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경계가 무너지는 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

벼룩시장: 이방인의 기억 가판대

by 목림


눈앞에서 공중전화의 수화기가 좌우로 덜렁거린다. 뮌헨 구석 골목에는 가끔 가던 서양식 바가 있다. 여기서 화장실을 가려면 두 개의 단으로 이루어진 층계를 올라가야 하고 정확히 그 두 단의 경계 오른쪽 벽에 공중전화가 있다. 난 정말 화장실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 전화기의 수화기를 든다. 한순간도 의도하지 않은 페니 동전들이 호주머니에 가득하다. 신나게 전화기에 털어 넣는다. 수화기 저편에는 착한 그 여학생이 있다. 그녀의 3인용 기숙사의 두 침대는 비어있다. 난 알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온 유학생은 부재중이고 한 명을 위한 자리는 아직 입숙이 안 되어 있다. 그녀는 혼자다. 기숙사 공동 전화는 그녀가 받는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수화기를 놓치고 망신스럽게 두 계단을 미끄러져 넘어진다. 원래 불편했던 오른쪽 발목이 빨갛게 부어오른다. 무척 아픈데 아무도 보지 못한 사실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별안간 없어진 나의 목소리에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웅웅 댄다.

덜렁거리는 수화기.jpg

3박자 계열은 강박에 약 박을 실어버려야 상책이다. 홀수는 그렇다. 누군가는 혼자가 되어야 한다. 한 놈이 둘 이상을 거느려야 된다. 둘은 하나만 챙기면 된다. 내 모든 걸 주어야 하는 대상이 생긴다는 건 두렵다. 기준이 되는 건 두렵다. 음악이 그렇다. 분절의 시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자음은 소음이지만 모음을 만나면 멜로디가 되고 의미가 완성된다.


밤새 발갛게 부은 내 발목에 따듯한 수건을 얹어주며 잠 못 이룬 그녀가 얘기한다. 다친 사람을 내칠 순 없다. 수화기를 제자리에 올려놓지 않고 온 것이 창피스러워 대답은 못 한다.


해가 안 뜨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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