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나들이 Apr 26. 2024

100번째의 의미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봄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브런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0개월 만에 100번째 글을 쓰게 되었다. 일주일에 글을 두 번 발행해야 하는 브런치 내 소모임 라라크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기다 사람 좋은 글벗까지 얻었으니 휴직 중 가장 큰 수확이다.

 문득 마음이 급해질 때가 있다. 도깨비방망이로 '금 나와라 뚝딱.'하듯 딸아이의 입시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고 내 이름으로 된 책이 뚝딱 나왔으면 좋겠다. 쌓아가야 할 과정을 거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바라고 좋은 책이 출판되길 바라는 마음이 곧 욕심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주책없이 앞서가는 마음을 잡아 시간의 속도 옆에 나란히 둔다.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고 그냥 누워있고 싶은 날이면 붙잡아둔 마음을 생각하며 들숨과 날숨을 길게 쉰다. 마음을 잡아두어도 몸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고 되뇌며.

귀한 글벗인 실배작가님과 늘봄유정작가님의 출간 계약 소식을 들었다. 두 분 다 필력도 좋으시고 남들과 차별화되는 글의 주제도 가지고 계신다. 두 분 작가님의 출간은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진다.


내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는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과연 내가 독자라면 내가 쓴 책을 사서 읽고 싶을 것인가를 반문했다.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글을 오랫동안 쓴 작가님들에 비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성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책을 쓰고 싶다면 내가 제일 잘 아는 걸 쓰라고 했다. 내가 20년 넘게 일한 곳은 학교이고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은 학생이다. 그러면 학교에 관한 이야기가 나에게는 강점이 되는 콘텐츠일 것이다.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붙잡고 하나씩 다시 시작해 보자고 다짐했다. 서둘지 말자고 생각했다.

쉬어 가는 마음을 위해 비 오는 수요일 영종도로 향했다. 나에게 영종도는 인천공항이 있는 곳, 우리 집에서 가장 빨리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인의 소개로 영종도에서 숨겨진 진주 같은 곳을 알게 되었다.

메이드림 카페와 전시관

영종도에는 교회 건물을 부분 리모델링해 만든 스테인드글라스가 멋진 메이드림 카페가 다. 지하에는 비밀 수도원처럼 생긴 동굴 카페가 있고 정원에는 설치 미술 공간으로 꾸며 놓은 전시관도 있다. 제법 큰 꽃사슴을 키우는 아담하고 이국적인 장소도 있다. 카페 내부에 앉아 있기보다 정원과 전시관을 돌며 구경하고 사진 찍기에 좋은 곳이었다. 이탈리아의 성당에 온 느낌도 들고 비밀의 화원 속에 들어온 신비한 느낌도 들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 훌쩍 떠난 오후를 보람 있게 만들어준 곳이었다.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


메이드림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최근 오픈한 인스파이어 호텔이 있다. 15년 전 라스베이거스의 베네치아 호텔에 처음 갔을 때 호텔 천장에는 조각구름이 떠있고 호텔 바닥에 곤돌라가 떠다니는 걸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비 오는 날 호텔 내부를 구경하고 쇼핑과 식사를 하며 즐거움을 만끽할 정도의 다양한 볼거리를 가진 호텔이었다. 주차장과 내부시설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특히 밤하늘과 정글로 시시각각 변하는 호텔 천장은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서울에서 셔틀버스가 무료로 운영된다고 하더니 셔틀버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도 사람들이 가진 시간은 분주하게 돌아간다. 자연이 좋지만 때로는 인간이 만든 색다름결이 다른 기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잘 쉬고 왔으니 다시 101번째 글을 시작해 보자. 100번이 소중한 이유는 100번을 채워서가 아니라 101번째를 시작할 수 있어서다. 오늘부터 다시 1일이다.


한 줄 요약 : 마음만 앞서지 말고 한 걸음씩 쌓아가자.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이전 05화 진달래 꽃잔치를 품은 고려산에 반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