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광고 보고..."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사내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그 음성의 결에는 생의 한 귀퉁이를 간절히 붙들고자 하는 이들의 공통된 습기가 배어 있었다.
"네, 저희는 지금 새벽 근무자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동네가 비교적 안전하다는 판단이 몇 달 가계 운영 후 들자 24시간 영업 연장을 알리는 문구가 유리창에 붙은 이후, 주민들은 익숙한 불빛이 밤새 꺼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 섞인 환영을 보내왔다. 토니는 두 개의 가계 새벽의 시간을 위태롭게 버티며 생의 속도를 늦추지 못하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유리창에 들러붙을 때마다, 그의 피로는 마른 장작처럼 바스락거리며 타올랐고, 그가 견뎌내는 것은 단지 근무가 아니라 제 몸에서 조금씩 빠져나가는 어떤 투명한 영혼의 잔해 같은 것이었다.
편의점이란 결국 골목의 파수꾼 같은 것이어서, 손님의 태반은 이웃들이었다. 베네타는 근처 어느 편의점이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소문을 듣고 와 내 의중을 묻기도 했다. 새벽 일정 금액 이상의 주문 매상을 고려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건비와 스쿠터 유지비라는 현실의 산문적인 계산기 앞에서, 그 계획은 이내 형체를 잃고 휘발되어 버렸다. 수지타산이라는 냉정한 숫자가 나의 의지를 가로막았던 것이다.
"네, 새벽 근무 가능합니다."
사내의 대답은 명료했다. 목소리에 담긴 간절함이 보이지 않는 선을 타고 이쪽의 마음으로 전해져 왔다.
"그럼, 이틀 뒤에 가게로 면접을 보러 오실 수 있겠습니까?"
그는 그러마고 짧게 답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 아직 오지 않은 그 사내의 새벽과 내가 감당해야 할 고요한 시간들이 묘한 예감으로 교차하고 있었다.
무더웠던 여름날 샌드라가 떠나고, 어느덧 계절은 생의 이면을 보여주듯 늦가을의 쓸쓸한 소묘(素描) 속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걱정이라는 이름의 부유물들이 가라앉은 자리에 가게는 비로소 정박한 배처럼 안정을 찾아갔다. 성철은 정해진 운명처럼 성실하게 새벽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베네타와 동갑내기인 스물아홉의 청년. 한국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일 년 전 토론토에 있는 삼촌을 찾아왔다는 그는, 이곳의 낯선 공기 속에 자신의 미래를 투사해 보겠노라고 말했다. 면접 날, 내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던 그의 눈동자에는 흡사 출병을 앞둔 전사의 비장미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사장님."
그가 나를 그렇게 불렀을 때, 내 안에서는 한국에 두고 온 동생의 얼굴이 느닷없이 떠올랐다. 내 동생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그에게 나는 무심결에, 그러나 진심을 담아 "형"이라고 부르라 일러주었다. 그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정말 그래도 되느냐고 되물어왔다. 그 맑은 당혹감이 오히려 내 마음을 흔들었다.
에이전트가 성진 선배를 통해 그와 연결되었던 것은, 예고 없이 찾아온 소나기처럼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던 내게 그는 서두르지 않고 침묵의 여백을 내어주며 내 서툰 설명을 끝까지 경청해 주었다. 오히려 함께 일해보자며 손을 내민 것은 그쪽이었다. 그가 보여준 뜻밖의 적극성은, 어쩌면 타국에서 부유하는 두 영혼이 서로의 기척을 알아보고 맞잡은 가느다란 생명줄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