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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Mar 29. 2024

대박집에서 배우는 인생

인생 경영과 맛집 경영

올해가 마지막 휴직이라고 생각하니 수요일만 되면 어디론가 나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특히 거실 창으로 햇빛쪼개져 들어오기 시작하고 코 끝에 스치는 바람이 막 다림질한 실크처럼 부드럽게 느껴지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작년 여름 면허를 따고 운전이 제일 재미있는 게임이 된 아들이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며 집으로 왔다. 아빠가 없을 때 아빠 역할을 자처하는 아들에게 오늘은 봄나이들이 기사가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아들이 내건 조건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운전하는 것.


3월이 끝나가는데 내 고향 진해에도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고 우리 동네 목련도 이제 봉오리를 맺었을 뿐이다. 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가고 싶은 마음에 위시리스트를 뒤적거렸다.

아들에게 전에 가려고 찜해두었던 식물원 카페로 갔다가  얼큰한 해물 칼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시원한 국물로 끈질기게 붙어 있는 감기나 쫓아버렸으면.


"오빠만 믿어."

아들은 아직도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엄마를 놀리듯이 오빠만 믿으라는 흰소리를 날리며 운전을 시작했다. 알아듣기도 힘든 랩을 한 소 절도 빠짐없이 따라 부르며.


카페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는데 주차장에 차가 한 대도 없다. 오늘 휴무인가. 휴대폰을 꺼내 검색해 보니 영업 중이라고 적혀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오르막길을 걸어 카페문을 열었다. 조명이 어두워서인지 아무도 없는 카페가 쓸쓸해 보인다.


분재와 소나무, 홍매화 나무, 산수유나무와 석상으로 꾸며 놓은 식물원은 뭔가 정리되지 않은 야생의 느낌이 절반이다. 사람들이 식물원이 있는 카페를 찾을 땐 정돈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정원과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일 텐데, 뭔가 정리가 부족하다. 그래도 때마침 피어준 노란 산수유꽃과 진분홍 홍매화가 봄이 왔음을 느끼게 해 준다.

카페에 앉은 지 30분이 지나도 손님이 없다. 슬슬 카페 매출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2년 전 와플가게를 오픈했던 친구는 1년도 지나지 않아 폐업신고를 했다. 아들이 새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김치찌개 식당도 손님이 없어 사장님이 가게를 내놓았다고 한다.


교대 졸업 후 임용고시를 합격하고 발령을 받으며 취업 걱정 없이 살았던 나는 세상 살기가 녹록지 않다는 걸 곳곳에서 목격했다. 휴직을 하고 남편과 평일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영업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눈으로 확인하면서 더 실감한다. 나 자신을 단단히 세우고, 거기다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위대한 일인지 세상의 모든 가장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우리 집 가장 님, 감사합니다.


어쩌다 장사가 안 되는 식당에 가면 안타까운 마음에 음식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다 장사가 잘되는 가게가면 영업 비결이 뭔지 자꾸 분석하게 된다.


남편과 점심을 먹으러 방문한 쌀국숫집, 추어탕집, 묵전문점은 모두 대기 시간이 20분 이상이었다. 추어탕집 대기인원은 평일 점심시간에도 20명이 넘었는데 대기손님을 위해 가져다 놓은 물건이 아주 신박했다.


주로 5-60대의 나이 많은 손님이 대부분임을 감안해 대기실 앞에 뻥튀기 기계를 갖다 놓은 것이다. 쟁반만 한 뻥튀기가 뽁뽁 정겨운 소리를 내며 2초마다 한 개씩 기계밖으로 튀어나왔다. 손님들은 모두 뻥튀기 먹는 재미에 빠져 대기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고 있었고 대기도 빨리 줄어들었다.

세 가게 모두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직원이 활기찬 목소리로 크게 인사를 했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대기 인원이 많아도 대기가 빨리 줄어드는 이유였다. 친절을 장착한 직원들과 청결한 식기 세팅, 주문에서 서빙까지 모든 과정이 시스템화되어 있어 손님이 기다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있었다.


재료가 신선하고 맛에 기교가 없이 깔끔하여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려 주는 음식. 양도 푸짐하여 한 그릇 먹고 나면 미각과 허기를 동시에 채워 만족감이 배인 음식을 판매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맛을 좋게 하기 위해 조미료나 합성향료 같은 편법을 쓰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맛을 내기 위해 성실하고 우직하게 노력하는 것.


손님을 대하듯 나를 스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생기 있게 대하며 내가 있는 장소를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것.


내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시간 절약을 위해 내 주변을 시스템화시키는 것.


먼지 쌓인 가게에 앉아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요리법을 배우고 새로운 재료도 넣어보며 손님의 입맛을 만족시킬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


장사가 그럭저럭 된다고 해서 정체하지 않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며 변동하는 물가에 흔들리지 않는 계획을 세워 미래에 대비하는 것.


생각해 보니 대박집이 되는 비결은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비법과 다를 것이 없다.


저 세 곳처럼 장사가 잘되는 해물칼국수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칼국수 전에 먼저 나오는 해물전골재료가 싱싱하다. 살아서 꿈틀대는 전복을 차마 못 보겠다며 전복을 살짝 뒤집어 놓는 아들. 싱싱한 재료가 이 집의 인기비결이란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은 아들에게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하니 그냥 행복하게 살겠단다.

아들아, 인생을 경영하는 건 식당을 경영하는 것과 같단다.

음식이 나오기까지의 수고로움을 기억하며 해물칼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한 줄 요약 : 인생을 경영하는 건 식당을 경영하는 것과 같다. 대박집과 쪽박집의 차이를 보면 어떻게 인생을 경영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까.


너나들이의 맛집 리스트입니다.


추어탕 맛집 : 청담 추오정

쌀국수 맛집 : 한뫼당

묵요릿집 : 묵전문점옥

해물칼국수 맛집 : 복 많네 해물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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