간들을 맞춰 보았다. 일주일에 세 번, 우리는 이 도시의 어느 모퉁이에서 언어라는 가느다란 끈을 붙잡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