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반공 글짓기 대회에서 학교 대표로 상을 받은 적이 있다. 북한군을 물리치는 '똘이 장군'이 인기 만화 영화였던 시절, 해마다 반공 글짓기, 표어 대회가 실시됐다. 5학년 봄, 반공 글짓기 대회가 있었고 나는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날따라 빨간 줄로 칸칸이 나눠진 원고지가답답하게 느껴졌고 책상 서랍에 있던 분필을 꺼내 내 방 창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공산당에게 잡혀갔다가 도망쳐 나오는 극적인 내용의 이야기였다. 이야기 속할아버지는 두 손이 밧줄로 포박된 채로 공산당원을 눈을 피해 도망쳐 나왔고 목숨을 걸고 내달리는 발꿈치 뒤로 총탄이 떨어졌다. 엄마가 할아버지의 탈출 이야기를 해줄 땐 본인이 겪은 무용담보다 더 생생하게 말했고 더 자랑스러워했다.
교장선생님과 단둘이 큰 전세버스를 타고 상을 받으러 창원 KBS 방송국으로 갔다. 가는 중간에 다른 학교 교장선생님과 학생도 탔다.처음 겪어 보는 시상식 참여 외출이 신기했다. 창원에 살던 할아버지도 엄마와 함께 시상식에 참석했다. 당신의 이야기를 써서 손녀가 상을 받으러 방송국에 왔다고 하니 한걸음에 달려오셨을 거다.
그날 받은 상은 내가 받은 글짓기상 중에 가장 큰 상이었다. 하지만그날 이후로는 좀처럼 글을 쓰지 않는 글과 거리가 먼 소녀가 되어갔다.
2년째 휴직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내게 자주 묻는다.
"쉬니까 너무 좋죠?"
그러면 나는 '쉬니까 좋은 마음 반, 학교에 가서 일하고 싶은 마음 반'이라고 대답한다. 신규 때 나이 많은 선생님 한 분이 여교사는 팔자가 세다고 했다. 팔자가 편한 여자들은 남편이 벌어주는 돈을 쓰면서 편하게 사는데 교사는 평생 일하며 살아야 하니 팔자가 센 거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내 주변 사람들은 소득에 상관없이 아이들이 중학교에 진학한 후로는 다시 일을 하고 싶어 했다. 20년 넘은 경력 단절로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엔 아주 겸손한 처지가 되어버려 과한 욕심도 부리지 않았다. 전공과 상관없는 보육교사 자격증이라도 따서 일을 하러 나가고 싶어 했다.
나란 사람은 나의 쓸모를 끊임없이 증명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을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하다못해 집에 있을 때는 결과물이 눈앞에 보이는 요리라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 학교에서는 나의 수업과 학급 경영에 따라 성장하는아이들을 보며 소명 의식이 충만한 성취감을 느꼈고 17일에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을 보며 경제적인 성취감을 느꼈다. 같이 일하는 매력적인 동료들과 친분을 쌓으며 관계의성취감도 느꼈다.
휴직을 하고 나서는 또 다른 쓸모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글이다. 브런치 작품 란에 글 하나를 발행할 때마다 나의 쓸모 포인트가 하나씩 더 올라가는 기분이다. 이 글을 발행하면 97개가 되니 97포인트를 모은 셈이다. 어느 정도 모이면 현금으로 전환되는 포인트처럼 꺼내쓸 수 있는에너지가 되어준다.
글은 나의 쓸모다. 글이 쌓일수록 나의 쓸모도 쌓여간다. 글이 나의 에너지가 되어 불안과 부정을 담은 날파리를 때려잡게 한다. 단단하고 강인해진 모습으로 하늘을 닮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게 한다.나는 나의 쓸모를 찾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
⭕라라크루 [금요문장: 금요일의 문장 공부]_2024.04.19.
[오늘의 문장] - 랩 걸(호프 자런)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쓰는 사람' 연재를 마치려고 합니다. 그동안 '쓰는 사람' 속 저에게 응원을 보내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럼 저는 다른 글에서 또 찾아뵙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