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 이방인의 기억 가판대
두상이 시원치 않아서 모자는 잘 쓰는 편이 아니다. 간혹 만화 ‘개구리 왕눈이’의 주인공처럼 앞 챙을 한껏 앞에서 들어 올려 쓰기는 했지만, 영 답답하기도 하고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 신경 쓰이는 일은 참 많기도 하다.
머리는 지난밤의 맥주 축제로 헝클어지고, 게다가 지금 기분은 머리를 정성껏 매만지기도 번잡스러워하니, 모자를 푹 눌러써 본다. 제법 어울리는 건 무슨 일일까.
친구가 지내고 있는 카톨릭 재단이 운영하는 기숙사로 거처를 정했다. 일단은 무척 저렴하다. 아직 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외국 유학생들에게도 소정의 심사를 거쳐 입숙을 허락한다니 조건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길게 기억글자 형태로 지어진 기숙사로 들어가는 짧은 오솔길은 주위의 녹지와 조화롭게 내어져 있다. 모든 것이 참 단단해 보이는 곳.
독일식으로는 땅(Erde)층, 우리식으로 1층 왼쪽으로 가장 끝 쪽에 기숙사의 책임자인 독일인 신부가 있는 사무실이 보인다. 좋은 사람이라니 믿고 가본다. 똑똑. 세 번은 거칠고 한번은 성의가 없으니 노크는 두 번이 좋다. 방은, 책들로 가득 찬 거대한 책장이 삼면을 배치하고 커다란 낡은 책상을 앞에 두고 고딕형 밤색 가죽 의자에 앉아 있는 신부를 보여 준다. 단조로운 장식들이 있는 받침대들과 누군지 모를 인물화들이 걸려 있는 벽도 보인다. 딱딱한 인상. 어릴 적 즐겨 읽던 추리소설의 ‘셜록 홈즈’ 같은 모습이다. 납작한 모자와 입에 깊게 물고 있는 서양식 담배 파이프가 서양화 그림 속 같다. 유럽식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부족한 독어와 형편없는 영어가 뒤섞인 대화를 시작한다. 가벼운 인사와 곧이어 지긋한 나이의 카톨릭 사제는 나의 모자를 차분하게 탓한다. 너희 나라는 어떠한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자리에서 모자를 벗는 것이 예의이다. 모자는 벗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이건 알고 있는 문화의 차이가 아니다. 경직된 한국의 상하 관계와 다르게 서양은 자유롭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보기 나쁘게 파기된다. 게다가 정작 본인은 그 납작한 탐정이나 쓸 법한 모자를 벗지 않는다. 담배도 계속 피우고 있지 않은가. 불합리한 것이 독일인지, 서양인지, 종교인지, 신부인지, 나이인지, 상황인지 알 길이 없다. 기성 가치를 분쇄하면서 느끼는 성취감은 어느새 시들해져 가지만 벌써 지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으니 가끔 쉬어가도 괜찮다.
그는 만인을 사랑해야 하는 책임감에 도취해 있는 고집쟁이 늙은이일 수도 있다. 이 거룩한 사제에게는, 어려서부터 집안의 종교는 천주교였고 세례명도 있으며 매주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간다는, 나의 소개도 동질감을 주진 않은 모양이다. 어차피 설득은 없고 당사자의 결정만이 존재한다. 학교에서 오페라 전집을 들고 학생들에게 친한 척하던 영업사원 윤 씨 아저씨가 생각난다. 여전히 학생들은 그 아저씨에게 시달리겠지. 생각 저 한쪽에 아버지가 보인다. 인생은 영업이다. 난 입숙에 성공했다.
그런데 왜 여기는 건물들의 층을 결정할 때 1층이 0층(땅층)이고 2층이 1층인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