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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Apr 12. 2024

진달래 꽃잔치를 품은 고려산에 반하다.

산은 인생을 담고 있으며 닮았다.

강화 고려산 진달래 축제는 북한산 등산 친구가 직원연수로 다녀왔다며 사진을 보여줘서 알게 되었다. 40대 초반까지만 해도 직원연수로 산에 간다고 하면 올라가는 시늉만 하거나 산 아래 커피숍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그런 내가 버킷리스트로 이산 저산 다니고 있으니 이젠 늙었거나 인생을 조금 알았거나 둘 중 하나다.


 나의 휴직 중 소박한 버킷리스트


고려산 진달래 축제(어제 완료)

소래 포구

감악산 등반(완료)

홍천 팔봉산 등반

고봉산에서 일몰 보기(완료)

환기 미술관, 호암 미술관, 소마미술관(완료), 석파정 미술관 가기 등.....


너무 멀거나 큰맘 먹어야 갈 수 있는 곳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는 곳 위주로 정했다. 적고 보니 주로 산이 많은데 고봉산은 동네에 있는 산이라 며칠 전에도 다녀왔다. 교직 인생에 딱 한 번 있는 자율 연수 휴직이니 너무 공부만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교사는 많은 경험을 해야 아이들을 폭넓게 이해하고 지혜롭게 가르쳐줄 수 있으니까.


얼마 전 소중한 글벗인 유미래 작가님이 고려산 백련사에 다녀왔다는 글을 읽고 잊고 있던 진달래 축제가 생각났다. 아침에 일어나 고려산 진달래 축제 기간이 다 된 것 같아 검색해 보니 이번주 일요일까지였다. 제일 친한 친구인 남편이 쉬는 날이라 얼른 가자고 했다.


햇빛이 너무 쨍하지도 비가 오지도 않은 적당한 날씨에 사람이 붐비지 않는 목요일이라 가는 길이 한산해 좋았다. 휴직을 하고 나니 복잡한 주말을 피해 한적한 평일 오후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가장 큰 호사다.


고려산 정상의 진달래 군락지까지 가는 길은 모두 5가지 코스가 있데 코스가 비교적 짧은 청련사부터 시작하는 2코스로 정했다. 주차장에는 벌써 승용차와 관광버스가 가득 차 있었다.

주차장 옆 국화리 마을회관에서 청련사까지 0.5km로 걸어서 20분,

청련사에서 고려산 정상까지 1.7km로 45분,

고려산 정상에서 진달래 군락지까지 0.7km로 8분이 소요되었다.


우리는 산행 중간에 많이 쉬어서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지만 일반 등산객들은 1시간 10분 정도 걸리는 코스다.

관광버스를 대절해 온 50-60대 중년 여성들이 많이 보였다. 60-70대로 보이는 남성들도 삼삼오오 건강하게 산행을 즐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배가 볼록 나와도 나보다 더 산을 잘 타는 모습이 놀라웠다. 하산하던 사람들이 숨을 고르며 서있는 사람들에게

"조금만 올라가시면 이제 내리막길이 나와요. 진달래가 말도 못 하게 예뻐요."

하고 용기를 줬다. 그러자 쉬고 있던 무리 중 한 아주머니가

"산은 인생이랑 같은겨.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고,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도 있는 법인게."


사람들은 왜 힘들게 산에 올라 위안을 받을까. 특히 젊을 때 보다 나이 들고 나서 바다에서 받지 못하는 위안을 산을 오르며 받는다고 한다. 산에 한 번 오를 때마다 인생을 한 번씩 배운다. 올라갈 때는 어디가 끝인지도 보이지도 않고 힘들어 계속 앉고 싶지만 엉덩이 털고 일어나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정상이다. 산 정상에서 보이는 그림 같은 풍경에 힘들었던 여정을 보상받는다.


산을 오르며 흘린 땀과 오르막에 힘들게 내디딘 발자국들이 헛되지 않고 노력한 만큼 정직한 결실로 나타나는 공평한 만족이다. 고려산 정상에서 만난 진달래 군락과 북한산 정상에서 보던 기막힌 암벽 풍광 모두 내가 보탠 시간과 노력의 선물이다.


인생을 살면서 노력한 결과도 등산만큼 정직한 결과로 나오면 좋겠다. 어떤 사람에게는 더 큰 보상이, 어떤 사람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배움은 산을 오를 때의 인내와 맞닿을 것이다. 올라가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작은 풀꽃,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맑은 새소리가 결과와 상관없이 마음속에 벗을 남기고 힐링을 선사하면 좋겠다.


고려산도 오르는 산길 경사가 만만치 않게 가파르다. 북한산은 정상에 다다르면 돌 바위를 디디며 밧줄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면 고려산은 흙먼지가 뿌옇게 날릴 정도로 흙길을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는 길은 북한산이 더 어렵고 풍광이야 말할 것도 없이 북한산이 멋있지만 진달래 군락이 장관인 요즘은 고려산의 압승이다.

남편이 헥헥 거리는 내 뒤에서 등을 슬그머니 밀어준다. 아주 약한 힘으로 받쳐주는데도 올라가기가 훨씬 수월하다. 밀어주니 좋다고 하면 이 사람은 자기 몸을 무리해서 밀어줄 것이 분명해 괜찮다고 했다. 나는 독립적인 여자라며. 부부라도 너무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다.


진달래 군락지는 갈색의 계단과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져 정말 아름다웠다. 벚꽃의 응집된 하얀 찬란함과는 또 다른 진분홍의 순박하고도 화려한 자태에 감탄사가 나왔다. 진달래 세상에 빠져 도끼 자루가 썩는 줄 모를 정도로 황홀감을 느끼게 해 준다. 산기슭에 홀로 새초롬하게 피어 있던 진달래의 화려한 반란이다.

북한산에 처음 올랐을 때 이틀 동안 근육통에 시달렸다. 오늘 아침에엉덩이와 종아리 뒷근육이 뻐근하긴 하지만 예전처럼 힘들지는 않다. 등산 근육통이 있었던 경험으로 산행 중간중간 스트레칭을 하고 내려와서도 스트레칭을 잊지 않았다.


인생이라는 산도 오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돌부리에 걸려 휘청거리기며 상처가 나기도 하고, 근육을 유연하게 풀어주지 못해 통증을 겪기도 하지만 자꾸 오르다 보면 요령이란 게 생긴다. 이젠 미리 몸 근육, 마음 근육을 풀어주고 돌부리가 나올 것 같은 지점은 더 조심하게 된다.


군락지에서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 사진을 찍어댔지만 역시 사진은 숲과 꽃의 아름다운 조화를 다 담지 못한다. 뒤에 선 중년 남성이 연신 우리 부부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포즈를 취하라고 한다. 그러고는 자기네 부부도 찍어달라며. 역시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한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


진달래 군락지로 내려오는 길에 여덟 명 정도의 중년 남녀가 돗자리를  펴고 식사를 하고 있다. 돗자리 위에 펼쳐진 반찬통이 15개는 넘어 보인다. 저 정도면 한식뷔페를 그대로 옮겨 놓은 모양새다. 저 무거운 걸 어떻게 짊어지고 왔을까 생각하다 수다를 떨며 왁자지껄 맛있게 먹는 모습에 다양한 행복의 모습을 깨닫는다.


바다는 강물을 가리지 않고

숲은 새를 가리지 않는다.


산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모든 사람과 그 사람의 행동 양식을 포용한다. 사람들이 산을 찾는 또 다른 이유다.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무얼 먹든 어떤 이야기를 하든 산을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산을 닮은, 품이 큰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어 진다.


산과 꽃과 사람의 모습을 즐기다 보니 벌써 딸아이 픽업시간이 다 됐다. 1시간 반 동안 걸어온 거리를 30분 만에 내려왔다. 산을 내려올 때 조심하지 않으면 미끄러져 다치지 십상이다. 인생에서도 성공을 맛본 후 내려올 때 마음을 더 다치지 않는가. 오늘 등산은 안전하게 내려오는 것까지 잘 끝냈다.


딸아이를 데리고 제육볶음 정식을 먹으러 갔다.

"엄마, 아빠는 등산도 자주 가고 워라밸을 참 잘 지키며 사는 것 같아요."

딸아이의 말이 참 마음에 든다.


너도 언젠가 산이 주는 행복을 알았으면 좋겠다.



한 줄 요약 : 산은 인생을 담고 있으며 닮았다. 산을 닮은 품이 큰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



강화 고려산 진달래 축제가 이번 주말 14일 까지니 시간 되시는 분들은 다녀오시길 추천드립니다. 글벗님들도 꼭 봐야 하는 아름다운 풍경이었어요.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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